한국의 명시

김수영(金洙暎)님의 詩

eorks 2007. 4. 6. 00:12

김수영(金洙暎)님의

    1.<풀>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 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 2.<달나라의 장난> 팽이가 돈다 어린아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 앞에서 아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 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 한 번 팽이를 돌려 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都會) 안에서 쫓겨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小說)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生活)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 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 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餘裕)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別世界)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던지니 소리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 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機) 벽화(壁畵)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運命)과 사명(使命)에 놓여 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放心)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비행기 프로펠러보다는 팽이가 기억(記憶)이 멀고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 년 전의 성인(聖人)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 3.<눈>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 4.-병풍(屛風)- 병풍은 무엇에서부터라도 나를 끊어준다. 등지고 있는 얼굴이여 주검에 취(醉)한 사람처럼 멋없이 서서 병풍은 무엇을 향(向)하여서도 무관심(無關心)하다. 주검의 전면(全面) 같은 너의 얼굴 위에 용(龍)이 있고 낙일(落日)이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끊어야 할 것이 설움이라고 하면서 병풍은 허위(虛僞)의 높이보다도 더 높은 곳에 비폭(飛瀑)을 놓고 유도(幽島)를 점지한다. 가장 어려운 곳에 놓여 있는 병풍은 내 앞에 서서 주검을 가지고 주검을 막고 있다. 나는 병풍을 바라보고 달은 나의 등 뒤에서 병풍의 주인 육칠옹해사(六七翁海士)의 인장(印章)을 비추어주는 것이었다. ---------------------------------------- 5.-사령(死靈)- …… 활자(活字)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벗이여 그대의 말을 고개 숙이고 듣는 것이 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어라.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어라. 이 황혼(黃昏)도 저 돌벽 아래 잡초(雜草)도 담장의 푸른 페인트 빛도 저 고요함도 이 고요함도. 그대의 정의도 우리들의 섬세(纖細)도 행동(行動)이 죽음에서 나오는 이 욕된 교외(郊外)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어라.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 6.-폭포(瀑布)-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楕)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 7.<푸른 하늘을> 푸른 하늘을 제압(制壓)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修正)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飛翔)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革命)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 김수영 : (金洙暎,1921~1968). 서울 출생. 연희 전문 영문과 중퇴. 1945년 <예술부락>에 <묘정의 노래>를 발표하면서 창작활 동을 시작했다. 박인환 등과 함께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 민들의 합창>을 간행하고 해방 후 모더니즘 운동을 주도했 다. 초기에는 모더니스트로 출발했으나, 4.19 의거 이후에 는 현실성.산문성을 중시하여 강렬한 현실 의식과 저항 정 신에 기반한 참여시로 나아갔다. 시집으로는 <달나라의 장 난>(1945),<거대한 뿌리>(1974)가 있고, 산문집으로는 <시 여 침을 뱉어라>(1975)가 있다. -------------------------------------------------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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