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시

한용운(韓龍雲)님의 詩

eorks 2007. 4. 17. 12:22

한용운(韓龍雲)님의

    1.-나룻배와 행인(行人)-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 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 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 2.<알 수 없어요>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塔) 위에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구비구비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3.-님의 침묵(沈默)-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 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4.-복종(服從)-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 5.-명상(冥想)- 아득한 명상의 작은 배는 가이없이 출렁거리는 달빛의 물결에 표류(漂流)되어 멀고 먼 별나라를 넘고 또 넘어서 이름도 모르는 나라에 이르렀 습니다. 이 나라에는 어린 아기의 미소(微笑)와 봄 아침과 바다 소리가 합(合)하여 사랑이 되었습니다. 이 나라 사람은 옥새(玉璽)의 귀한 줄도 모르고, 황금을 밟고 다니고, 미인(美人)의 청춘(靑春)을 사랑할 줄도 모릅니다. 이 나라 사람은 웃음을 좋아하고, 푸른 하늘을 좋아합니다. 명상의 배를 이 나라의 궁전(宮殿)에 매었더니 이 나라 사람들은 나의 손을 잡고 같이 살자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님이 오시면 그의 가슴에 천국(天國)을 꾸미려고 돌아왔습니다. 달빛의 물결은 흰 구슬을 머리에 이고 춤추는 어린 풀의 장단을 맞추어 넘실거립니다. ------------------------------------------------------ 6.-찬송(讚頌)- 님이여, 당신은 백 번이나 단련한 금(金)결입니다. 뽕나무 뿌리가 산호(珊瑚)가 되도록 천국(天國)의 사랑을 받으 옵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아침 볕의 첫걸음이여. 님이여, 당신은 의(義)가 무거웁고 황금(黃金)이 가벼운 것을 잘 아십니다. 거지의 거친 밭에 복(福)의 씨를 뿌리옵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옛 오동(梧桐)의 숨은 소리여. 님이여, 당신은 봄과 광명(光明)과 평화(平和)를 좋아하십니다. 약자(弱者)의 가슴에 눈물을 뿌리는 자비(慈悲)의 보살(菩薩)이 되옵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얼음 바다에 봄바람이여. ------------------------------------------------------- 7.-정천 한해(情天恨海)- 가을 하늘이 높다기로 정(情) 하늘을 따를쏘냐. 봄 바다가 깊다기로 한(恨) 바다만 못 하리라. 높고 높은 정(情) 하늘이 싫은 것만 아니지만 손이 낮아서 오르지 못하고, 깊고 깊은 한(恨) 바다가 병될 것은 없지마는 다리가 짧아서 건너지 못한다. 손이 자라서 오를 수만 있으면 정(情) 하늘은 높을수록 아름답고 다리가 길어서 건널 수만 있으면 한(恨) 바다는 깊을수록 묘하니라. 만일 정(情) 하늘이 무너지고 한(恨) 바다가 마른다면 차라리 정천(情天)에 떨어지고 한해(恨海)에 빠지리라. 아아, 정(情) 하늘이 높은 줄만 알았더니 님의 이마보다는 낮다. 아아, 한(恨) 바다가 깊은 줄만 알았더니 님의 무릎보다도 얕다. 손이야 낮든지 다리야 짧든지 정(情) 하늘에 오르고 한(恨) 바다를 건느려면 님에게만 안기리라. ------------------------------------------------ 8.<당신을 보았습니다> 당신이 가신 후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까닭은 당신을 위하느니보다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으므로 추수(秋收)가 없습니다. 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은 "거지는 인격이 없다.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 너를 도와 주는 것은 죄악이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돌아 나올 때에,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나는 집도 없고 다른 까닭을 겸하여 민적(民籍)이 없습니다. "민적 없는 자는 인권(人權)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게 무슨 정조(貞操)냐." 하고 능욕하려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를 항거한 뒤에 남에게 대한 격분이 스스로의 슬픔으로 화(化)하는 찰나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아아! 온갖 윤리, 도덕, 법률은 칼과 황금을 제사 지내는 연기인 줄을 알았습니다. 영원(永遠)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 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망설일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 9.-이별은 미(美)의 창조- 이별은 미(美)의 창조입니다. 이별의 미는 아침의 바탕[質] 없는 황금과 밤의 올[絲] 없는 검은 비단과 죽음 없는 영원의 생명과 시들지 않는 하늘의 푸른 꽃에도 없습니다. 님이여, 이별이 아니면 나는 눈물에서 죽었다가 웃음에서 다시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오오, 이별이여. 미는 이별의 창조입니다. -------------------------------------------------------- 10.<타고르의 시(詩) GARDENISTO를 읽고> 벗이여, 나의 벗이여. 애인의 무덤 위에 피어 있는 꽃처럼 나를 울리는 벗이여. 작은 새의 자취도 없는 사막의 밤에 문득 만난 님처럼 나를 기쁘게 하는 벗이여. 그대는 옛 무덤을 깨치고 하늘까지 사무치는 백골(白骨)의 향기 입니다. 그대는 화환을 만들려고 떨어진 꽃을 줍다가 다른 가지에 걸려서 주운 꽃을 헤치고 부르는 절망인 희망의 노래입니다. 벗이여, 깨어진 사랑에 우는 벗이여. 눈물의 능히 떨어진 꽃을 옛 가지에 도로 피게 할 수는 없습니다. 눈물이 떨어진 꽃에 뿌리지 말고 꽃나무 밑의 티끌에 뿌리셔요. 벗이여, 나의 벗이여. 죽음의 향기가 아무리 좋다 하여도 백골의 입술에 입맞출 수는 없습니다. 그의 무덤을 황금의 노래로 그물치지 마셔요. 무덤 위에 피 묻은 깃대를 세우셔요. 그러나, 죽은 대지가 시인의 노래를 거쳐서 움직이는 것을 봄바람은 말합니다. 벗이여, 부끄럽습니다. 나는 그대의 노래를 들을 때에 어떻게 부끄럽고 떨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내가 나의 님을 떠나 홀로 그 노래를 듣는 까닭입니다. ------------------------------------------------------- 11.- 슬픔의 삼매(三昧)- 하늘의 푸른빛과 같이 깨끗한 죽음은 군동(群動)은 정화(淨化) 합니다. 허무의 빛인 고요한 밤은 대지에 군림하였습니다. 힘없는 촛불 아래에 사리뜨리고 외로이 누워 있는 오 오, 님이여! 눈물의 바다에 꽃배를 띄웠습니다. 꽃배는 님을 싣고 소리도 없이 가라앉았습니다. 나는 슬픔의 삼매에 '아공(我空)' 이 되었습니다. 꽃향기의 무르녹은 안개에 취하여 청춘의 광야에 비틀걸음 치는 미인이여. 죽음을 기러기 털보다도 가볍게 여기고, 가슴에 타오르는 불꽃을 얼음처럼 마시는 사랑의 광인(狂人)이여. 아아, 사랑에 병들어 자기의 사랑에게 자살을 권고하는 사랑의 실패자여. 그대는 만족한 사랑을 얻기 위하여 나의 팔에 안겨요. 나의 팔은 그대의 사랑의 분신인 줄을 그대는 왜 모르셔요. ------------------------------------------------------- 12.[꿈이라면] 사랑의 속박이 꿈이라면 출세(出世)의 해탈도 꿈입니다. 웃음과 눈물이 꿈이라면 무심의 광명도 꿈입니다. 一切萬法이 꿈이라면 사랑의 꿈에서 불멸(不滅)을 얻겠습니다. ※ `96년 10.29(화) 대전 보문산행 후 下山하며 들른 "사정공원"內 돌비석에 새겨져 있는 싯구를 기록해 둔 것임.
----------------------------------------------------- 한용운 : (韓龍雲, 1879~1944) 시인, 승려, 독립운동가. 충남 홍성출생. 속명(俗名)은 유천(裕天), 자는 진옥(眞玉), 법호(法號)는 만해(萬海),용운은 법명(法名)이다. 백용성 스님과 함께 3.1운 동에 적극 가담하여 민족 대표로 서명,'독립선언서'에 공약3장 을 추가하고, 거사 당일 선언서를 낭독한 뒤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한용운의 생애는 사상과 문학이 자연스 럽게 합일되고 조화를 이룸으로써 사랑의 예술적 실천화에 성 공한 시인으로 알려져 있음. 한용운은 한국 근대사가 내포하고 있던 모순과 문제점을 첨예하게 파악하고 실천적으로 극복하려 고 노력한 민족의 선구자인 동시에 전통의 창조적 계승을 성취 함으로써 문학사의 한 획을 그어준 시인. 특히 인간에의 정신 과 그 실천 의지는 생생한 민중적인 정감과 민중적인 언어에 맞닿음으로써 시적 설득력을 획득하게 됨. 1925년, 시집<님의 침묵>을 펴내었다. 남긴 작품으로는 시 107편, 시조 35수, 한시 164수, 소설 5편, 수필 20편,논문 16편, 잡문 15편이 있다. -------------------------------------------------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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