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시

이육사(李陸史)님의 詩

eorks 2007. 5. 9. 08:15

이육사(李陸史님의

    1.<청포도>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ㅊ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 2.-절정(絶頂)-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 디딜 곳 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 3.-광야(曠野)-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4.-황혼(黃昏)- 내 골방의 커튼을 걷고 정성된 마음으로 황혼을 맞아들이노니 바다의 흰 갈매기들같이도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황혼아, 네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밀라. 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맞추어 보련다. 그리고 네 품안에 안긴 모든 것에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 다오. 저 - 십이(十二) 성좌(星座)의 반짝이는 별들에게도, 종소리 저문 삼림(森林) 속 그윽한 수녀(修女)들에게도, 시멘트 장판 위 그 많은 수인(囚人)들에게도, 의지 가지 없는 그들의 심장(心臟)이 얼마나 떨고 있는가. 고비사막(沙漠)을 걸어가는 낙타(駱駝) 탄 행상대(行商隊)에게나, 아프리카 녹음(綠陰) 속 활 쏘는 토인(土人)들에게라도, 황혼아, 네 부드러운 품안에 안기는 동안이라도 지구(地球)의 반(半)쪽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맡겨 다오. 내 오월(五月)의 골방이 아늑도 하니 황혼아, 내일(來日)도 또 저 - 푸른 커튼을 걷게 하겠지. 암암(暗暗)히 사라지는 시냇물 소리 같아서 한 번 식어지면 다시는 돌아올 줄 모르나 보다. - 5월의 병상(病床)에서 --------------------------------------------------- 5.<꽃>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내리잖는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북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 속 깊이 꽃 맹아리가 옴작거려 제비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約束)이여 한 바다 복판 용솟음치는 곳 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꽃성(城)에는 나비처럼 취(醉)하는 회상(回想)의 무리들아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 보노라 ------------------------------------------ 6.-노정기(路程記)- 목숨이란 마치 깨어진 뱃조각 여기저기 흩어져 마음이 구죽죽한 어촌(漁村)보담 어설프고 삶의 티끌만 오래 묵은 포범(布帆)처럼 달아매었다 남들은 기뻤다는 젊은 날이었건만 밤마다 내 꿈은 서해(西海)를 밀항(密航)하는 쩡크와 같아 소금에 절고 조수(潮水)에 부풀어 올랐다 항상 흐릿한 밤 암초(暗礁)를 벗어나면 태풍(颱風)과 싸워가고 전설(傳說)에 읽어 본 산호도(珊瑚島)는 구경도 못하는 그곳은 남십자성(南十字星)이 비쳐주도 않았다 쫓기는 마음 지친 몸이길래 그리운 지평선(地平線)을 한숨에 기오르면 시궁치는 열대식물(熱帶植物)처럼 발목을 오여 쌌다 새벽 밀물에 밀려온 거미이냐 다 삭아빠진 소라 껍질에 나는 붙어 왔다 머-ㄴ 항구(港口)의 노정(路程)에 흘러간 생활(生活)을 들여다보며 -------------------------------------------------- 7.<교 목>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서서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 낡은 거미집 휘두르고 끝없는 꿈길에 혼자 설레이는 마음은 아예 뉘우침 아니라 검은 그림자 쓸쓸하면 마침내 호수(湖水)속 깊이 거꾸러져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 ---------------------------------- 이육사 : (李陸史,1904~1944). 본명은 원록. 경북 안동출생. 중국 북경대학 사회과를 졸업했다. 육사는 아호(兒號)이자 형무소 복역시 수인 번호인 64호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제에 저항하다가 10여차례의 구금투옥을 겪기도 했다. 윤동주와 더불어 일제말 저항시인의 본보기가 되고 있는 시인이다. 시 <황혼>을 <신조선>에 발표하면서 그는 문단에 데뷔하였고, 1937년 <자오선>의 동인으로 활동했다. 시집으로는 <육사시집>(1946)이 있다. ----------------------------------------------------

......^^백두대간^^........白頭大幹

'한국의 명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동환(金東煥)님의 詩  (0) 2007.05.10
정한모(鄭漢模)님의 詩  (0) 2007.05.10
안도현님의 詩  (0) 2007.05.08
김지하님의 詩  (0) 2007.05.06
김동명(金東鳴)님의 詩  (0) 2007.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