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시

정한모(鄭漢模)님의 詩

eorks 2007. 5. 10. 08:08

정한모(鄭漢模)님의

      1.<가을에> 맑은 햇빛으로 반짝반짝 물들으며 가볍게 가을을 날으고 있는 나뭇잎, 그렇게 주고 받는 우리들의 반짝이는 미소(微笑)로도 이 커다란 세계를 넉넉히 떠받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믿게 해 주십시오. 흔들리는 종소리의 동그라미 속에서 엄마의 치마 곁에 무릎을 꿇고 모아 쥔 아가의 작은 손아귀 안에 당신을 찾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의 어제 오늘이 마침낸 전설(傳說) 속에 묻혀 버리는 해저(海底) 같은 그 날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달에는 은도끼로 찍어 낼 계수나무가 박혀 있다는 할머니의 말씀이 영원히 아름다운 진리(眞理)임을 오늘도 믿으며 살고 싶습니다. 어렸을 적에 불같이 끓던 병석(病席)에서 한없이 밑으로만 떨어져 가던 그토록 아득하던 추락(墜落)과 그 속력(速力)으로 몇 번이고 까무러쳤던 그런 공포(恐怖)의 기억(記憶)이 진리라는 이 무서운 진리로부터 우리들의 이 소중한 꿈을 꼭 안아 지키게 해 주십시오. ------------------------------------ 2. - 나비의 여행(旅行) 아가는 밤마다 길을 떠난다. 하늘하늘 밤의 어둠을 흔들면서 수면(睡眠)의 강(江)을 건너 빛 뿌리는 기억(記憶)의 들판을, 출렁이는 내일의 바다를 날으다가 깜깜한 절벽(絶壁), 헤어날 수 없는 미로(迷路)에 부딪히곤 까무러쳐 돌아온다. 한 장 검은 표지를 열고 들어서면 아비규환하는 화약(火藥) 냄새 소용돌이. 전쟁(戰爭)은 언제나 거기서 그냥 타고 연자색 안개의 베일 속 파란 공포(恐怖)의 강물은 발길을 끊어 버리고 사랑은 날아가는 파랑새 해후(邂逅)는 언제나 엇갈리는 초조(焦燥) 그리움은 꿈에서도 잡히지 않는다. 꿈에서 지금 막 돌아와 꿈의 이슬에 촉촉히 젖은 나래를 내 팔 안에서 기진맥진 접는 아가야! 오늘은 어느 사나운 골짜기에서 공포의 독수리를 만나 소스라쳐 돌아왔느냐. -------------------------------------- 3. <어머니 6> 어머니는 눈물로 진주를 만드신다. 그 동그란 광택(光澤)의 씨를 아들들의 가슴에 심어 주신다. 씨앗은 아들들의 가슴속에서 벅찬 자랑 젖어드는 그리움 때로는 저린 아픔으로 자라나 드디어 눈이 부신 진주가 된다. 태양이 된다. 검은 손이여 암흑이 광명을 몰아내듯이 눈부신 태양을 빛을 잃은 진주로 진주로 다시 쓰린 눈물로 눈물을 아예 맹물로 만들려는 검은 손이여 사라져라. 어머니는 오늘도 어둠 속에서 조용히 눈물로 진주를 만드신다. ------------------------------ 4. - 멸입(滅入) 한 개 돌 속에 하루가 소리 없이 저물어 가듯이 그렇게 옮기어 가는 정연(整然)한 움직임 속에서 소조(蕭條)한 시야(視野)에 들어오는 미루나무의 나상(裸像) 모여드는 원경(遠景)을 흔들어 줄 바람도 없이 이루어 온 밝은 빛깔과 보람과 모두 다 가라앉은 줄기를 더듬어 올라가면 끝 가지 아슬히 사라져 하늘이 된다. --------------------------------------
    정한모 : (鄭漢模,1923~1991). 국문학자. 시인. 충남부여출생. 서울대 국문과 졸업. 서울대 교수, 문화공보부 장관 역임. 1945년 동인지 <백맥>에 <귀향시편>을 발표하면서 등단. 작품경향은 인간의 생명에 대한 긍정적 추구를 통하여 현대 문명 속에서 인간의 문제를 극복해 나가고자 하는 휴머니즘을 기조로 함. 시집 <카오스의 사족>, <여백을 위한 서정>과 논저 <한국 현대 시문학사>, <현대시의 정수> 등이 있음. -------------------------------------------------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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