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시

박인환님의 詩

eorks 2007. 5. 11. 00:01

박인환님의

    1.-목마(木馬)와 숙녀(淑女)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生涯)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傷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庭園)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女流作家)의 눈을 바라다 보아야 한다. ... 등대(燈臺)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히미한 의식(意識)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는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通俗)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 2.<세월이 가면>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취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 3.<검은 강> 신(神)이란 이름으로서 우리는 최후(最後)의 노정(路程)을 찾아보았다. 어느 날 역전(驛前)에서 들려오는 군대의 합창(合唱)을 귀에 받으며 우리는 죽으러 가는 자(者)와는 반대 방향의 열차에 앉아 정욕(情欲)처럼 피폐(疲弊)한 소설에 눈을 흘겼다. 지금 바람처럼 교차하는 지대 거기엔 일체의 불순한 욕망이 반사되고 농부의 아들은 표정도 없이 폭음(爆音)과 초연(硝煙)이 가득 찬 생(生)과 사(死)의 경지로 떠난다. 달은 정막(靜寞)보다도 더욱 처량하다. 멀리 우리의 시선을 집중한 인간의 피로 이룬 자유의 성채(城砦) 그것은 우리와 같이 퇴각하는 자와는 관련이 없었다. 신이란 이름으로서 우리는 저 달 속에 암담한 검은 강이 흐르는 것을 보았다. ----------------------------------- 4.<어린 딸에게> 기총과 포성의 요란함을 받아 가면서 너는 세상에 태어났다 주검의 세계로 그리하여 너는 잘 울지고 못하고 힘없이 자란다. 엄마는 너를 껴안고 3개월간에 일곱 번이나 이사를 했다. 서울에 피의 비와 눈바람이 섞여 추위가 닥쳐오던 날 너는 입은 옷도 없이 벌거숭이로 화차 위 별을 헤아리면서 남으로 왔다. 나의 어린 딸이여 고통스러워도 애소도 없이 그대로 젖만 먹고 웃으며 자라는 너는 무엇을 그리 우느냐. 너의 호수처럼 푸른 눈 지금 멀리 적을 격멸하러 바늘처럼 가느다란 기계는 간다. 그러나 그림자는 없다. 엄마는 전쟁이 끝나면 너를 호강시킨다 하나 언제 전쟁이 끝날 것이며 나의 어린 딸이여 너는 언제까지나 행복할 것인가. 전쟁이 끝나면 너는 더욱 자라고 우리들이 서울에 남은 집에 돌아갈 적에 너는 네가 어데서 태어났는지도 모르는 그런 계집애. 나의 어린 딸이여 너의 고향과 너의 나라가 어데 있느냐 그때까지 너에게 알려 줄 사람이 살아 있을 것인가. ----------------------------------- 박인환 : 강원도 인제 출생 경성 제일 고보를 거쳐 평양의전 수료. 1945년, 마리서사(마莉書肆)라는 서점을 경영하면서 김기림.오장환.김광균 등과 알게 되었고,김경린,김수영 등과 어울렸다. 1946년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경향신문에 근 무했다. 1949년,김경린.임호권.박인환.양명식 등 5인의 합동 시집인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간하여 모더니즘의 기수로 각광을 받았다. 박인환은 1930년대 김기림을 중심으로 한 모더니즘을 계승한 1950년대의 후기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존재이다. 이러한 후기 모더니즘의 형식적 새로움은 새로운 현실인식과 새로운 사회적 실천에서 불가피하게 태어난 것이 아닌, 현대 서구 문학의 학습을 통해서 받아들여진 것이었다. 따라서 그 관념이 사회적 기반을 결(缺)하고 있 다는 점에서 1930년대 모더니즘의 발전적 계승이 아니라는 비판이 있으며, 그것은 1940년대 말기 의 명동 중심의 지적 풍토와 무관하지 않다. 박인환은 <후반기> 동인이었으며, 대표작으로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등이 있다. --------------------------------------------------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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