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시

조지훈(趙芝薰)님의 詩

eorks 2007. 5. 20. 00:16

조지훈(趙芝薰)님의

    1. -승무(僧舞)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빰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2. -완화삼(玩花衫) - 목월(木月)에게. 차운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七百里)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 ----------------------------------- 3. -풀잎 단장(斷章) 무너진 성터 아래 오랜 세월을 풍설(風雪)에 깎여 온 바위가 있다. 아득히 손짓하며 구름이 떠 가는 언덕에 말없이 올라서서 한 줄기 바람에 조찰히 씻기우는 풀잎을 바라보며 나의 몸가짐도 또한 실오리 같은 바람결에 흔들리노라. 아 우리들 태초의 생명의 아름다운 분신으로 여기 태어나, 고달픈 얼굴을 마주 대고 나직이 웃으며 얘기하노니 때의 흐름이 조용히 물결치는 곳에 그윽이 피어오르는 한떨기 영혼이여. ------------------------------------------ 4. -산상(山上)의 노래 높으디 높은 산마루 낡은 고목에 못박힌듯 기대여 내 홀로 긴 밤을 무엇을 간구하며 울어왔는가. 아아 이 아침 시들은 핏줄의 구비구비로 싸늘한 가슴의 한복판까지 은은히 울려오는 종소리 이제 눈 감아도 오히려 꽃다운 하늘이거니 내 영혼의 촛불로 어둠 속에 나래 떨던 샛별아 숨으라 환히 트이는 이마 우 떠오르는 햇살은 시월 상달의 꿈과 같고나 메마른 입술에 피가 돌아 오래 잊었던 피리의 가락을 더듬노니 새들 즐거이 구름 끝에 노래 부르고 사슴과 토끼는 한 포기 향기로운 싸릿순을 사양하라. 여기 높으디 높은 산마루 맑은 바람 속에 옷자락을 날리며 내 홀로 서서 무엇을 기다리며 노래하는가. ------------------------------------- 5. -고풍 의상(古風衣裳) 하늘로 날을 듯이 길게 뽑은 부연(附椽) 끝 풍경(風磬)이 운다. 처마 끝 곱게 늘이운 주렴(珠簾)에 반월(半月)이 숨어 아른아른 봄밤이 두견이 소리처럼 깊어 가는 밤, 곱아라 고아라 진정 아름다운지고 파르란 구슬빛 바탕에 자주빛 호장을 받친 호장저고리 호장저고리 하얀 동정이 환하니 밝도소이다. 살살이 퍼져 내린 곧은 선이 스스로 돌아 곡선(曲線)을 이루는 곳 열두 폭 기인 치마가 사르르 물결을 친다. 치마 끝에 곱게 감춘 운혜(雲鞋) 당혜(唐鞋) 발자취 소리도 없이 대청을 건너 살며시 문을 열고, 그대는 어느 나라의 고전(古典)을 말하는 한 마리 호접(胡蝶) 호접인 양 사푸시 춤을 추라, 아미(蛾眉)를 숙이고……. 나는 이 밤에 옛날에 살아 눈 감고 거문고 줄 골라 보리니 가는 버들인 양 가락에 맞추어 흰 손을 흔들어지이다. -------------------------------------------------- 6. -고사(古寺) 1 목어(木魚)를 두드리다 졸음에 겨워 고오운 상좌 아이도 잠이 들었다. 부처님은 말이 없이 웃으시는데 서역 만리(西域萬里) 길 눈부신 노을 아래 모란이 진다. ------------------------- 7. - 낙화(落花)-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밖에 성긴 벽ㄹ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 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 8. -봉황수(鳳凰愁)- 벌레 먹은 두리기둥 빛 단청(丹靑) 풍경 소리 날러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옥좌위엔 여의주(如意珠) 희롱하는 쌍룡(雙龍) 대신에 두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른 하늘 밑 추석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패옥(佩玉)도 없었다. 품석(品石)옆에서 정일품 종구품(從九品) 어느 줄에도 나의 몸 둘 곳은 바이 없었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천(九天)에 호곡(呼哭)하리라. --------------------------------------------- 조지훈 : (趙芝薰,1920~1968). 본명은 동탁(東卓).경상북도 영양출생. 혜화 전문 문과 졸업. 1939년에 [문장]지를 통해 등단했다. [백지]동인이었으며, 박두진,박목월 등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일컫어 진다. 해방 후 현실감각을 획득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관조적이며 고전적인 품격의 시세계를 보이고 있다. [풀잎단장](1925),[지훈시선](1956),[역사 앞에서] (1959)등의 시집이 있다. --------------------------------------------------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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