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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가 있는 속담

eorks 2008. 6. 13. 00:09

우리나라 속담
유래가 있는 속담
    ■ 가정 오랑캐 맞듯 행세를 더럽게 하다가 매를 몹시 맞은 가정 오랑캐처럼) 매를 몹시 맞음을 이르는 말. 가정은 집에서 부리는 남자 하인을 말하며, 가정 오랑캐는 옛날 청나라 사신이 올 때 함께 따라 온 막일꾼을 낮게 이르던 말이다. ■ 강경 사람 벼락바위 쳐다보듯 한다. 어떤 특징 있는 것을 자꾸만 쳐다볼 때 이르는 말. 충남에 있는 강경 지방은 거의가 들판이라 그 고장 사람들은 높은 바위를 보면 그 바위를 자꾸 쳐다보 곤 하였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 강경장에 조기배가 들어왔나. 몹시 소란스러움을 이르는 말. 금강하구에 있는 강경장에 한창 조기배가 들어왔을 때 시끌벅적하였다 하여 몹시 소란스러울 때 쓰는 말이다. ■ 갖바치 내일 모레 약속한 기일을 자꾸 미루는 것을 욕하는 말. 갖바치는 가죽신을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이들은 물건을 주문받으면 자꾸만 미루는 경향이 있다고 해서 생겨난 말이다. 갖바치는 천민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양반은 물론 상인들도 그들을 경멸하기 일쑤였는데, 이에 대한 반발로 일부러 물건을 늦게 만들곤 하였다. ■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조선조 법전인 경국대전에 의하면 '서인(庶人) 남녀 모두 홍의(紅衣) 자대(紫帶)와 금은(金銀) 등의 사용을 금한다. '고 되어있다. 일반 백성들은 붉은 색의 옷이나 자주색 허리때, 금과 은을 사용할 수 없도록 제한한 것이다. 양반 사대부의 경우에도 붉은 색은 옷의 안감으 로만 사용할 수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붉은 색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왕실에 있는 왕족들 뿐이었다. 특히 다홍색의 치마는 왕비만이 입을 수 있는 옷이었다. 이렇게 붉은 색의 옷은 왕족이 아니고서는 입지 못할 옷이었다. 입지 못하는 옷, 거꾸로 얘기하면 그만큼 입고 싶은 옷이기도 할 것이다. 신분제의 제약 속에서 입지 못할 옷이지만, 꿈에서라도 다홍치마 한번 입어보고 싶은 간절함이야 어느 여성이고 마찬가지였을 것이다.그런데 조선시대 여성들이 일생에 단 한번 다홍치마를 입을 수 있는 날이 있다. 바로 결혼 식이다. 이 때만큼은 신부의 옷에 붉은 색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이 되었던 것이다. 초록 저고리에 다홍치마가 신부들의 복장이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를 입고 싶다는 말에는 다홍치마를 입을 수 없던 신분제 사회의 단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제약을 벗어나는 파격, 현실을 극복하는 해방의 꿈이 담겨 전해지는 말이다. ■ 개 보름 쇠듯 한다. 명절날 음식도 해 먹지 못하고 넘긴다. <동국세시기> 에는정월 대보름에 개에게 먹이를 주면 여름에 파리가 꾈 뿐 아니라, 개가 여윈다는 속설 때문에 이 날은 개를 굶기는 풍속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민속학자 들에 의하면 실제적인 이유는 달리 있었다고 한다. 즉 옛날 사람들은 달과 개는 상극이라 개가 달을 잡아 먹는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달은 음에 해당하기 때문에 정월 대보름에 여자들이 달을 쳐다보며 달의 기운을 몸에 받아야 하는데, 이 날 개에게 음식을 먹이면 개가 힘이 나서 보음(補陰)에 필요한 달을 먹는다는 것이다. ■ 개성여자 남편 보내듯 한다. 손님 접대를 엉성하게 한다는 말. 개성은 옛날부터 장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개성 여자들이 장사하러 떠나는 남편을 보내는 것이 일상사가 되다 보니 자연히 남편과의 이별을 굳이 호들갑스럽게 할 필요가 없었다. 이런 모습이 남들에게 무심한 것처럼 비쳐져 와 같은 속담이 나왔다고 함. ■ 건대 놈 풋농사 짓듯. 힘만 들이고 보람이 없는 것 또는 처음은 남보다 앞서나 결국은 뒤질 경우에 이르는 말. 건대는 경남 합천군 쌍책면에 있는 고장으로 지반이 낮아서 상습적으로 수해를 당하는 지역이다. 그래서 건대 지방에 사는 사람이 농사에 아무리 공을 들여도 제대로 수확을 하지 못하므로 정성을 들이지 않고 건성으로 한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 경점 치고 문지른다. 일을 그르쳐 놓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자기 잘못을 얼버무리려 하나 이미 때가 늦었음을 이르는 말. 밤에 시간을 알리기 위해 북이나 징을 치는 일을 경점이라고 한다. 그런데 경점 치는 일을 맡은 군사가 하루는 시간을 잘못 알고 실수로 경점을 쳤다. 그리고 나서 이내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는 북이나 징을 문질러 소리 나지 않게 하였다는 이야기에서 비롯한 말이다. ■ 교천 부자가 눈 아래로 보인다. 갑자기 부자가 된 사람은 호기를 부리게 된다. 경주 부근에 있는 교천 고을에 최씨 부자가 많이 살았다는 데서 비롯한 말이다. ■ 꿩 대신 닭. 적당한 것이 없을 때 비슷한 것으로 대신함. 설날 아침에 흰 떡국을 끓여 먹는데, 옛날에는 꿩고기로 국물을 내서 떡국을 끓였다. 그러나 꿩고기가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꿩 대신에 닭을 잡아서 고기 국물을 우려 냈다. 여기에서 유래된 속담이 '꿩 대신 닭'이다. ■ 끈 떨어진 망석중이. 물건이 못쓰게 되었거나, 일이 그만 허사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를 이르는 말. 망석중은 나무로 만든 인형 으로 팔다리에 줄을 매달아 그 줄을 당겨 춤을 추게 하는 놀잇감이다. 옛날에 주로 4월 초파일에 무언 인형극인 망석중 놀이를 하였는데, 망석중은 끈을 매달아 움직이기 때문에 끈이 끊어지면 움직일 수가 없다고 하여 생긴 말이다. ■ 남양 원님 굴회 마시듯. 무엇을 눈 깜짝할 사이에 먹어 치우다. 남양은 경기도 화성군에 위치한 곳으로, 이 곳은 굴이 많이 생산되었다. 남양에 부임하는 원님들마다 이 지방의 특산물인 굴을 씹지도 않고 훌훌 마셨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 내 일 바빠 한데 방아. 자기 일을 하기 위해 부득이 남의 일을 먼저 서둘러 함. 신라 경덕왕 때 귀진이라는 사람의 집에 욱면이란 여자 종이 살고 있었다. 이 종이 주인을 따라 미타사란 절에 가서 염불을 했는데, 일을 안 하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주인이 날마다. 곡식 두 섬을 주어 찧게 하였다. 그러자 염불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욱면은 서둘러 방아를 찧고 절에 다녀오곤 하였다. 이러한 이야기로부터 '내 일 바빠 한댁(大家) 방아'라는 말이 생겼다. 그리고 그후 '한댁'이 '한데'로 바뀌었다. ■ 넉동 다 갔다. 일이 다 끝났다. 윷놀이에서 흔히 넉 동(동:크게 한 덩이를 지은 묶음을 나타내며 윷놀이에서 쓰이는 말을 의미) 이 말판을 돌아 나오면 이기도록 규칙을 정하고 있다. 따라서 넉 동이 다 갔다는 것은 넉 동이 말판을 돌아나와서 승부가 결정되었다는 것을 뜻하며, 이로부터 모든 일이 다 끝난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 넉살 좋은 강화년. 체면이나 염치를 모르는 사람. 경기도 강화에서 생산된 인조견은 품질이 좋았다. 인조견을 팔러 다니는 강화의 아낙네들이 수줍어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넉살이 좋아서 남의 집에 들어가 너스레를 떨며, 때로는 밥도 얻어 먹곤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강화 인조견 장 수를 속되게 '넉살 좋은 강화년'이라고 했다. ■ 능라도 수박 같다. 음식이 맛이 없다. 능라도는 강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어서 장마 때 물이 자주 넘친다. 따라서 그곳에 심은 수박은 장마로 넘친 물이 스며들어서 맛이 싱겁고 달지 않기 때문에 '능라도 수박 같다'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 능라도는 평양에 있는 섬. ■ 대경주인(代京主人)을 보았나. 죄없이 매를 맞고 고생할 때 쓰는 말. 예전에 경주인 (京主人)이 감독 관청으로부터 꾸지람을 받거나 매를 맞게 될 때, 사람을 사서 대리로 매를 맞게 하였다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대경주인은 경주인을 대신하여 매를 맞던 사람. *경주인 : 서울에 살면서 지방 관아의 서울에 관한 일을 대행하던 사람.) ■ 도감포수 마누라 오줌 짐작. 무슨 일이든 짐작으로만 판담함. 훈련도감의 포수가 매일 새벽에 영내로 들어갈 때 마누라가 오줌을 누는 것으로 그 시간을 맞추었다고 한다. 따라서 훈련도감의 포수가 마누라가 오줌을 누는 시간에 맞추듯이 대충 짐작으로 일을 처리한다고 하여 생긴 말이다. ■ 동상전에 들어왔나. 먼저 말을 해야 할 경우에 말 없이 그저 웃기만 하는 사람에게 이르는 말. 동상전은 옛날 구리개(현재의 을지로 입구)에 있던 잡화상을 말한다. 이곳에 궁녀 들이 뿔이나 가죽으로 만든 남자의 생식기를 사러 들어가서 차마 말은 못하고 기둥을 안고 웃기만하면 주인이 알고 그 물건을 내주었다는 데서 나온 말. ■ 둘 사이가 아주 옹치다. 서로 아주 미워하는 사이를 일컫는 말. 옹치는 한나라 고조 유방과 한 고향 사람인데 초나라 패왕 항우의 부장으로 있을 때 유방을 수없이 괴롭혔다. 그래서 고조가 세력만 잡으면 옹치가 제일 먼저 화를 당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막상 유방이 천하를 통일 하자 장량의 건의를 받아들여 옹치를 제후에 봉했다고 한다. ■ 뒷구멍으로 호박씨 깐다. 옛날에 매우 가난한 선비가 살았는데 글공부에만 매달려 집안 살림은 돌보지 않았다. 어느날 선비가 밖에서 돌아 와보니 아내가 무엇인가를 먹으려하다가 얼른 엉덩이 뒤 쪽으로 감추는 것이었다. 선비는 아내가 자기 모르게 음 식을 먹었다는 사실에 불쾌감을 느끼면서 감춘 것이 무엇 인지 추궁했다. 그러자 아내는 울상이 되어 말했다. 방바 닥에 호박씨가 하나 떨어져 있기에 그것이라도 까먹으려 했더니 빈 쭉정이더라고. 선비는 아내의 이 말에 아무 말 도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이런 이야기로부터 남 몰래 엉 큼한 일을 하는 것을 일러 '뒷구멍으로 호박씨 깐다'는 말 이 생겼다고 한다. 지금은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 모처럼 능참봉을 하니 거둥히 한 달에 스물아홉 번이라. 정조는 사도세자의 아들로 효성이 지극했다. 그래서 뒤주 속에 갇혀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위해 틈만 나면 능으로 거둥을 했다. 이 때 가난한 선비가 어렵게 능참봉이 되었는데, 늘 임금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만 했다. (다른 능을 지키는 능참봉들은 대개 1년에 한두 차례만 하면 되었다.) ■ 목탁 귀가 밝아야 한다. 먹으러 오라고 하는 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는 말. 절에서 밥 먹으러 오라고 할 때 신호로 목탁을 치던 데서 유래한 말이다. ■ 무진년 팥방아 찧듯. 무진년에 흉년이 들었으나 팥농사만은 매우 잘 되어 집집 마다 팥만 짛어 먹었다는 데서 온 말이다. ■ 묻지 마라 갑자생. 육십갑자 중 맨 처음인 갑자생이므로 가장 어른 대접을 받아야 하고 또 그만큼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다는 뜻으 로 쓰이던 말이다. 1940년대초 일제가 징병이나 징용으 로 젊은 청년들을 전쟁터로 끌고가기 위해 신체검사를 할 때 갑자생(1924년생)언저리의 청년들은 한창 혈기왕 성한 나이인지라 물어 볼 것 없이 합격 판정을 받았다. 이런 이유로 당시에 이 말이 더욱 널리 퍼지게 되었다. ■ 밀양놈 쌈하듯. 임진왜란 때 밀양에서 벌어진 싸움이 매우 오래 걸렸 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 소대성이 모양 잠만 잔다. 잠 잘 자는 사람에게 하는 말. 고대소설 "소대성전"에 나오는 주인공 소대성이란 사람이 시도 때도 없이 잠 만 잤다고 하여 생긴 말이다. 같은 뜻으로 "소대성이 이마빡 쳤나?"라는 말도 쓴다. ■ 순임금 독장사. 장사는 사람을 속여야 한다는 뜻으로 일컫는 말. 중국의 순임금이 세상 물정을 알기 위해 독장수로 꾸미고 거리 로 나갔다. 깨진 독을 지고서 처음에는 "깨진 독 사시오"하고 사실 대로 외치니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었다. 다음에는 마 찬가지로 깨진 독을 지고 거짓으로 "성한 독 사시오"하고 외치자 아무런 의심없이 독을 사갔다. 이러한 이야기로 부터 장사하는 사람이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순임금 독장사'라는 말이 나왔다. ■ 송도 오이 장수. 지나치게 이익을 꾀하려다가 도리어 손해를 봄. 송도에 사는 오이 장수가 한양에 가면 오이 값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한양으로 갔다. 그런데 마침 한양의 오이 값이 뚝 떨어져서 제 값을 받 기가 어려웠다. 이번에는 의주에 가면 오이값이 많이 나 간다는 말을 듣고 의주로 갔으나 그곳에서도 오이 값이 떨어졌다. 할 수 없이 오이를 지고 송도로 돌아왔으나 너 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 이미 오이가 다 썩은 뒤였다. 여기 서 나온 말이 '송도 오이 장수'이다. ■ 아닌 밤중에 홍두깨. 느닷없는 일을 당했을 때 쓰는 말. 옛날에 여자들은 남편이 죽은 뒤에 수절을 해야 했다. 남편을 잃고 오랜 세월 동안 본능을 참아가며 수절을 하는 여자들은 더러 밤중에 누가 몰래 업어가길 바라 기도 했단다. 이런 인습 속에서 남자의 성기를 홍두깨 에 빗대어 나타낸 말이다. ■ 아들 한 죽 난 집 고추값. 물건 값이 매우 비쌀 때 쓰는 말. 남존여비 사상이 강했던 옛날 아들을 낳지 못하면 시 집에서 쫓겨나는 일도 있었다. 때문에 아들이 없는 여 인들은 아들을 낳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그 중 아들을 낳은 집 대문에 쳐놓은 금줄의 고추를 구해서 하복부에 차고 다니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속설도 있었다. 특히 아들을 많이 낳은 집의 고추일수록 귀하여, 아들 한 죽(열명)을 낳은 집의 고추는 소 한 마리 값에 버금갈 정도로 비쌌다고 한다. ■ 여편네(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 여자 팔자는 남편에 달려 있다. 뒤웅박이란, 박을 쪼개지 않은 채로 꼭지 근처에 구멍만 뚫거나 꼭지 부분을 베어 내고 속을 파낸 바가지를 말한다. 이 뒤웅박에 부잣집에 서는 쌀을 담고 가난한 집에서는 여물을 담기 때문에, 여자가 부잣집으로 시집을 가느냐, 아니면 가난한 집에 시집을 가느냐에 따라 그 여자의 팔자가 결정된다는 뜻으로 쓰였다. ■ 염충강이 무장 먹듯하다. 모든 일에 두서를 모르고 아무데나 엄벙덤벙하는 사람의 비유. 옛날에 염충강이라는 바보가 있었는데, 쓴 것이나 짠 것이나 분간을 못하기 때문에 무장을 마구 퍼 먹고도 그 맛을 몰랐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무장은 마른 메주 를 물에 담갔다가 익은 뒤에 달이지 않고 먹는 장. ■ 옥동 같이 춥다. 매우 춥다는 말. 옥동은 서울 옥인동을 가리킨다. 이 곳에는 조선 말기의 세도가 안동 김씨 집안 사람들 과 이완용 등이 살았으며, 그들의 위세가 마치 찬 겨울 바람 같았다는 데서 비롯한 말이다. ■ 윤달 만난 황양목. 진척되지 않고 더딘 일이나 키가 작은 사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황양목은 윤달이면 자라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한 치씩 줄어든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속담임. ■ 자라알 바라보듯 한다. 자라는 모래밭 속에 알을 낳은 다음 마음이 놓이지 않아 그 곁에서 늘 알을 바라보고 있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자식이나 재물 같은 것을 다른 먼 곳에 두고, 자나 깨나 늘 잊지 못하여 그리는 마음을 형용하여 이르는 말. ■ 작아도 하동 애기. 키는 작아도 사람이 똑똑하다는 말. 경남 하동 지방 사람들이 키는 작지만 똑똑하다고 하여 생긴 말이다. ■ 종달새 열씨 까듯. 입을 잠시도 다물지 않고 계속 조잘거림. 열씨는 삼의 씨를 일컫는 말. 종달새가 열시를 까먹으면서 계속 조잘거리는 데서 비 롯된 말이다. ■ 청산 보은 처녀 눈물 흘리듯. 말은 못하고 속으로만 눈물을 흘리는 것을 이르는 말. 청산과 보은은 대추가 많이 생산되는 곳이었다. 이 고을 처녀들은 대추 농사가 잘 되기를 빌었는데, 그 이유는 대추를 팔아 혼수감을 장만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복날 비가 오면 그 해 대추 농사는 기대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리하여 복날 비가 내리면 청산과 보은 처녀들은 말없이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고 하여 생긴 말이다.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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