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事 成 語
요령부득(要領不得)
要:중요할 요, 領:거느릴 령, 不:아닐 불, 得:얻을 득
사물의 중요한 부분을 잡을 수 없다는 뜻으로, 말이나 글의 요령을 잡을 수 없음을 이르는 말.
전한 7대 황제인 무제때의 일이다. 당시 만리장성 밖은 수수 께끼의 땅이었다.
그러나 영맹한 흉노는 동쪽 열하에서부터 서쪽 투르키스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세력을 펴고 빈번히 한나라를 침범 약 탈했다.
그래서 무제는 기원전 2세기 중 반에 흉노에게 쫓겨 농서[ 西:감숙성]에서 서쪽 사막 밖으로 옮겨간 월지와 손잡고 흉노를 협 공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월지에 다녀올 사신을 공모 한 결과 장건이란 관 리가 뽑혔다.
건원 3년, 장건은 100여 명의 수행원을 거느리고 서쪽 이 리란 곳에 있다는 것밖에 모르는 월지를 찾아 장안 [長安:서안]을 떠났 다.
그러나 그들은 농서를 벗어나자마자 흉노에게 잡히고 말았다.
이때부터 흉노와의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장건은 활짝 트인 성격으로 해서 흉노에게 호감을 사 장가도 들고 아들까지 낳았다.
그러나 그는 잠시도 탈출할 생각을 버리 지 않았다. 포로가 된 지 10년이 지난 어느 날, 장건은 처자 와 일행을 데리고 서방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했 다.
우뚝 솟 은 천산 산맥의 남쪽 기슭을 따라 타림 분지를 횡단 한 그들 은 대완국 강거국을 거쳐 마침내 아무 강 북쪽에 있는 월 지의 궁전에 도착했다.
장건은 곧 월지의 왕을 알현하고 무제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왕의 대답은 의외로 부정적이었다.
"월지는 서천(西遷) 이후 기름진 이 땅에서 평화롭게 살아 왔소. 그러니 백 성은 이제 구원(舊怨)을 씻기 위한 그런 쓸데없는 전쟁은 원치 않을 것이 오."
장건은 여기서 단념하지 않고 당시 월지의 속국인 대하국까지 찾 아가 월지를 움직이려 했으나 허사였다.
이 일을 사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끝내 사명으로 하는 월지의 '요령을 얻지 못한 채[要領不 得]' 체류한 지 1년이 지나 귀국 길에 올랐다."
장건은 귀국 도중에 또 흉노에게 잡혀 1년 넘게 억류되었 으나 부하 한 사 람과 탈출, 13년만에 장안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3년 후 박망후에 봉해진 장 건은 계속 서역 사업에 힘썼는데 그의 대여행은 중국 역사에 많은 것을 남기는 계기가 되었다.
우선 동서의 교통이 트이면서 서방으로부터 명마 보석 비파 수박 석류 포도 등이 들어오고 한나라로부터는 금 과 비단 등이 수출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실크 로드'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WN]대완국 : 중앙 아시아 페르가나 지방에 있었던 작은 나라.
[출 전]《史記》<大宛專>《漢書》<張騫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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