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일망타진(一網打盡)

eorks 2010. 4. 11. 20:02
故 事 成 語


일망타진(一網打盡)


一:
한 일. 網:그물 망. 打:칠 타. 盡:다할 진

한 번 그물을 쳐서 물고기를 다 잡는다는 뜻.                                
곧 일당을 한꺼번에 모조리 잡는다는 말.                                     


     북송(北宋) 4대 황제인 인종(仁宗) 때의 일이다.
     당시 북방에는 거란[契丹:요(遼)]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 고, 남쪽에서는 중
     국의 일부였던 안남(安南)이 독립을 선언 하는 등 정세가 불리하게 돌아가는
     데도 인종은 연약 외교로 일관했다.

     그러나 내치(內治)에는 괄목할 만한 치적이 적지 않았다.

     전한(前漢) 5대 황제인 문제(文帝)와 더불어 어진 임금으로 이름난 인종은 백
     성을 사랑하고 학문을 장려했다.

     그리고 인재를 널리 등용하여 문치(文治)를 폄으로써 이른바 '경력(慶曆:인종
     의 연호)의 치'
로 불리는 군주 정치의 모범적 성세(聖世)를 이룩했다.

     이 때의 역사적인 명신으로는 한기(韓琦) 범중엄(范仲淹) 구양수(歐陽脩)
     마광(司馬光) 주돈이(周敦 ) 장재(張載) 정호(程顥) 정이(程 ) 등이 있었는데,
     이들이 조의(朝議)를 같이하다 보니 명론탁설(名論卓說)이 백출(百出)했고 따
     라 서 충돌도 잦았다.

     결국 조신(朝臣)이 양 당으로 나뉘어 교 대로 정권을 잡게 되자 20년간에 내
     각이 17회나 바뀌었는데, 후세의 역사가는 이 단명 내각의 시대를 가리켜 '경
     력의 당의 (黨議)'
라 일컫고 있다.

     이 무렵, 청렴 강직하기로 이름난 두연(杜衍)이 재상이 되 었다.

     당시의 관행으로는 황제가 상신(相臣)들과 상의하지 않고 독단으로 조서를
     내리는 일이 있었는데, 이것을 내강 (內降)이라 했다.

     그러나 두연은 이 같은 관행은 올바른 정 도(政道)를 어지럽히는 것이라 하여
     내강이 있어도 이를 묵 살, 보류했다가 10여 통쯤 쌓이면 그대로 황제에게 돌
     려 보 내곤 했다.

     이러한 두연의 소행은 성지(聖旨)를 함부로 굽히 는 짓이라 하여 조야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때 공교롭게도 관직에 있는 두연의 사위인 소순흠(蘇舜 欽)이 공금을 유
     용하는 부정을 저질렀다.

     그러자 평소 두연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어사(御史:검찰총장) 왕공진(王拱
     辰)
은 쾌재를 부르고 소순흠을 엄히 문초했다.

     그리고 그와 가 까이 지내는 사람들을 모두 공범으로 몰아 잡아 가둔 뒤 재 상
     두연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범인들을 일망타진()했습니다(吾一網打盡矣)"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그 유명한 두연도 재임 70일 만에 재상 직에서 물러나
     고 말았다.


     [주]안남 : 인도차이나 동쪽의 한 지방, 당나라의 안남 도호부(安南都護府)에
                     서 유래한 명칭이어서 베트남인들은 쓰지 않는다고 함.

     [출 전]《宋史》《東軒筆錄》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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