牧民心書

망두석으로 잡은 범인

eorks 2011. 1. 29. 08:38

牧民心書
제1장 부임 6조[관직에 처음 부임하면서 지켜야 할 사항들]
망두석으로 잡은 범인
是日有民訴之狀이거든 其題批宜簡이니라
시일유민소지상이거든 기제비의간이니라.
이 날 백성들의 소장(訴狀)이 들어오면 마땅히 판결은
간결하게 해야 하다.
- 이사(이事) -
    
      옛날에 이 마을 저 마을로 다니며 비단을 팔러 다니는 장사치가
    있었다.
      어느 날. 그 비단 장수는 산을 넘다가 몸이 고단해서 망두석(무덤 앞
    의 양쪽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이 있는 양지 바른 곳에서 비단 짐을 풀
    어 놓고 잠시 낮잠을 잤다. 그런데 한참 자고 일어나 보니 망두석 옆에
    놓아 두었던 비단 짐이 보이지 않았다. 잠든 사이에 누가 훔쳐간 것이
    었다. 비단을 팔아 근근이 살아가는 비단 장수는 눈앞이 캄캄했다.
      비단 장수는 여기저기 찾다 못해 고을의 사또에게로 달려갔다. 사또
    는 사정을 다 들은 뒤 그에게 물었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단 말이냐?"
      "예, 그렇습니다."
      "무엇이 봐도 봤겠지, 한번 잘 생각해 보아라."
      사또가 자꾸 다그쳐 묻자 비단 장수가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정말 본 사람이 없습니다. 망두석이 봤으면 모를까....."
      사또가 그의 말꼬리를 놓치지 않고 다시 캐물었다.
      "뭐라구? 지금 망두석이 봤다고 했느냐?"
      "예. 그렇습니다만......"
      "여봐라, 그 망두석이 범인을 봤을 테니 속히 망두석을 잡아들여라."
      사또가 명령을 내리자 포졸들은 망두석을 잡으러 우르르 몰려갔다.
    하지만 망두석을 잡으러 가면서도 포졸들은 저마다 속으로 웃음을 참
    느라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하하하! 망두석이 뭘 봤다고 저러시는지 원 참. 사또가 잠시 실성을
    하신 모양이군."
      어찌 되었든 사또의 명에 따라 포졸들은 망두석을 묶어다 동헌 뜰에
    엎어 놓았다. 그러자 사또는 망두석을 향해 심문하기 시작했다.
      "망두석은 듣거라! 비단 장수가 비단을 옆에 두고 자다가 비단을 잃
    어버렸다고 하는데 네가 범인을 보았을 테니 본 대로 바로 고하거라."
      하지만 망두석이 어디 말을 할 수가 있는가! 아무 말이 없자 사또는
    더욱 크게 소리쳤다.
      "저 놈의 볼기를 매우 쳐라!"
      "예, 볼기를 치라니요? 돌맹이에다 볼기를 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
    까?
      포졸들이 웃으면서 대꾸하자 사또가 노발대발하며 호령했다.
      "볼기를 치라면 칠 것이지 무슨 말이 많은가? 어서 시행하라!"
      포졸들은 할 수 없이 곤장을 들어 망두석을 내리쳤다. 그러나 볼기를
    칠수록 애꿎은 곤장만 부러질 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희한한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구경꾼들은 어찌나 우습든지 폭
    소를 터뜨렸다. 포졸들과 아전들도 모두들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 주책
    없는 사또 꼴 좀 보라는 듯이 수근거렸다. 그러자 사또가 얼굴을 붉히
    며 소리쳤다.
      "저기 웃는 놈들은 모조리 잡아 가두어라. 사또가 정사를 다스리는데
    무엄하게 조소하고 저렇게 소란을 피우다니, 저런 놈들은 곤장으로 다
    스려야 하니 우선 가두어 놓아라!"
      사또의 명령이 떨어지자 관청 안에서는 일대 법석이 일어났다. 허둥
    지둥 도망가는 사람도 있었고, 미쳐 달아나지 못한 삼십여 명은 포졸들
    에게 허리춤을 잡혀 옥에 갇혔다.
      그런 다음 사도는 아전에게 시켜 옥에 갇힌 사람들에게 이렇게 전하
    라고 했다.
      "너희들은 사또인 내가 법으로 죄를 다스리는데 웃고 떠들며 소란을
    피웠으니, 그 죄로 비단 한 필씩 가져오너라. 그러면 곤장을 치지 않고
    놓아줄 것이다."
      그러자 옥에 갇힌 자들은 서로 빨리 나갈 욕심에 가족들에게 연락하
    여 비단 한 필씩을 가져오게 했다. 가족들도 법을 따지기 이전에 우선
    사람부터 꺼내 놓고 보아야 할 상황이므로 서둘러 비단 한 필씩을
    갖고 왔다.
      그렇게 해서 관청 안에는 비단이 쌓이게 되었다. 사또는 비단 장수를
    불러 자신의 비단이 여기에 있는지 찾아보라고 명했다. 그러자 그는 눈
    을 둥그렇게 뜨며 좋아했다.
      "이것도 제 것이고, 저것도 제 것입입니다."
      비단 장수는 비단 여러 필을 들어 보이며 사또에게 연신 고개를 꾸
    벅거렸다.
      사또는 즉시 포졸들을 시켜 그 비단을 구해온 자들을 모두 불러 들
    였다.
      "이 비단을 어디서 샀느냐? 지금 포졸들과 함께 산 곳으로 가서 비단
    을 판 자들을 모두 잡아들여라."
      그리하여 인근 마을로부터 비단을 훔쳐간 범인이 잡혀 왔다. 사또가
    그 자를 엎어 놓고 곤장을 몇 대 치게 하자 이내 범행 사실을 술술 털
    어 놓았다.
      "제가 망두석 옆을 지나다가 순간적으로 비단 욕심이 생겨서 가져
    갔습니다. 죽을죄를 졌습니다."
      범인은 순순히 자백 했고, 진심으로 뉘우친다는 점이 참작되어 곤
    장 열 대를 더 맞은 뒤 비단 판 돈을 주인에게 모두 돌려주고 풀려났
    다. 물론 훔쳤던 비단은 임자인 비단 장수에게 돌려주었다.
      애꿋은 망두석의 볼기에 곤장을 때릴 때 웃었던 사람들은 사또의 지
    혜에 감복하여 너나없이 머리를 조아렸다.
    

......^^백두대간^^........白頭大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