牧民心書
12. 解官 六條(해관 6조)
◎ 관직은 반드시 체임되게 마련이니, 바뀌어도 놀라지 말고 잃어도
미련을 갖지 않으면 백성들이 공경하게 된다.
◎ 벼슬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이 옛사람의 의리이니, 교체되었다
해서 슬퍼하면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 평소에 장부를 정리해 두어서 이튼날이라도 곧 떠나는 것은 맑은
선비의 기풍이요, 문부를 청렴하고 밝게 마감하여 뒷근심이 없게
하는 것은 지혜 있는 선비의 행동이다.
◎ 부로(父老)들이 교외에서 연희를 베풀어 전송하고 어린아이가 어
머니를 잃은 것 같은 정으로 인사하는 것은 인간 세상의 지극한 영
광이다.
◎ 돌아오는 길에 사나운 백성들을 만나 꾸짖음과 욕을 당하여 나쁜
소문이 멀리 전파되는 것은 인간 세상의 지극한 욕이라고 할 수
있다.
제2조 귀장(歸裝) : 돌아가는 옷차림은 가뿐하게 |
◎ 맑은 선비가 돌아가는 행장은 가뿐하고 시원스러워 낡은 수레와
여윈 말이라도 맑은 바람이 사람을 감싼다.
◎ 상자와 채롱이 새로 만든 그릇이 없고, 구슬과 비단에 토산품이
없으면 맑은 선비의 행장이다.
◎ 물건을 못에 던지고 불에 집어넣어 물건을 천하게 하고 아끼지
않으면서 청렴하고 깨끗하다는 이름을 내걸려는 것은 천리(天
理)에 맞지 않는다.
◎ 집에 돌아와서 물건이 없어 검소하기가 전과 같은 것이 으뜸이
고, 방법을 강구하여 일가들을 도와주는 것이 그 다음이다.
채롱 : 껍질을 벗긴 싸리나무나 버들가지 따위로 서로 어긋나게 엮어
짜서 함(函)모양으로 만든 채그릇. 안팎에 종이를 바르기도 한다.
◎ 떠나는 것을 애석하게 여김이 간절하여 길을 막고 유임하기를 원하
는 것은 그 빛을 역사책에 남겨 후세에 전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은
말과 형식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 대궐로 달려가 유임하기를 빌었을 때 나라에서 그대로 허락하여 주
어서 백성들의 뜻에 따르는 것은 예전에 착한 것을 권하는 큰 방법이
었다.
◎ 명성이 드높아져서 이웃 고을에서 와 주기를 청하거나, 두 고을에
서 서로 와 주기를 다투면 이는 어진 수령의 좋은 평가이다.
◎ 오래 재임하여 서로 편안하게 되었거나 이미 늙었는데도 애써 유
임 시켜서 오직 백성의 뜻에 따르고 법에 구애되지 않는 것은 태평
세대의 일이다.
◎ 백성이 사랑하고 사모하기 때문에, 혹은 그 치적의 명성으로 다시
그 고을에 부임하게 되는 것 역시 역사책에 빛나게 되는 일이다.
◎ 어버이의 상을 당해서 돌아간 자를 백성들이 놓지 않으려 하면 다
시 임명시키기도 하고, 상사를 마친 뒤에 다시 제수하기도 한다.
◎ 몰래 아전과 함께 모의하여 간사한 백성을 꾀어 움직여서 대궐에
나아가서 유임하기를 빌게 하는 것은, 임금을 속이고 윗사람을 속
이는 것이니 그 죄가 매우 크다.
◎ 법에 저축된 자를 백성들이 불쌍히 여겨 서로 이끌고 임금에게 호
소하여 죄를 용서해 주기 바라는 것은 옛날의 좋은 풍속이다.
제5조 은졸(隱卒) : 세상을 떠나는 것에 대하여 |
◎ 관직에 있다가 죽어 맑은 덕행이 더욱 빛나, 아전과 백성이 슬퍼하
여 상여를 붙잡고 부르짖으며 울고, 오래 되어도 잊지 못하는 것은
어진 목민관이 보여 주는 유종의 미이다.
◎ 오래 병으로 누워 위독해지면 곧 거처를 옮겨야 한다. 정당(政堂)
에서 운명하여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게 해서는 안 된다.
◎ 상사(喪事)에 소용되는 쌀은 이미 나라에서 주는 것이 있으니, 백
성이 부의하는 돈을 어찌 두 번이나 받을 수 있겠는가! 유언으로 못
하도록 명령하는 것이 옳다.
◎ 고을을 잘 다스렸다는 명성이 널리 퍼져 항상 특이한 소문이 들리
면 사람들이 칭송하게 된다.
정당 : 지방의 관아.
◎ 죽은 뒤에 생각하여 사당을 세워 제사지내 주면, 그 유애가 남아 있
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 살아서 제사지내는 일은 예가 아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백성들이
이를 행하여 풍속이 되었다.
◎ 돌에 새겨 덕을 칭송하여 영원토록 보도록 하는 것이 이른바 선정
비이다. 진심으로 반성하여 부끄럽지 않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 목비(木碑)를 세워 덕정(德政)을 칭송하는 것은 찬양하는 것도 있
고 아첨하는 것도 있다. 그러므로 세우는 대로 곧바로없애고 엄금
하여 치욕에 이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 이미 떠나간 뒤에도 사모하여 그가 노닐던 곳의 나무까지도 사람
들이 아끼게 되는 것은 감당(甘棠)의 유풍이다.
◎ 그리운 마음을 잊지 못하여 수령의 성을 따서 그 아들의 이름을
짓는 것은 이른바 민정(民情)을 크게 볼 수 있다는 말이다.
◎ 떠난 지 오랜 후에 다시 그 고을을 지날 때, 백성들이 반갑게 맞
아서 마실 것과 도시락밥이 앞에 가득하면 말몰이꾼도 빛이 난다.
◎ 많은 사람들의 칭송이 오래도록 그치지 않으면 그가 행한 정사
(政事)를 알 수 있다.
◎ 있을 떼에는 빛나는 명예가 없었으나, 떠난 뒤에 사모하는 것은
공을 자랑하지 않고 남모르게 착한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 훼방과 칭찬의 참됨과 선과 악의 판단은 반드시 군자의 말을 기
다려서 공정한 안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감당 : 감당이란 팥배나무를 말한다.
옛날 주나라의 소공이 남쪽지방으로 가서 이 나무 밑에서 송사를
처리하였는데, 백성들이 그를 생각하여 떠난 뒤에도 잘 보전했다
한다.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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