牧民心書

진흙을 바른 뒤 세운 선정비

eorks 2011. 3. 28. 00:18

牧民心書
제12장 해관 6조[관직에서 퇴임할 때 지켜야 할 사항들]
진흙을 바른 뒤 세운 선정비
木碑頌惠有誦有諂하니 隨卽去之하고 卽行嚴禁하여
毋底乎恥辱矣니라.
목비송혜유송유첨하니 수즉거지하고 즉행엄금하여
무저호치욕의니라.
목비(木碑)를 세워 덕정(德政)을 칭송하는 것은 찬양하는 것도 있고
아첨하는 것도 있다. 그러므로 세우는 대로 곧바로 없애고 엄금하여
치욕에 이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 유애(遺愛) -
    
      조선 헌종 때 이상황이라는 사람이 충청도 암행어사가 되어 길
    을 나섰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새벽에 괴산군을 지나가고 있었다. 괴산 고을의 5리쯤에 못
    미쳤을 때였는데, 아직 컴컴한 기운이 남아 있었다. 이상황이 길을 걷
    다가 보니 저 멀리 미나리 밭 근처에서 농부로 보이는 사람 하나가 허
    리를 굽혀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는 팔뚝만한 나무판 같은 것을 몇 개 들고 있었는데, 하나를 진흙
    속에 거꾸로 꽂았다가 빼내어 바로 세운 후 길옆에 꽂는 중이었다. 좀
    더 가까이 가서 보니 농부는 다시 수십 걸음 앞으로 걸어가더니 다시
    나무 판 하나를 꺼내어 진흙 칠을 한 다음 길가에 꽂았다. 이상황이 농
    부에게 다가갈 때까지 그는 똑같은 행동을 다섯 번이나 하는 것이었다.
      이상황이 농부에게 이르자 이상하게 여겨 까닭을 물었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이오?"
      그러자 농부가 대답했다.
      "이 나무판은 선정비라고 한답니다. 선비께서는 이에 대해 더 이상
    묻지 마시고 그냥 가던 길이나 가시지요."
      선정비라면 선정(善政)을 기리기 위한 비인 듯한데 왜 이유를 묻지
    못하게 하는지 이상황은 더욱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몰라도 자세한 것은 묻지 않겠소. 그러나 이
    것 하나만 몹시 궁금하니 대답을 해주시오. 그 선정비라는 것을 왜
    진흙을 묻혀서 세우는 것이오?"
      농부가 마지못해 대답을 했다.
      "어제 관청에서 이방이 저를 불러 말하기를, 지금 암행어사가 사방으
    로 돌아다니고 있는 중이니 아무도 없는 새벽녘에 이 나무판을 동쪽 길
    에 다섯 개, 서쪽 길에 다섯 개씩 세우라고 했답니다."
      "그럼 그 명령에 따르면 그만이지 왜 지흙을 묻혀서 세우고 있소?"
      "눈먼 어사가 진짜로 선정을 베풀어 비를 세운 것으로 생각할까 염
    려되어 진흙 칠을 하여 세우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은 묻지 말아 주
    십시오."
      농부는 그 말을 끝내자마자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이상황은 농부의 행동이 무슨 뜻인지 알아채고는 그 길로 관청으로
    들어가 앞뒤 정황을 캐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선정비에 얽힌 내막
    부터 따져 고을의 사또를 봉고 파직시켰다.
    
    ※《목민심서》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심혈을 기울여 지은 치민(治民)의
        지침서이다. 총 12장을 다시 각 장마다 6조로 나뉘어져 모두 72조로
        구성되어 있어 한 구절 한 구절씩 연재하여 올렸습니다.
    오늘로 목민심서를 종료합니다. 감사합니다.
    


......^^백두대간^^........白頭大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