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오태백세가(吳太伯世家)`편에 실려 있는 얘기다. 오 (吳)나라 왕 수몽(壽夢)의 네 아들 중에 막내 계찰(季札)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수몽은 아들 가운데 가장 현명하고 재능이 있 는 계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어 했다. 신하와 백성들 또한 수왕의 뜻에 동의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계찰 자신만은 생 각이 달랐다. "왕위는 반드시 장자인 큰형님이 이어야 합니다." 계찰은 산으로 들어가 밭을 갈면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 다. 계찰의 인품과 정개를 잘 아는 형들은 자례대로 집권을 함 으로써 순서에 따라 자연스럽게왕위가 계찰에게 이어지도록 하였다. 그러나 본인의 차례가 되었지만 계찰은 여전히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에 할 수 없이 연릉(延陵)의 제후로 봉했고 이때부터 `연릉의 계자(季子)`라 불렀다. 계찰에게는 보검이 한 자루 있었다. 계찰이 보검을 차고 사 신의 소임을 맡아 북쪽으로 가는 중에 서(徐)나라에 들러 서왕 (徐王)을 알현하게 되었다. 서왕은 계찰의 보검을 얻고 싶었지 만 감히 청하지 못했다. 서왕의 속마음을 눈치 챈 계찰은 보검 을 내어주고 싶었으나 사신으로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야 했기 때문에 바치지 않았다. 그리고는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서(徐)나라에 들렀다. 보검을 전해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서 왕은 이미 죽고 없었다. 계찰은 보검을 풀어 서왕의 집 나무에 걸어놓고 길을 떠났다. "서왕은 이미 죽었는데 또 누구에게 주는 것입니까?" 이해할 수 없다는 물음에 계찰이 답했다. "마음속으로 이미 주기로 작정을 하였는데 그가 죽었다고 해 서 어찌 뜻을 바꿀 수 있겠는가?" `계찰괘검(季札掛劒)`은 이 이야기에서 나온 말로, 그만큼 신 의를 중히 여긴다는 뜻이다. 사마천(司馬遷)은 계찰의 인물됨을 이렇게 평가했다. "연릉계자(延陵季子)의 어질고 덕성스런 마음과 도의(道義) 의 끝없는 경치를 앙모한다. 조그마한 흔적을 보면 곧 사물의 깨끗함과 혼탁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어찌 그를 견문이 넓고 학식이 풍부한 군자가 아니라고 하겠는가!" |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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