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멸망을 청하는 일, 재앙에 몸을 던지는 일을 의미하는 말이지만, 이 말의 본뜻은 요즘의 뜻과는 약간 다르다. 양나라의 도개(到漑)는 근직하고 총명하며, 학문을 잘 하여 고조의 신임이 두터웠다. 경(鏡)이라는 아들이 있었지만 일찍 죽어 손자 진(盡)이 뒤를 이었는데, 이 역시 총명하여 고조의 아낌을 받았다. 어느 날 진이 고조를 따라 경구(京口)의 북고루(北顧樓)에 올 라 시를 지으라는 명령을 받고 곧 시를 지어 바쳤더니, 고조는 그 시를 도개에게 보이며, "진은 진정 재주꾼이로다. 그리고 보니 그대의 여태까지의 문장은 어쩐지 진의 손을 빌은 것이나 아닌지?" 하며, 도개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내렸다. "벼루에 먹을 갈아 글을 전하고, 붓은 털끝을 날려 편지를 쓰 거니와 나는 부나비 불에 날아듦과 같아, 어찌 몸을 태움에 그 칠 수 있으리오, 반드시 늙어서는 거기에 이를 것이라. 진실로 이를 소진에게 물려주리로다." 그대는 벌써 노인이 되었다. 아무리 고생을 하여 명문을 짓는 다 해도 자기에게 손해가 올 뿐이니, 이제는 귀여운 손주에게 이름을 전하시라는 뜻이다. 도개가 상동왕(湘東王) 아래서 벼슬을 하고 있을 때, 고조가 상동왕에게 말했다. "도개는 네게 신하로 있을 인물이 아니디. 그는 너의 스승이 니, 항상 그의 의견을 들으라." 도개는 키가 8척이요, 위풍당당하며 행동이 단정했다. 게다 가 청렴결백(淸廉潔白)하였고, 스스로 수업에 힘쓰면서 검소한 생활을 했다. 그의 방은 텅 빈 곳에 책상과 의자가 있을 뿐, 시 녀를 두는 일도 없었고, 의복도 관복밖에는 화려하게 입지 않 았으며, 관이나 신발도 낡도록 사용하였다. 너무나 남루해 보 여 천자가 행차할 때 통행금지를 당하여, 조관(朝官)의 증명을 내보여야 하는 때도 있었다. 고조는 도개를 특히 좋아하여 언제나 장기 친구로 삼아 때로 는 밤을 새우는 일도 있었는데, 도개의 집 뜰에 별난 돌이 있어, 고조가 장난삼아 그 돌과 <예기>의 일부를 장기에 걸게 했다. 그런데 도개가 장기를 졌는데도 도시 그것들을 갖다 드리지 않 으므로, 고조는 빨리 가져오라고 독촉을 했다. 도개는, "폐하를 모시는 몸으로 어찌 예(예기를 일컬음)를 잃어서야 되겠나이까?" 라고 말하여, 고조도 허허 웃고 말았다. 도개의 집안은 모두가 화목하였고, 특히 도개와 그의 아우 흡 (洽)은 형제의 의가 좋아서 흡이 죽자 같이 쓰던 방을 절에 기 부하고 남은 평생 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아침저녁 중을 불러 불공을 드렸다고 한다. <양서(梁書)> `도개전(到漑傳)`에 나오 는 얘기다. |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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