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여인류류비진(刑如人類類非眞) 인기불여차우인(人豈不如此偶人) 백도천전환자립(百倒千顚還自立) 자가능유자정신(自家能有自精神) 모양은 사람이나 사람은 아니야. 그런데 사람은 어찌 이 오뚝이만도 못한가. 오뚝이는 백 천 번을 넘어지고 굴러도 다시 일어나니 스스로가 제 정신 지니고 있는 것을.
19세기 중엽 조선의 최영년(崔永年)이 엮은 `해동죽지(海東竹枝)`에 수록되어 있는 민간의 노래다. 오뚝이는 사람 모양을 하 고 있는 목우(木偶)로 사람이 이를 아무리 굴리거나 넘어뜨려 도 다시 일어난다. 사람들이 오뚝이를 귀엽게 여기는 것은 그 동작에서 칠전팔기(七顚八起) 또는 불요불굴(不搖不屈)의 강 인한 정신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오뚝이는 한자로 `부도옹(不倒翁)`이라고도 한다. 거듭된 실 패와 좌절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분발, 노력한 부도옹 같은 인 물 하나를 소개한다. 조선 세조 때부터 중종 때에 으르기까지 정권의 중심부에서 활약한 유자광(柳子光)이라는 간신이 있었다. 그는 서얼 출신 으로 일찍이 경복궁 건춘문(建春門)을 지키던 갑사(甲士 ; 요즘 의 수도방위군)였다. 그러던 그가 이시애(李施愛)의 난 때 공을 세워 병조정랑이 되자, 남이(南怡) 장군을 모함하여 죽인 후 익 대공신(翊戴功臣) 1등에 더해 무령군(武靈君)으로 봉해지기까 지 했다. 그 후 감히 한명회(韓明澮)를 모함하려다 도리어 파직 을 당해 재산을 몰수당하고 공신을 삭탈 당했다. 그러나 그는 곧 현란한 처세술로 성종 주위 권신들의 환심을 얻는 데 성공 하여 공신을 복직 받은 후 황해도 관찰사로 나갔다. 이후 연산 군이 즉위하자 이른바 `조의제문(弔義帝文)` 사건ㅡ무오사화 ㅡ을 터트려 다시 정권의 중심부에 자리 잡게 된다. 갑자사화 후 대간들의 탄핵으로 다시 권좌에서 밀려난 유자 광은 중종반정 후 반정의 주역 성희안(成希顔)과의 친분으로 다시 정계에 복귀했다가 또다시 대간들의 탄핵을 받아 유배되 어 귀양지에서 죽었다. 누가 그랬던가! 악인에게서도 배울 것은 있으니, 그 집요함 과 철저함이라고, 비록 간신 모리배였다 하나 유자광의 권력에 대한 집착과 오뚝이 같은 처세술은 대단한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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