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 말엽, 환제(桓帝) 때 일이다. 발호(跋扈)장군이라는 별명 을 가진 횡포한 외척 양기(梁驥)가 죽임을 당하자, 이를 대신하 여 단초(單超) 등 소위 오사(五邪)의 환관이 포학을 마음대로 하기 시작했을 때, 일부 관료들은 이에 대해 과감한 항쟁을 전 개하여 드디어 `당고(黨錮)의 화(禍)`라 불리는 대규모의 탄압 까지 받게 되었다. 이 항쟁의 중심이 되고 정의파 관료 중의 영 수인 이응(李膺)이란 사람이 있었다. 이응은 자사 태수를 역임하고 오환교위(烏桓校尉), 탁료장군 (度遼將軍) 등의 군직도 맡아서 이름을 남겼으나, 환관의 비위 를 거슬러 한때는 옥에 갇히기도 했지만, 뒤에 선배의 추천으 로 사례교위(司隷校尉)가 되었다. 그 즈음 궁정에는 환관이 득세하여 퇴폐해지고 있었는데, 이 응은 홀로 절조를 지켰으므로 명성은 점점 더 높아갔다. 청년 학생들은 그를 흠모하여 `천하의 모범은 이원례(이응의 字)`라 칭찬했고, 신진관료들도 그와 알게 되고 그의 추천을 받은 것 을 큰 영광으로 알아 이를 `등용문(登龍門)`이라 했다. 용문(龍門)은 황하 상류에 있는 한 계곡의 이름인데, 물살이 매우 급해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큰 고기도 좀처럼 그곳을 오 르기 어려웠다. 한번 그 급류를 거슬러 오르기만 하면, 그 고기 는 곧 용이 된다고 전해 오고 있었다. 따라서 등용문 ㅡ용문을 오른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것을 돌파하여 약진의 기회를 얻 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응의 문하에 모여 든 신진관료들의 경우는 천하의 명사들 속에 끼여 정의의 정치에 몸을 바칠 수 있다는 순진한 동기에 서 이 말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속된 말로는 출세의 실마 리를 붙드는 일이 동용문이다. 중국에서는 특히 진사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입신출세의 제일보라는 뜻으로 `등용문`이라 불 렀다. <후한서> `이응전(李膺傳)`에 전하는 얘기다. 한편, 등용문의 반대의 뜻을 가진 말에 `점액(點額)`이란 것 이 있다. 등용문을 오르려고 급류에 뛰어든 물고기들이 물의 기 세를 이기지 못하여 바위 모서리에 이마를 부딪고 비틀거리며 다시 하류로 떨러져 내리는 일, 즉 출세 경쟁의 패배자나 낙제 생을 두고 하는 말이다. |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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