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이야기

그늘에서 핀 꽃

eorks 2013. 10. 12. 00:04
고전(古典) 이야기 ~수련과 성찰~

그늘에서 핀 꽃
타고난 인재도 있겠지만 평범한 사람이 수련을 통해 등용문을 통과하고 세상이 알아주는 명실상부한 인재로 거듭나기까지는 혹독한 시련과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좌구명이란 사람이 있었다.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공자의 행적을 남긴 `논어`에 좌구명에 관한 얘기가 두 번 나온다. 좌 구명은 눈이 멀었을 때에 `국어(國語)`라고 하는 역사책을 남겼 다. 사마천(司馬遷)은 또 누구인가? 다 알다시피 천하제일의 역 사책인 `사기`를 지은 사람이다. 사마천은 궁형(宮刑)을 당하고 나서 그 좌절을 딛고 `사기`를 지었다. 이 두 사람의 업적이 모 두 불구의 상태에서 나왔음을 상기한다면 인간의 육체적 불구 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그런 예는 또 있다. 주나라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문왕은 감 옥에 갇혔을 때 `주역`을 남겼다. `주역`은 진시황이 천하의 모 든 책을 불사르고 선비들을 땅에 묻어 죽일 때도 불사르지 않 은 책이다. 그만큼 중요한 서적으로 수천 년을 내려온 것이다.
다산 정약용 같은 사람은 무려 18년 동안이나 귀양살이를 하 면서 많은 저서를 남겼다.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에서 9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면서 자신의 예술을 극치에 올려놓은 추사체를 완성하였다.
이들 중에서도 사마천의 일대기는 특히 고금의 교훈이 되고 있기에 소개한다.
사마천이 이능(李陵)을 변호해 주다가 궁형(남자의 성기를 없애는 형)을 받게 된 데에는 사정이 있었다. 천한(天漢) 2년, 이능은 이광리(李廣利)의 별동대가 되어 흉노 정벌에 나아갔었 다. 그는 변경에서 이름을 날린 이광(李廣)의 손자이다.
이능은 겨우 5천의 군사를 거느리고 있었으며, 게다가 기마 는 가지지도 못했다. 그런데도 적의 주력과 맞부딪혀 몇 십 배나 되는 적과 십여 일에 걸쳐 싸웠다. 이능으로부터 전황 보 고를 가지고 가는 사자가 올 때마더 서울에서는 천자를 비록하 여 모든 벼슬아치들이 축배를 들고 기뻐했다. 그러나 그가 싸 움에 졌다는 보고를 받자 천자와 대신들은 더할 수 없이 슬퍼 했다.
그 이듬해에 죽은 줄로만 알았던 이능이 흉노에게 항복하여 후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한나라의 무제는 이 소식을 듣자 불같이 노하여 이능의 일족을 모두 잡아 죽이 려 했다.
뭇 신하들은 자기 몸의 안전과 이익을 위해 무제의 얼굴빛을 살피며 이능을 위해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했다. 조정에는 벌써 어두운 구름이 끼기 시작한 때였던 것이다. 이 때 오직 한 사람, 이능을 위해 변호한 사람이 사마천이었다. 사마천은 일찍이 `이능이란 사나이는 생명을 내던지고서라도 난지(難地)로 뛰어 드는 애국의 무인(武人)`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해서 그는 역 사가로서의 준엄한 눈으로 일의 진상을 뚫어보고 대담 솔직하 게 말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황공하오나 아뢰옵니다. 이능은 근소한 병력으로 억만의 적 과 싸워 오랑캐의 왕을 떨게 하였사옵니다. 그리하오나 원군 (援軍)은 이르지 않고, 아군 속에서 반역자가 생기게 되어 부득 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사옵니다. 그래도 이능은 병사들과 함 께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데까지 힘을 발휘한 명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줄 아옵니다. 그가 흉노에게 항복한 것도 필시 뒷 날 한에 보은할 의도가 있는 까닭이 아니오리까. 이러한 때에 이능의 공을 천하에 드러내 주심이 옳은 줄 아옵니다."
이 말을 들은 무제는 크게 노하여 `사마천은 이광리의 공을 가지고 이능을 두둔하러 든다`고 하여 사마천을 옥에 가두었을 뿐 아니라, 드디어는 궁형에 처했다. 궁형은 남자로서의 자격 을 잃을 뿐 아니라, 수염이 없어지고 얼굴이 말쑥해지며 성격 까지도 변한다는 형벌이다.
사마천 자신도 이 형벌을 가장 하등의 치욕이라고 말하고 있 다. 그러나 그는 `세인(世人)은 내가 형을 받은 것쯤 구우(九牛) 의 일모(一毛)를 잃은 것으로밖에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 했다.
왜 사마천은 살아서 그러한 치욕을 견디지 않으면 안 되었을 까. 이런 형을 받는 사람은 비록 종이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많은데, 어째서 목숨을 끊지 않았을까. 거기에는 그의 저 서인 <사기>를 완성하기 위한 큰 뜻이 있었다.
그의 부친 사마담(司馬談)은 성력(星歷)과 제사(祭祀)를 맡은 태사령(太史令)이란 직책을 가졌던 사람으로, 죽을 때 통사(通史)를 기록하라고 유언했었다. 사마천으로서는 <사기>를 완성 하지 않고서는 죽을래야 죽을 수 없는 것이었다. 아버지와 아 들의 뜻이 불같이 일어 사마천의 집념이 되어 그는 설령 세상 심정에서도 붓을 놓지 않고 써 나갔다. 속된 무리들에게는 알 도리 없는 괴로움을 맛보면서 그는 <사기> 130권을 완성한 것 이다.
`구우의 일모`는 문자 그대로 아홉 마리 소의 털 가운데 한 오 라기 털로, `다수 속의 극소수`, `수에도 들지 않는 일`을 의미 한다.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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