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나라 경공(景公)이 정치의 중요한 요점을 물었을 때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임금은 임금다울 것이요,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비는 아비답 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할 것이라." 임금은 어진 사랑과 위엄을 가지고 신하를 대하고, 신하는 임 금에게 충절을 다하며, 아비는 자애와 위엄으로서 자식을 대하 고, 자식은 아비에게 효를 다한다. 이것이 곧 인간의 의지를 넘 은 `하늘의 가르침`이라고 공자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서주 의 씨족제 봉건사회를 하늘의 뜻으로 된 이상적인 사회라고 보 았다. 서주에서는 개인은 집안에 속하고 집안의 주권은 가부장 에게 있다. 가부장은 가족 전원을 통솔하며, 피를 같이 하는 다 른 집의 가부장들과 함께 씨족에 속하며, 씨족의 주권은 족장 에게 있다. 족장은 씨족 전원을 통송하여 다른 씨족의 족장들 과 함께 제후를 따르며, 제후는 자기를 따르는 전 족장을 이끌 고 천자를 따른다. 족장ㅡ가부장ㅡ개인의 종속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요구된 것이 `효(孝)`라는 도덕이요, 천자ㅡ제후ㅡ족장이 라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이 `충(忠)이라는 도덕 이다. 그런데 서주 말기에 이르러 노동의 생산력이 증대됨에 따라 천자와 제후간의 힘의 균형이 깨지고, 동주에 이르자 이미 천 자로서의 지배권은 사실상 잃어버리게 되었다. 제후는 또 신하 로 따르는 족장에게 토지를 나눠 주고 있었으므로 이 역시 같 은 현상이 나타나서 춘추시대에 와서는 제후 ㅡ유력한 족장간 의 힘의 균형도 깨어져, 때때로 유력한 족장들이 제후를 죽이 거나 폐위를 시키는가 하면, 통치권을 관리하기도 했다. 이러한 힘 관계의 불균형은 족장ㅡ가부장 사이, 가부장ㅡ개인 사이에도 일어나서 공자가 태어난 춘추 말기에는 천자ㅡ제후ㅡ 가부장ㅡ개인이라는 권력의 피라미드 구성은 극단적으로 어지 럽혀져 모든 것이 `힘`에 의해 지배되고, 이와 함께 인간이 `개 인의식`을 자각하여 극도로 이기적인 경향으로 흐르게 되었다. 유일의 존재로서의 `하늘`을 믿고, 주조(周朝)의 천자의 권위 는 하늘이 내려 주신 것이라고 생각하는 공자가 사회의 평화와 질서를 바랄 때, 서주의 옛날 제도를 그리워하고 그 도덕을 동 경했을 것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공자의 조국 노나라에서는 산환씨(三桓氏)라고 불리는 유력 한 세 씨족이 임금을 국외로 내쫓아 객사하게 했으며, 이웃나 라인 제에서는 유력한 귀족 최씨가 자기 소실을 범한 임금을 죽였는가 하면, 그 소실의 아들에게 상속의 권리를 주려다가 정실 자식에게 죽음을 당하고 있다. 또 공자가 오랫동안 살고 있던 위나라에서는 임금이 남색에 탐닉해 있었으므로 정실부인이 딴 사내를 두었고, 이를 부끄럽 게 여긴 태자가 어머니를 살해하려다가 국외로 도망치기도 했 다. 그리고 이 태자는 남색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왕위를 이은 아들로부터 왕위를 빼앗으려고 싸우게 되었고, 이 난리에서 공 자의 애제자 자로가 죽기도 했다. 서주의 질서 있는 사회를 다시 이룩해 보고 싶다는 비원(悲願)을 품고 공자는 조국 노나라에서도 노력했고, 중원을 유랑 하며 가는 곳마다 제후들에게 그 뜻을 퍼뜨렸다. 그러나 씨족 이라는 굴레에서 해방된 개인과 권력을 쥔 경(卿)과 대부(大夫) 와 사(士)라는 신하들이 그런 걸 배격하지 않을 리가 없다. "아침에 도(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으니라[朝聞道夕死可奚]." 늙은 공자의 입에서 새어 나온 탄식이었다. 위의 하안(何晏) 등으로 대표되는 `논어`의 고주(古註)의 해 석에 의하면, "아침에 온 세상에 도가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들으면 저녁 에 죽어도 좋다." 라고 되어 있지만, 남송의 주희(朱喜)의 신주(新註)에서는, "아침에 도(사물의 당연한 이치)를 들으면 이로서 수양의 목 적을 달성한 셈이므로, 그 날 저녁에 죽어도 가(可)하다." 라고 하는 구도(求道)에의 열정의 토로라고 해석하고 있다. <논어> `이인편(里仁篇)`에 나오는 얘기다. |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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