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제자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물었다. "자장(子張)과 자하(子夏) 어느 쪽이 현(賢)이오니까?" 사실 이 두 사람은 퍽 대조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던 모양이다. <논어>에도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어느 날 자장이 공자에 게 이렇게 물었다. "사(士)로서 어떠하면 달(達)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는 도리어 자장에게 반문했다. "자네가 말하는 달(達)이란 건 무엇인가?" "제후를 섬겨도 반드시 그 이름이 높아지고, 경대부(卿大夫) 의 신하가 되어도 역시 그 이름이 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문(聞)이지, 달(達)은 아니야. 그 본성이 곧아 의(義) 를 좋아하고, 말과 얼굴빛으로 제후를 섬기거나 경대부의 사사 로운 신하가 되어도 그릇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달`이 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덕이 있는 듯한 얼굴을 지으면 서 어긋난 행동을 하며, 그러고도 거기에 머물러 조금도 의심 치 않고 있으면 제후를 섬기거나 경대부의 신하가 되어 군자란 말을 듣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문`이란 거야." 자장의 허영심을 나무란 것이다. 그렇듯 꾸중을 들을 만큼 자 장은 모든 일에 적극적이었고 자유분방하게 자기를 과시하려 드는 데가 있었던 것 같다. 한편 자하에게는 이렇게 타이른 적이 있었다. "군자유(君子儒)가 되라. 소인유(小人儒)가 되지 마라!" 군자유라는 것은 자신의 수양을 본의로 하는 구도자를 말함 이요, 소인유란 지식을 얻는 일에만 급급한 학자를 가르킨 것 이다. 아마 자하는 함부로 금과옥조(金科玉條)를 두어, 그 때문 에 자신이 얽매이는 점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 두 사람의 비교를 해 달라는 자공에게 공자는 말했다. "자장은 지나쳤고, 자하는 미치지 못한다." "그러면, 자장이 나은 편입니까?" "지나침은 못 미침과 같으니라(→과유불급 ; 過猶不及)." 흔히 이 말은 중용(中庸)을 가르킨 말로 해석되고 있다. 중용 은 또 조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결국 공자가 추구한 것은 자기와 외계(外界)와의 완전한 조화였으니 말이다. <논어> `안 연편(顔淵篇)`, `옹세편(雍世篇)` 등에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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