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이야기

역수가(易水歌)

eorks 2015. 1. 12. 00:04
고전(古典) 이야기 ~리더를 위한 고전읽기 책략편~

역수가(易水歌)
춘추전국시대에는 적국의 황후를 죽이기 위해 한자루의 비수에 모든 것을 걸고 적지에 들어가는, 소위 자객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유명한 이가 형가(荊軻)였다.
형가는 위나라 출생으로, 조국에서 써 주지 않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가 연나라에 가서 그 곳에서 이름 높은 의협의 인물인 전광(田光)과 친하게 되었다. 그는 또 축_거문고 비슷한 악기_의 명수인 고점리(高漸離)와 뜻이 맞아 언제나 둘이서 술을 마시고는 취흥에 고점리는 축을 연주하고, 형가는 노래를 부르며 놀았다. 그런가 하면, 혼자 들어 앉아 책을 읽거나 검(劍)을 가는 일도 잊지 않았다.
진나라가 천하 통일의 거창한 일을 착착 진행시키고 있을 때 였다. 한을 쳐부수고 조를 멸망시킨 진은 조와 연의 국경을 흐르는 역수(易水)에 이르러 연에 침입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연의 태자 단(丹)이 진나라의 왕 정(政)_뒷날의 시황제_을 찔러 죽일 자객으로 골라 뽑은 것이 바로 전광이었다.
그러나 전광은 자기의 나이가 많음을 생각하고는 형가를 천거하고 그 결의를 굳게 하기 위해 스스로 목을 베어 죽었다. 큰일을 맡고도 그 일을 해 내지 못하는 나이 든 몸이 태자를 위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 즈음 진으로부터 번어기(樊於期)라는 장군이 연나라로 도망해 와서 태자 단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었다. 형가는 진왕이 막대한 상금을 걸고 번어기의 목을 구하고 있음을 알자, 그 목과 독항(督亢)_연나라에서 가장 기름진 땅_의 지도를 가지고 가면 진왕은 안심하고 만나 주리라 생각하고, 그 일을 태자에게 말했다.
태자 단은 형가를 하루 바삐 진에 보내고 싶어 하면서도 번어기를 죽이는 것은 차마 못할 일인 것 같았다. 그래서 형가는 직접 번어기를 만나 목숨을 버려 달라고 청했다. 그러는 것이 진왕에 대한 번어기의 원수를 갚는 길이요, 태자 단에 대한 은혜에 보답하는 일이며, 또 연나라의 걱정을 덜어 주는 길이라고 말한 것이다. 번어기는 전광이 했듯이 형가 앞에서 스스로 제목을 찔러 죽였다.
형가는 번어기의 머리와 독항의 지도와, 또 하나 같이 진으로 갈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태자 단은 이미 출발 준비가 되었는데도 형가가 떠나지 않는 것을 보고 초조하여 진무양(秦舞陽) 한 사람만이라도 먼저 출발시키려 했다. 형가는 하는 수 없이 친구를 기다리지 않고 떠나가기로 했다. 진무양부터 먼저 보내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시기도 급박했고, 태자의 초조한 마음도 짐작하고 남음이 있었다.
태자 단은 몇몇 신하들과 함께 상복으로 바꿔 입고, 형가를 역수 감변까지 전송했다. 이윽고 헤어질 때 고점리는 축을 타고, 형가는 그 소리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역수의 바람은 차서 옷깃에 스미고, 고점리의 축 소리와 형가의 노래는 비장하게 사람들의 가슴을 흔들었다. 이제 가면 살아 돌아오지는 못할 것이라, 지금이 형가를 보는 마지막 장면인가 생각하고 고점리는 눈물을 훔치며 축을 연주하며 친구를 보냈다.
    풍소소혜역수한(풍소소혜역수한)
    장사일거혜불부환(壯士一去兮不復還)
    탐호혈혜입교궁(探虎穴兮入蛟宮)
    앙천허기혜성백홍(仰天噓氣兮成白虹)
바람은 소소하고 역수는 차다.
장사 한 번 떠나면 다시 못 올 길
호랑이 굴 어딘가, 이무기_진왕 政_의 궁으로 들어가는구나.
하늘 우러러 한 번 외치니 흰 무지개 이루었도다.

그 노래 소리는 듣는 사람의 간장을 애는 듯했다. 사람들은 모두 성난 눈으로 진나라 쪽을 흘겨보며, 머리털이 치솟아 관을 찌를 듯했다. 이미 멀어져 간 형가는 자취도 보이지 않는 거리에 있었다.
진나라에 간 형가는 번어기의 머리와 독항 땅 지도를 가지고 진왕 앞에 나갈 수 있었으나, 비수가 번쩍였을 때 진왕은 용케 몸을 빠져 나와 형가의 손에는 오직 왕의 소맷자락이 있을 뿐니었다. 뒤에서 왕을 덮쳐누를 준비를 하고 있던 진무양은 이미 붙들려 거꾸러지고 있었던 것이다. 형가는 기어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스스로 앞가슴을 열어 손가락질하며 진왕에게 찌르라 했다. 진왕 정이 천하를 통일하여 시황제라 불린 것은 그로부터 7년 뒤의 일이다. <사기> `자객전`에 전한다.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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