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원래 장안에서 유명한 어느 재상집 종의 자식이었다. 그
의 할아버지 적부터 그 집에서 종살이를 해 왔었기 때문에 다른
종들보다 크게 신임을 받아 온 식구가 재상집 안팍을 거침없이
드나들곤 했었기에 그는 열일곱 살 때 열 여섯 살 난 안마님의
몸종년과 눈이 맞아 어둠 컴컴한 밤만 되면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서로 부등켜안고 희롱하기도 했다.
종년의 방이 내청에 있기 때문에 그는 살금살금 기어 들어가곤
했는데 하루는 밤이 이슥해졌을 때 술도 약간 취한 김에 종년의
방으로 다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때문에 그는 요것이 아마 안방
마나님의 어깨라도 주무르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을 것이라고 생
각하며 그 곳으로 갔다.
술이 취한 데다가 정욕이 한껏 돋았던 참이었기에 이것저것 생
각할 겨를도 없이 선뜻 안마루로 올라섰다.
술김이었기에 감히 넘보지 못할 주인 마나님 방이라고 해도 겁
날 것이 없었다.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기어가다가 보니 손에 부드러운 몸이 닿
았다.
더운 여름철이라 윗옷은 완전히 벗어젖혔는지 옆구리의 말랑말
랑하고도 탄력있는 살결이 닿는 순간 종놈은 이것저것 생각할 힘
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온몸이 화끈 달아올라서 슬금슬금 배 위를 더듬었더니 젊은 마
나님의 몽실한 젖가슴이 닿았다. 그 순간 눈이 뒤집힌 종놈은 그
대로 달려들어 욕심을 채우기 시작했다.
깊이 잠들었던 마나님은 갑자기 온몸이 묵직한 것에 눌리는 듯
답답해서 잠에서 깨어났다 그제서야 어렴풋이 자기 몸이 침범당
한 것을 알고
"밤중에 별안간 웬일이세요?"
하고 콧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종놈이 대답할 리가 없었다. 종놈
은 그제서야 그녀가 마나님이라는 것을 술김에나마 알게 되며 놀
랐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으응?`
부인은 그제서야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정신을 차렸다. 어쩐지
몸에 닿는 살결의 감촉이 다르다고 생각하며 밀치려고 했으나 완
강한 종놈의 힘을 당할 도리가 없었다.
때문에 소리를 지르려 했으나 생각을 바꾸었다. 소리를 쳐 보
았자 이미 더럽혀진 몸이 깨끗해질 리가 없었고, 남편에게 가슴
아픈 상처만 줄 것 같았기에 이를 악물고 참으며 오욕의 시간을
견뎌 냈다.
종놈이 이왕 내친 걸음이었고 몸이 한창 달아올라 있었기에
`에라! 모르겠다!`
고 생각하며 끝까지 욕심을 채웠기 때문이었다.
일을 끝내고 난 종놈은 어차피 몸을 합친 것이요, 그렇다고 `잘
못했습니다` 하고 말하며 물러난다고 해서 좋게 해결될 일도 아
니라고 생각했기에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와 자기 방으로 가서
누워 버렸다. 하지만, 내일 아침이면 모가지가 두 동강이로 잘리
우거나, 그렇지 않고 부인이 남사스러워 그 일을 숨긴다고 해도
무슨 낯으로 얼굴을 들어 그녀를 대하랴 싶은 생각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런데 사랑 대청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대감님을 부르는
소리와 함께 고함 소리가 들리더니 내청에서 울음소리가 들려 오
기 시작했다. 종놈은 아찔해지는 현기증을 느끼며 두 눈을 크게
떴다.
안방 마님이 자결한 것이었다. 더할 수 없는 욕을 당하고 나자
더러운 몸으로 어찌 집안 사람들과 맑은 하늘을 대하랴 싶은 마
음에 장 안에 있던 필목을 꺼내 대들보에 걸고 목을 매어 생명을
끊어 버린 것이다.
그녀가 자결한 까닭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평소부터 부인은 말이 적고 정숙했기에 집안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왔고 깊은 규중에 있는 몸이어서 바깥 사람들과의 왕래도 별
반 없었다. 더욱이 며칠 동안 부인의 기색이 평상 때와 달랐던
점도 없었다.
하지만, 평민도 아닌 한 나라 재상가의 부인이 자살했다는 것
은 심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째서 그렇게 되었는가를 알
도리가 없었다.
오직 종놈만이 새파랗게 질려 떨리는 몸을 잠시도 진정하지 못
하며 자리에 누운 채 끙끙 앓고 있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동고는 그 동안 몇 번이나 증오하는 눈으
로 중을 노려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니?"
"도저히 그대로는 참아낼 수가 없더군요. 재상댁 집안은 온통
난리가 나서 뒤끓고…… 그래 할수없이 저의 애비에게 사실대로
고해 바쳤습죠."
"응, 그래."
"그랬더니만 소승의 애비가 몸을 부르르 떨며 방바닥의 목침응
들어 소승을 사정없이 후려갈겼습니다. 그리고는 저에게 당장 달
아나 중이 되어 한평생 동안 부처님 앞에서 참회를 드리며 세상
과는 인연을 끊고서 살라시더군요. 소승의 생각에도 일이 그쯤
되고 보니 다시 더 생각해 볼 여지도 없었기에 그 길로 이 산에
들어와 머리 깎고 중이 된 지 벌 써 삼십여 년이 됩니다."
이야기를 끝낸 중은 또 한 번 길게 한숨을 뿜으며 동고를 유심
히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의 눈에는 한 방울의 눈물도 없었고, 얼
굴은 무거운 짐이라도 벗어 놓은 듯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그런 일이 있은지 삼십년 만에 처음으로 사실을 입 밖에 내놓
은 이 날 밤이었다.
동고는 어이없어하면서 한참 동안 뚫어지게 그를 노려보다가
물었다.
"그래, 그걸로 끝인가?"
"그럼 그걸로 끝이지 뭐가 또 있겠습니까? 고놈의 종년 때문에
신세를 망친 거지요."
"종년 때문이라…… 재상 부인의 몸을 더럽혀 해친 생각은 안
하고 종년 때문에 신세를 망쳤다는 원한만 남았군 그래?"
"그야 종년 때문입죠. 제가 처음부터 안방 마님인 줄 알구 그
런 것인가요?"
중은 자기의 죄를 뉘우치지는 않고 변명하는 말만 계속하고 있
었다.
그 때까지 꾹 참고 듣기만 하던 동고는 더 이상 듣고 앉았을
수가 없어서
"뭐가 어째?"
하고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섰다. 이어서
"이놈, 부처님을 모시는 중으로만 알았더니 천하의 몹쓸 악귀
였구나! 너 같은 놈이 오늘까지 살아왔다니 너무나 기가 막히다."
하고 내뱉으면서 그의 어깨를 덥썩 잡아 일으키고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발로 찼다.
"우아악"
중은 뒷걸음질치는 것처럼 움직이다가 어두운 벼랑 아래로 떨
어졌다.
"……"
동고는 넋이 나간 얼굴이 되어 아무도 없는 절벽 위에 한동안
앉아 있었다. 그는 이윽고 정신을 차리며 웅얼거렸다.
"고약한 중놈!"
절벽 아래로 내려간 그는 비척거리고 걸으며 절간으로 돌아왔
다. 그가 문을 열고 텅 빈 법당 안으로 들어가 여래상(如來像)을
쳐다보니 촟불 앞에서 졸고 있는 것처럼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
는 부처님만 있었다. 한데 동고가 보기에 자기를 반기며 미소를
짓는 것 같았다. 때문에,
`부처님도 중보다 나를 좋아하실 게야. 악한 중놈 보다는 한 사
람의 착한 속인이 오히려 부처님의 설법에 부합한 일일 테니
까……`
하고 생각하면서 자기 자신을 위로하며 불상 앞에 몸을 꿇어앉았
다. 그리고는 온갖 잡념을 잊으려고 언제나처럼 눈을 딱 감고 맹
자(孟子)를 첫편에서부터 소리내어 읽기 시작했다.
얼마쯤 글을 읽던 그는 자기도 모르게 벽에 기댄 채 어렴풋이
잠이 들었는데 그의 눈 앞에 환한 불빛이 나타났다. 그가 눈을
들어서 보니 산밑에서 등불이 흔들리며 푸름옷을 입은 종년들에
게 앞뒤로 호위를 받는 교자 하나가 절을 향해서 다가오고 있었
다.
깊은 밤중에 절간을 찾아오는 귀인이 누구일까 하고 생각하면
서 그가 마루 아래에 내려서서 머뭇거리고 잇노라니 교자가 절
앞에 와서 멈추며 안으로부터 점잖은 중년 부인이 시비의 부축을
받아 가며 내렸다. 그리고는 동고를 향해 두 손을 모으고 절을
했다.
"아니…… 누구신지……?"
동고가 어리둥절해하며 묻자 부인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나리께선 저의 삼생(三生)의 은인이십니다. 저는 삼십 년 전
이 절의 중놈이 저의 집 종으로 있을 때 그놈에게 욕을 당한 모
재상의 아내이옵니다. 깨끗한 몸을 더렵혀 욕되고 부끄러운 마음
에 앞뒤 일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을 버렸기 때문에 원수놈의
이름을 밝히지 못해 오늘까지 원수를 못 갚고 있어 구천에 사무
친 원한을 풀 길이 없었사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오늘 밤 대감
께서 그토록 저의 원수를 갚아 중놈의 육신이 가루가 되고 뼈가
산산조각이 나서 영겁의 윤희를 면치 못하는 지옥의 깊은 골짜기
로 떨어졌사오니 어찌 통쾌하지 않겠사옵니까? 삼십 년 동안이나
맺혀 있던 원한이 이로써 맑게 개었사옵니다. 그리고 대감님께서
는 광통교 옆에서 살다가 죽은 음탕한 계집 때문에 원독에 얽혀
지금까지 벼슬길이 막혀 있사온데 오늘 밤 안에 제가 그 계집년
에게 다시는 그러지 못 하도록 타일러 멀리 쫓아 보내겠습니다.
그렇게 하여 제가 입은 은혜의 만 분의 일이라도 갚을까 하옵니
다."
동고는 뜻밖의 일이었기에 자기도 뭔가 한 마디 하고 싶었으나
교자는 벌써 등불과 함께 살아지고 있었다. 때문에 할수없이 발
길을 돌리려다가 돌에 채여 넘어지면서 펄쩍 깨어나고 보니 한바
탕 꿈니었다.
그로부터 동고는 대붕(大鵬)이 나래를 편 것처럼 벼슬길에 들
어서는 것이 순탄해졌으며 후에 재상까지 되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71F28234C07CF6F01) ......^^백두대간^^........白頭大幹
![](http://avimages.hangame.com/avgif/sb/sbm06wa.gif) ![](https://t1.daumcdn.net/cfile/cafe/1670984E4FE87ABF1B) ![](http://avimages.hangame.com/avgif/sb/sbf05ra.gif)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