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새 만에 내려온 언년이를 보자 마름은 반가워서 어쩔 줄 몰
랐다.
"한 댓새밖에 안 되지만 언년이 생각이 어찌나 나는지 견딜 수
가 있어야지. 잘 왔어."
서른 살이 넘은 여편네의 축 쳐진 배 보다는 언년이의 처녀 같
은 배가 얼마나 탐스러운지 몰랐다. 마름의 말은 언년이가 듣기
좋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언년이는 그가 끄는 대로 끌려가 그의 품에 안겼고 다시 자기
의 아랫도리로 부끄러워 하면서 마름을 받아들였다. 두 사람은
한동안 몸을 태우다가 떨어졌다.
"실은, 양식값 때문에……"
"알았어. 겨울철이니 양식이 걱정일테지. 내 몫으로 변리를 놓
은 쌀이 한 쉰 가마는 넘으니까, 그까짓 두 사람 양식쯤이야 언
년이만 자주 와 주면……"
언년이는 그가 준 쌀 자루를 이고 산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쌀이 떨어질 때쯤 다시 내려왔다. 그렇게 서너 번 다녔을까, 갱목
을 할 때가 되었고 마을 사람들이 농번기의 품앗이 약속으로 일
을 해 주러 올라왔다. 그 중에 한 놈이 기호에게 귀뜸을 해 주었
다.
"산골댁하고 박 진사 집의 마름하고 아주 친하더군. 수상해. 내
가 보았거든."
그 소리를 듣자 기호는 못마땅해 하면서 말했다.
"멋대로 허튼소리 말아. 내가 쌀을 꾸러 보낸 거야. 생사람 잡
을 소리를 했다가 주둥아리를 찢어 버릴 테니깐."
"생사람 잡을 소리가 아냐. 쌀을 꾸어 주면 주었지 왜 손
을 꼭 잡았다가 놓고 헤어지느냐 이거야. 산골댁은 뺨을 빨갛게
물들이고서 말이야."
그제서야 기호의 눈에서 `번쩍`하고 불이 튀었다. 이튼날이 되
자 그는 쌀이 남았는데도 쌀을 꾸어다 놓으라고 말해 언년이를
마을로 내려보낸 후 몸을 숨기며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아내가 진사댁 대문에 이르자 마름 놈이 반갑게 맞으며 손을
잡더니 그녀를 안으로 끌어들였다. 앞집 담장 너머로 그 꼴을 보
던 기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휭하니 달려갔다.
대문 안으로 들어가서 대뜸 언년이의 신이 놓인 행랑채 방으로
갔다.
방문을 와락 열고 보니, 마름 놈이 언년이의 손을 잡아끌어 품
에 안고 있는 참이었다.
대뜸 달려들어가면서 마름 놈을 한 주먹으로 때려눕히고 언년
이의 머리채를 감아 쥔 기호는 어지럽게 흩어진 그녀의 앞가슴을
주먹으로 후려갈겼다.
"죽일 년, 화냥년!"
언년이의 코에서는 피가 터지고 머리카락은 한 웅큼이나 빠져
나왔다. 마름 놈은 어느 사이에 피했는지 그 자리에 없었다.
이튼날부터 기호는 손수 밥을 끓여 먹고, 굴을 파러 나갔다. 목
구멍이 포도청이라 우선 먹어야 살겠으므로, 그 더러운 밥이나마
먹어야 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금은 파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언년이가 조금 기동을 하게 되었을 때 굴에서 돌아온
기호는 집 안이 텅 빈 것을 보았다.
"나쁜 년, 결국 도망치고 말았구나. 도망갈 테면 도망가라. 혼
자서러도 금덩어리는 파내고야 만다."
모진 마음을 먹은 기호는 정말로 발광한 사람처럼 낮에도 어두
운 밤에도 굴을 파는 일에만 온 힘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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