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진사는 동네에서 돈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백 석지기 논을 가지고 있는 동네의 어른이었는데 인심이 박하
고 욕심 많은 사람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그러나 행랑채에 마름,
머슴 등을 다섯 식구나 두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헐뜯지 못
했다.
마을 사람들은 대개 김 진사에게 뭔가 신세를 져야만 했으므
로, 되도록 김 진사에 대한 말을 조심하고 있었다.
언년이가 김 진사 댁 대문 앞에 이르자 마름 녀석이,
"이거 웬일로 산에서 내려왔어?"
하고 물으면서 거만스럽게 아래 위를 흝어보았다. 언년이는 그
때 나이가 스물 두 살이었지만 몸집이 작달막해서 열 아홉 정도
로 밖에는 안 보였다. 얼굴도 별로 잘 생긴 곳은 없었으나 그런
대로 반반했다.
"저어 연장이 부러져서 돈을 좀빌리러……"
하고 언년이는 머뭇머뭇 말했다.
"연장 값이 몇 푼이나 된다고, 이 댁까지 와?"
"그래도 그 이가 진사님 댁에 가 보라고 해서……"
"자아, 이리로 들어오라구. 그 정도의 돈은 나라도 장만해 줄
수 있어."
마름은 언년이를 방 안으로 끌어들였다. 언년이는,
"고마워요. 하지만 전 여기서……"
하면서 방문 앞에서 머뭇거렸다.
"들어오라니까. 겨울철 산 얘기도 듣고 싶으니……"
"어서 가 봐야 해요. 돈은 내년 봄에 품으로라도 꼭 갚는다
고……"
"글쎄 들어오라니까. 돈이 어떤 건데 그리 선뜻 줄 수 있나. 여
러 가지 얘기를 들어 보아야지. 자아, 날씨도 춥구……"
마름은 자기 방이 아닌 머슴방에 들어가서 불러들이려 하는 것
이었다. 한쪽에서는 들어오라느니 한쪽에서는 들어가지 않겠다느
니 한참 동안 말이 오고 갔는데, 언년이는 결국 귓부리가 떨어져
나갈 것같이 시려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한 구석에 얌전히 도사리고 앉아 있으려니 마름은 음흉한
눈으로 반히 바라보면서,
"산골댁은 참 곱군……"
하고 은근히 말을 던져 왔다. 언년이는 얼굴이 화끈화끈 붉어지
면서 가슴이 철렁했다. 자꾸 방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던 뜻을 그
제서야 알았기 때문이었다.
"연장 값 쯤이야…… 자아, 이리 와 봐. 그 손 정말로 곱게도
생겼는데 거친 산골 일에 그만……"
하면 은근히 다가앉으며 그녀의 손을 잡아당겼다. 언년이는 화들
짝 놀라 손을 빼어내면서,
"아이, 안돼요."
하고 숨가쁜 소리로 말했다. 눈이 퀭해 가지고 방 안에서 기다리
고 있을 기호의 얼굴이 반사적으로 머리 속에 떠올랐기 때문이
다. 마름은 다시,
"누가 아나. 연장값은 어쩔 테야……"
하고 중얼거리면서 그녀의 손목을 와락 잡아당겼다.
"아이, 안돼요."
언년이는 다시 손을 잡아 빼고는 문 밖으로 횡하니 달려 나갔
다. 그 길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눈길을 달려 매봉산 골짜기로
들어갔다.
"빌려 왔어?"
방안에 드러누워 있던 기호가 상체를 벌떡 일으키면서 물었다.
"진사님이 안 계셔서……"
언년이는 자기도 모르게 거짓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
"그럼 내일 다시 가 봐. 일하기는 다 틀렸으니 굶고 자자
구…… 아니 덫을 놓은 곳에나 가 볼까. 산토끼라도 한 마리 걸
렸을지 모르니……"
기호는 어슬렁 어슬렁 눈길을 밟으며 산비탈로 올라갔다. 그러
나 맨손으로 돌아왔다. 돌아올 때까지 언년이는 방 안에서 누워
있었는데 가슴이 뛰고 있었다. 그냥 가슴이 뛰었다. 마름이 손을
잡아끌던 그 순간의 느낌이 왜 그런지 자꾸 머리 속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튼날 기호는 해가 뜨자마자,
"어서 가봐!"
하고 독촉을 했다.
"당신이 가 봐요."
"난 부러진 놈으로라도 단 한 덩어리나마 더 떼어내야 하겠어.
어제 하루 쉬었더니 발광이라도 하게 될 것 같아. 제기랄, 연장만
망가지지 않았더라면 조금이라도 더 팠을 텐데……"
갱목(坑木)을 할 때만 품앗이 꾼을 부를 뿐, 파 들어가는 것은
어디까지나 혼자서 해야만 했다.
"당신이 가 봐요."
"글세 갔다 오라면 갔다 와! 하루가 얼마나 아깝다는 것을 당
신도 잘 알잖아."
"아이, 나는 싢어요."
"갔다 오라니까!"
기호는 크게 소리쳤다. 그의 눈에 핏발 같은 것이 선 것을 본
언년이는 할 수 없이 집을 나섰다. 김 진사 댁을 향해서 걷는 그
녀의 가슴은 콩볶는 것처럼 뛰고 있었다. 어제 있었던 일이 다시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제발 김 진사님이 계시고 마름은 없어 주었으면……`
싶었다.
그러나 마름은 마치 언년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기나 한 것
처럼 행랑채 들창문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언년이는 가슴이
철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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