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野史

천재 화가 장승업(張承業) 行狀記(3)

eorks 2015. 10. 2. 03:12
韓國野史 이야기(異人과 奇人의 기담)

천재 화가 장승업(張承業) 行狀記(3)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구중 궁궐(九重宮闕) 밖으로 도망할 수 가 없었다. 생각을 계속하던 그는 결국 도포와 갓을 벗어 버리고 흔곤히 잠자는 별감의 옷을 훔쳐 갈아입었다. 그는 다소 가슴이 떨렸으나, 캄캄한 그믐밤이었는지라 별로 큰 지장이 없이 두 번 째 탈출에 성공했다. 남들은 모두 부러워하고 선망하는 위치에 있었지만 영달과 부귀를 헌신짝처럼 여기는 그에게 있어서는 그 것이 싫기만 했다. 그는 다시 그리운 임의 품속과도 같은 술집으로 들어가서 처박 혔다. 술을 다시 마시게 되자 흥겨운 노래가 저절로 흘러 나왔다. 고종 황제는 승업이 두 번째로 궁성을 탈출했다는 보고를 듣고 는 노기를 참을 수 없어 그놈을 즉각으로 포박하여 투옥하라고 명령하였다. 그 때 마침 고종황제의 옆에서 상감을 모시고 있던 충정공(忠 正公) 민영환(閔泳煥)이 이를 목도하였다. 장승업의 목숨이 경각 에 달린 것을 알고, 또 승업이라는 위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 던 민영환은 곧 고종께 말했다. "장승업이 무엄하게도 상감 마마의 분부를 저버린 죄는 백 번 죽어도 모자랄 것이오나, 그는 본시 사람됨이 천성으로 호주 방탕하여 그럴 뿐이옵지 일부러 상의에 거스르려고 그렇게 한 것 은 아니라고 생각하옵니다. 그러하오니 한 번만 용서하여 주시고 승업을 소인의 집에 두어 주시면 하명하옵신 그림을 끝내도록 조 처 감독하겠사오니 통촉하시옵기 바라옵니다." 고종도 그의 주벽(酒癖)은 무가내하(無可奈何)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렇게 하라고 윤허했다. 그 날부터 장승업은 민충정공의 집에서 유숙하면서 그림을 그 리게 되었는데, 민영환은 그가 망칠 것을 걱정하여 그의 의관을 벗겨서 감추어 두고 그가 좋아하는 술을 무진장으로 제공하였다. 장승업은 좋아하면서 매일같이 술만 마셨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 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모자라는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억벽으로 먹고 억벽같이 쓰러져 자야만 될 것 같았다. 처음에 민영환의 집에 와서 수일 동안은 그림에 잠심하는 듯 하였으나 또다시 발광에 가까운 술에의 향수를 도저히 참을 길 없었다. 그는 또다시 궁중에서처럼 차츰 차츰 탈출하고 싶은 생 각이 간절해졌다. 어느 날 민충공은 예궐하여 없고, 감시하던 하인이 마침 졸 고 있는 틈을 타서 승업은 이웃방에 걸려 있는 상복(喪服)과 방 갓을 훔쳐 몸에 걸친 다음, 살금살금 그 집에서 빠져 나오고 말 았다. 그는 또다시 술집에 숨어서 술 타령을 하였으나 포교의 손에 붙잡혀서 도로 민영환의 집으로 들어갔고, 달포 남짓한 동안 전 후 세 번이나 다시 탈출했다가 세 번 다 붙잡혀 들어갔다. 민영환은 그를 불러 앉혀 놓고 말했다. "아 이 사람아, 아무리 사람이 우둔하기로니 그러는 법이 있단 말인가? 상감께서 크게 노하셔서 당장 포박하라고 지엄한 분부가 내렸었는데 중간에 내가 끼어서 우리 집에 두고 잘 타일러 그림 을 그리게 하겠다고 여쭈어 무사하게 만들지 않았나. 그런데도 매일같이 탈출하여 술로만 일월을 보내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 가? 사람이 사람된 소이가 어디 있단 말인가?" 장승업은 민영환의 호의를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그는 머리를 숙이고 말했다. "대감의 지우를 남달리 받자와 이처럼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 을 소인도 잘 알고 있습니다. 대감께 미안하다는 말씀은 이루 다 형용할 수 없습니다만, 뼛속에 스며 오는 술에 대한 매력을 어찌 할 수가 없습니다. 그 경을 칠 술을 끊는 약은 없겠습니까?" "매일 장취로 술만 마셔서야 사람을 무엇에 쓴단 말인가? 앞으 로 절주(節酒)를 해서 좋은 그림을 그리도록 하게. 상감님의 뜻에 맞는 그림을 그리기만 하면 돈과 벼슬이 한꺼번에 굴러 들텐 데…… 이 사람아, 정신 좀 차리게." "소인은 돈도 벼슬도 부귀도 영화도 모두 싫습니다. 그저 한세 상 술타령이나 하다가 갔으면 하는 것이 소인의 평생 지원입니 다." 민영환도 그의 뜻을 그 이상 거스리고 싶지는 않았다. "자네의 뜻은 잘 알겠네마는, 장가도 안 가고 그냥 늙을 작정 인가?" "장가는 가서 무엇하겠습니까. 그럭 저럭 한세상 살다가 가겠 습니다." "그렇지만 상감께 바칠 그림은 꼭 그려야 하네." 하지만 그는 끝끝내 고종 황제께 보내는 큰 병풍을 완성시키지 못한 채 중간에서 중등무이하고 말았다. 그는 글을 배우지 못했 기에 그가 그림을 그리면 화제(畵題)는 안심전(安心田)이 써 주 곤 했어다. 그는 결국 55세를 일기로 부귀도 영달도 도외시한 하 나의 광객(狂客)으로 짧은 한평생을 마쳤다.

......^^백두대간^^........白頭大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