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野史

피(皮)씨 사위 行狀記(3)

eorks 2015. 10. 5. 00:15
韓國野史 이야기(異人과 奇人의 기담)

피(皮)씨 사위 行狀記(3)
    [어제 이어서……] 이준경이 세상을 하직한 때로부터 어느덧 오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어느 날 피씨 사위가 불쑥 말했다. "오늘부터 장사를 한 번 해 보았으면 합니다. 밑천을 좀 대 주 십시오." 피씨는 사위가 무슨 말을 꺼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대 답했다. "암, 대 주고 말고." 인간 화복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위가 장사를 시작하면 바 리 바리 돈을 벌어 들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위는 동고 대감이 죽는 시간까지도 미리 알고 있지 않았는 가?` 피씨는 돈삼천 냥을 마련해서 사위에게 주었다. 그런데 사위는 집을 떠난지 반년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을 보내 지 않았다. 사위의 비범한 점에 대해서는 믿는 구석이 있었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소식이 끊어지니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매일 낮잠을 자던 그 버릇이 객지에서 재발하지나 않았나 하고 근심이 되기도 했다. 어느 날 사위는 낭중 무일푼(囊中無一分)이 되어 돌아왔다. 집 안 사람들은 모두 어이없어했는데 그는 "장사에 경험이 없어서 그리 되었습니다." 하고 한탄하기만 했다. "오천 냥만 더 있으면 큰 이익을 볼 것입니다." "오천 냥을 변통해 줄 테니 다시 해 보게." "그렇게 해 주시면 일이 되겠습니다." 그는 또다시 오천 냥을 가지고 집을 떠났는데 이번에는 일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때문에 피씨 가족들은 "삼천 냥 손해 보는 데 반년이나 걸렸으니 오천 냥 손해를 보 자면 배는 더 걸려야 할 거야." 하고 말하며 스스로 위로했다. 그러던 중에 사위는 어느 날 또다시 빈털터리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피씨는 속으론 불쾌했지만 겉으로는 아닌 체하며 말했 다. "매양 손해를 보기만 하니 이제부터 어찌한단 말인가?" "이제 뺀 칼을 도로 꽂을 수도 없고 다시 계속해야만 들인 밑 천이라도 뽑아 볼 텐데." "그럼 어떻게 한단 말인가? 돈이 한 푼도 없으니." "집과 논밭이라도 다 팔아서 좀 마련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할 수 없지. 그렇게라도 해야지." 피씨는 가산을 판 돈 수천 냥을 사위에게 주고 남은 몇백 냥으 로 초막을 사서 옮겨 앉았다. 사위는 또 돈을 가지고 집을 떠났 다. 피씨는 탄식하며 중얼거렸다. "사람의 집안이 망할 때가 되면 별일이 다 있으니." 그런데, 사위는 또다시 빈 손으로 돌아왔다. "이번엔 어찌 되었나?" "부끄럽습니다만 또 허탕이올시다." "이제 어찌하려나?" "무슨 도리가 있겠습지요." "무슨 도리라니? 나는 이제 더 어떻게 할 수가 없네." "장인 댁 재산은 다 없어졌으니. 이제는 이 상공 댁에 가서 말 씀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말하기가 난처한데." "제가 가서 말씀드릴까요?" "그러면 같이 가세." 두 사람은 동고 상공의 아들들을 찾아가 공손히 인사했다. 덕열(德悅), 예열(禮悅) 두 형제는 반갑게 그들을 맞이했고 또 그들의 소청을 들어 주었다. 돈 오천 냥을 가지고 사위는 또 집을 떠났다. 그리고 떠난지 몇 달이 되도록 소식이 묘연하였다. 어느덧 일 년이라는 세월이 또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사위는 또 빈 손으로 돌아왔다. "장사를 할 때마다 손해를 보기만 하니 무슨 이유가 있는가? 상공께서 돌아가실 것을 알 듯이 장사 속도 잘 알텐데. 이거 큰 일났네그려." 라고 말하는 덕열 형제에게 피씨 사위는 다시 청했다. "이제 아주 끝장을 봐야겠으니 돈이 없으시면 집칸을 팔아서라 도 마지막 밑천을 대 주십시오." 덕열 형제는 전장을 팔아 조그만 집을 장만하고 남은 돈 수천 냥을 또 내주었다. 피씨 사위는 그 돈을 가지고 또 집을 나갔는 데 일 년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전후 여러 차례의 장사를 하는 동안 벌써 십 년이나 되는 세월이 흘러가고 있었다. 때는 선조 대왕 15년 춘삼월이었다. 피씨 사위가 다시 빈손으로 돌아와서 이덕열 형제에게 엉뚱한 말을 했다. "지난 일에 대해서는 물으실 것도 없습니다. 그 동안 소인이 눈여겨 보아 둔 곳이 한 곳 있으니 모두 그리로 옮겨 가도록 하 십시다. 서울 살림은 피차 어렵게 되었습니다. 남은 가장 집물을 방매하여 가지고 소인의 처가와 함께 떠나도록 하십시다. 앞날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 상책일까 합니다." 부친의 부탁이 있었는지라 그들 형제는 이의 없이 낙향을 결정 했다. 두 집의 식솔이 마소를 타고 동으로 떠난지 여러 날이 되었다. 모두 피곤해졌는데, 피씨 사위는 마소를 버리고 산 속으로 들어 가기 시작했다. 산은 첩첩하고 중중하여 흰구름만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높은 산 위까지 올라간 일행은 큰 바위 위에 걸터앉았 다. 그 때 사위는 미리 준비하여 두었던 백목 수백필을 꺼내어, 각 각 바위에 한 끝을 매고 한 끝을 아래로 늘여 뜨린 뒤에 말했다. "이제부터 한 사람씩 이 백목줄을 잡고 아래로 내려가십시다." 두 집 식구는 모두 이상하게 생각하며 줄을 타고 그 아래로 내 려갔다. 눈을 감고 줄을 타고 내려간 사람들은 드디어 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앞에는 평원 광야가 무한히 전개되어 있었고 큰 기와집들이 줄비하게 있 었는데 집집마다 가장집물들이 그들먹했다. 기화 요초들도 또한 눈이 모자랄 정도로 많았다. 여러 사람은 큰 누각 위에서 쉬기 시작했을 때 피씨 사위가 이 윽고 말했다. "그 동안 이 곳을 만드느라고 돈을 좀 썼습니다." "허참! 옛 글의 무릉 도원(武陵桃源)이 어디인가 했더니 바로 여길세 그려." 이덕열 형제가 크게 기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이 곳에 정착하여 두 집 식구가 살림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10 년이 지나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상공의 아들들은 산속 생활이 재미없지는 않았으나 항상 세상 소문이라도 듣고 살었다. 그 때 는 선조 25년 7월이었다. 피씨 사위가 두 집 식구들을 거느리고 높은 산 봉우리에 올라 가 멀리 보이는 마을을 가리키며 말했다. "집들이 불타고 백성들이 도망하는 것이 보이지요. 후세의 사 람들은 저것을 임진왜란이라고 말할 것이요. 난리가 지난 4월에 터지고 벌써 팔도 강산이 어육이 되었소. 임금님은 의주로 파천 하셨고 세상은 불바다가 되었소. 앞으로 8년 풍진이 벌어지게 될 것이요. 난리가 끝난 후에 세상에 나가서 충주(忠州) 남산 밑이 복된 땅이니 그 곳에 집터를 이룩하십시오." 이어서 그는, 자기가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된 것은 임진왜란을 피 하기 위해서였으며, 그것은 이준경의 은덕을 갚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또한, 이준경의 권속과 피씨의 권속만 구하고 그 밖의 생 명과 나라 일을 구하지 못한 것은 분명히 운수 소관 때문이었다 고 덧붙여서 설파했다. 이덕열 형제와 피씨는 멀리서 벌어지고 있는 그 난리의 처참한 광경을 바라보면서 피씨 사위의 말을 듣고 있자니 하염없이 솟구 치는 비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이준경이 맨처음에 거지 총각을 피씨 사위로 중매한 것은 그가 뛰어난 인물임을 알아본 까닭이며 다음에 그를 찾아가 서 장차 어찌하려는가라고 물은 뜻은 분명 임진란이 생길 것인데 그 일을 어찌하려는가를 물었던 것이다. 이준경이 이별할 때에 슬퍼하였던 것은 그가 천운이니 할 수 없다고 대답한 말 때문이 었다. 또한 `뒷 일을 부탁 한다`는 말은 기왕 세상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면 구구한 말이지만 자기의 가족들만이라도 부탁한다는 얘 기였다. 물결처럼 세월이 흘러 8년 풍진이 어느덧 지나가 다시 평화로 운 세상이 되자 이덕열 형제는 산중에서 벗어나 충주로 왔는데 피씨 사위는 그 곳까지 따라왔다가 어디로인지 자취를 감추고 말 았다.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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