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나에겐 꿈이 있어요

eorks 2015. 10. 21. 07:54
학교법인 동서학원 설립자 장성만 박사의 1인 3역
역  경  의   열  매
나에겐 꿈이 있어요
    내가 왜 힘든 유학을 선택했던가, 꿈을 펼치기 위함이다. 이제 그 꿈을 현실로 옮겨야 한다. 꿈은 성취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자에게 주어지 는 훈장이다.
      우리는 공부를 마치고 니어폴리스라는 곳으로 이사 를 왔다. 교회는 우리가 기거할 집을 제공해 주었다. 어느 것 하나 막힘없이 순조롭게 일이 진행됐다. 우리 부부는 이곳에서 아들을 낳았다. 우드 카운티 병원에 누워 있는 아들을 바라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백인 아이들 틈에 까만 머리카락의 동양 아이가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하나 님의 은혜라는 말 외에 무슨 말이 필요하랴. 백인들 틈에 당당하게 누워 있는 아들이 참 자랑스러웠다. 가계(家系)를 이을 장남의 출산은 보통 큰 기쁨이 아니었다. 작고 예쁜 백금시계 하나를 사서 아내에게 선물했다. 결 혼식때 1달러짜리 시계를 패물로 준 미안함을 좀 덜기 위 해서였다. 신시내티는 동양인이 아주 드문 도시였다. 동양인 사내 아이가 태어났다는 것은 현지인에게 아주 재미난 뉴스였다. 한번은 신문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해 왔다. "아이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나는 좀 당황했다. 아직 이름을 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에서 낳았으니 미국이라고 부르겠소. 미국(美國)이 란 말은 `아름다운 나라`라는 뜻입니다. 사람 이름으로도 괜찮지 않나요?" 이튼날, 토리도시에서 발행되는 일간신문에 우리 부부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아들의 이름을 `미국`으로 지었다는 기사와 함께…. 그때만 하더라도 한국 사람이 이 도시에 산다는 것 자체가 빅뉴스였다. 귀국 후, 외할아버지가 제국(濟國)으로 이름을 지어 주기 전까지 장남의 이름은 `미국`이었다. 지금도 미국인 친구 들은 아들을 `미국`이라고 부른다. 제국이를 낳고 2주 만에 귀국길에 올랐다. 우리 부부는 미국 유학을 통해 참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 다. 좋은 친구를 많이 만난 것이 최고의 축복이었다. 비록 피부, 언어, 풍습은 다르지만 예수를 믿는다는 공통점 하 나 때문에 쉽게 친해졌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라는 말의 의미를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좋은 사람들과 의 만남이 없었으면 미국에서의 삶이 참 고달팠을 것이다. 우리는 항상 그것을 감사드렸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 에게서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 원이사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 다"(시편 62편 1~2절) 우리에게는 꿈과 비전이 있었다. 이제 한국에 돌아가면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또 분주한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 부부가 귀국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호라이즌지(誌) 주간 맥파란드 씨가 연락을 해 왔다. "장 목사, 한국에 돌아가면 매우 바뿔 것입니다. 우리 집 에서 좀 쉬었다 가기 바랍니다. 꼭 집에 들러 주세요." 우리 부부는 롱비치에 있는 그의 집에서 휴식을 취했다. 아름다운 롱비치의 해수욕장에서 피로를 말끔히 씻어냈다. 미국에 유학 와서 온전히 휴식을 취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롱비치에서 닷새 동안 머므르며 과분한 대접을 받은 것 이 기억에 남는다. 이제 한국에 돌아가면 그 동안 기도해 온 것을 활짝 펼쳐놓아야 한다. 어쩌면 미국에서의 생활보 다 훨씬 힘겨운 삶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왜 힘든 유학을 선택했던가. 꿈을 펼치기 위 함이다. 이제 그 꿈을 현실로 옮겨야 한다. 꿈은 성취를 위 해 부단히 노력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훈장이다. 나에게는 꿈이 있다. 선명한 꿈이 있다. 그 꿈으로 인해 내가 존재한다.

......^^백두대간^^........白頭大幹

'역경의 열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엘리야의 구름  (0) 2015.10.23
성경과 보습을 들고  (0) 2015.10.22
1달러짜리 결혼 예물  (0) 2015.10.20
고급 기술자를 양성하리라  (0) 2015.10.19
한국 청년이 미국 유학을 왔어?  (0) 2015.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