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무드는 바빌로니아에서 AD 500년에 편성되기 시작했다. 현존
하는 탈무드 중에서 가장 오래 된 것은 1334년에 손으로 쓴 것이
고, 최초로 인쇄된 것은 1520년, 베니스에서였다.
1244년, 파리에 있던 모든 탈무드가 기독교도에 의하여 몰수되어
24대의 마차에 실려 불태워졌으며, 금서(禁書)로 지정되었다. 1263
년에는 기독교 교회의 대표자와 유태의 대표자가 공개석상에서 만나
탈무드가 기독교에 반하는 것인가 아닌가 하는 논쟁을 벌였다.
1415년에 이르면 유태인이 탈무드를 읽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었다.
1520년, 로마에서 모든 탈무드가 압수되어 불태워졌다. 그러나 이
런 탄압을 했던 사람들은 탈무드를 전혀 읽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탈무드를 조금도 모르면서 무턱대고 싫어했던 것이다.
그 뒤 1553년, 55년, 59년, 66년, 92년, 97년년에도 탈무드가 불
태워지는 수난을 겪었다.
1562년에는 카톨릭 교회가 검열하여 탈무드를 찾아 내서 찢어 버
렸다. 오늘날 남아 있는 탈무드는 완전한 것이 아니다. 한 번은 탈
무드를 마이크로 필름으로 찍어 두었는데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에
전혀 다른 페이지가 끼어 있는 것이 발견되기도 했다. 몇백 년 동안
잃어버렸던 탈무드가 발견된 적도 있다. 따라서 탈무드를 읽다 보면
갑자기 문맥이 끊어지는 수가 있다. 그런 곳을 카톨릭 교회가 5분의
1 내지 6분의 1 정도씩 찢어 낸 곳이다. 기독교를 비판했다고 생각
되는 부분, 혹은 비유태인에 관하여 쓴 부분은 모두 삭제해 버린 것
이다.
현재 탈무드는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어 있고, 탈무드에 관한 관
심이 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탈무드는 연구서이다. 유태인에게 있어서 공부한다는 것은 인생
최대의 목적이다. 유태인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다면 탈무드가
유태인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먼저 알아야만 한다. 하나님의
의지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유태인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므로
탈무드를 공부하지 않으면 살아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나
탈무드의 공부는 지적인 연구는 아니다. 이것은 종교적 연구이다.
유태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기리는 최대의 행위는 공부하는 것이
다. `공부는 올바른 행동을 만든다`는 것이 유태인들에게 전해 내려
오는 격언이다.
고대 유태에서는 도시나 마을은 그곳에 있는 학교의 이름에 의해
서 알려져 있었다. 교회는 공부하는 곳이기도 했다. 로마 인은 유태
인을 비유태화하기 위하여 탈무드 연구를 금지시켰다.
그런데 유태인에게서 공부를 뺀다면 유태인은 이미 유태인이 아니
다. 이 공부를 지키기 위하여 많은 유태인들이 죽어 갔다. 그러나
지식은 모든 것을 이긴다.
나는 유태인 중에서 새벽 5시에 일어나 탈무드를 공부하고 출근
하는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다. 점심 시간이나 저녁 식사 후, 또는
버스나 지하철 속에서도 유태인은 공부한다. 또 안식일에도 몇 시간
동안 탈무드를 연구한다. 탈무드는 전부 20권인데, 한 권을 다 보면
경사로 여겨 친척들과 친구들을 모두 불러놓고 성대한 축하연을 베
푼다.
유태인은 카톨릭에서의 교황과 같은 최고 권위자를 갖고 있지 않
다. 유태인의최고 권위는 탈무드이다. 탈무드를 얼마만큼 연구했는
가만이 권위를 재는 척도이다. 탈무드의 지식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라비이며, 그 때문에 라비는 권위가 인정되고 존경받
는 것이다.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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