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김현룡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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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ㅡ20화]술책을 써서 관장을 내쫓다
한 고을에 관장이 부임해 왔는데, 가족을 거느리지 않고 혼자
와서 살았다. 그런데 이 관장은 성질이 너무 급하고 과격하여 아
전들이나 관노(官奴)들이 조그마한 실수를 저지르기만 해도 불
호령이 떨어졌으며, 잘못에 대해서는 조금도 용서가 없이 반드
시 매를 치고 엄격했다. 또한 재물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 백성들
의 재물을 과도하게 수탈하여 창고에 가득 쌓아 두었다.
이에 아전들이 그 고통을 감당하기 어려워 의논하기를,
"우리들이 계속 이 관장 밑에 있다가는 관장의 매를 피해 살
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관장에게 매를 맞아
죽으나 법을 어겨 죄를 짓고 죽으나 죽기는 마찬가지다."
하면서, 계책을 꾸며 관장을 내쫒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 결정에 따라, 늘 관장 주위에서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하는
영리한 통인(通人)을 불러 다음과 같이 일렀다.
"네가 관장 주위에 있다가 관장이 혼자 앉아 있을 때 달려들
어 힘껏 관장의 뺨을 때리고는 도망가지 말고 태연하게 아무 일
도 없었던 것처럼 가만히 있어라."
며칠 후, 어느 날 오후였다. 관장이 도포를 입고 대청마루에
앉아 시를 읊으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이 시간에 일
부러 아전들과 관노들이 모두 뒤꼍으로 피하여 관장 주위에는
통인 한 사람만 있을 뿐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때 관장이 긴 소리로 통인을 불러서 명령했다.
"얘야, 따끈한 차 한 잔 올려라, 모두들 어디로 가고 이렇게
주위가 조용하냐? 모두들 어디에 있느냐?"
이에 통인이 차를 들고 올라가 관장 앞으로 가서 찻잔을 내려
놓은 다음, 갑자기 달려들어 관장의 뺨을 힘껏 내려졌다.
엉겁결에 통인으로부터 뺨을 맞은 관장은 찻잔을 팽개치면서
펄펄 뛰고 대청마루를 왔다갔다하며 발을 굴렀다.
"이놈 잡아라. 모두들 어디 있느냐? 이놈 빨리 잡지 않고 무
엇들 하느냐? 이놈이 내 뺨을 때렸어, 이놈이.....!"
이렇게 호통을 치는데 통인은 저만치에 엎드려 울면서,
"사또 어른, 소인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러십니까? 고정하
소서, 소인이 금방 차를 올리지 않았습니까?"
라고 엄살을 떨며, 결코 그런 일이 없었다고 우겼다.
때를 맞춰 뒤꼍에서 달려나온 아전들과 관노들이 관장 앞에
와 엎드리며 소리를 맞추어 아뢰는 것이었다.
"사또 나리,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다지 노여워하십니까? 차
근차근 말씀을 하소서. 소인들은 영문을 모르겠사옵니다."
이렇게 능청을 떨면서 일부러 두려워하는 체했다.
그러자 관장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손가락으로 통인을
가리키며 그가 뺨을 때렸다고 말했다. 이 말에 아전들은 모두 그
럴 리가 없다는 듯이 서로 쳐다보면서 웃었다.
이 때 한 아전이 나와 엎드리면서 아뢰었다.
"사또 나리, 고정하소서, 날씨가 너무 더워 정신이 흐려지신
것 같사옵니다. 어린 통인이 어찌 사또의 뺨을 때리겠습니까?
뭔가 착각을 하신 것같이 생각되오니, 찬물을 한 그릇 드시고 고
정하소서. 얘들아, 무엇들 하느냐? 빨리 사또께 찬물 한 그릇 올
리지 않고."
이렇게 말하며 관노를 시켜 찬물을 떠오라고 소리질렀다.
이에 관장은 더욱 분해서 화를 내고, 제 성질에 받쳐 미친 사
람처럼 넘어지고 자빠지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이날 밤새도
록 소리를 질러 댄 관장은 아무도 자기 말을 믿어 주지 않으니
가슴이 답답하고 몸속에서 열이 치솟아 병이 날 지경이었다.
그리고 이튼날, 관장이 병이 났다는 소문을 듣고 지역의 토호
들과 이웃 관장들이 문병을 왔는데, 관장은 화가 덜 풀려 씩씩거
리며 통인에게 뺨을 맞았다는 이야기를 그들에게 했다. 그러자
문병 온 사람들이 모두 웃으면서,
"아마도 사또 몸이 허약해 정신이 혼미해진 것 같습니다. 그
럴 리가 있겠습니까? 좀 고정하시고 쉬셔야 하겠습니다."
하고는 모두 피하여 물러갔다. 이후 관장이 정신 이상 증세를 보
인다는 소문이 번지니, 곧 감영(監營)에 보고되어 관장 자리에서
쫒겨나고 말았다. 이렇게 하여 이 고을에서는 축관장(逐官長)에
성공했고, 그 관장은 관장 자리에서 물러난 후 집으로 돌아가 화
병이 나서 얼마 살지 못하고 죽었다.<조선 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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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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