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김현룡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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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ㅡ18화]재상의 지혜로 친구를 도움
한 재상이 있었는데 아이 때 이름이 `돌(乭: 돌맹이)'이었고,
이 재상과 어린 시절 같이 놀던 친구는 이름이 `두꺼비(頭他非라
표기함)'였다.
세월은 무상하게 흘러 어릴 때 이웃에 살면서 같이 놀던 한
친구인 돌은 재상이 되었지만, 두꺼비는 자라면서 눈이 멀어 장
님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두꺼비는 장님으로서 점치는 법을 배
워 점쟁이가 되었는데, 그러나 점이 잘 맞지 않아 밥벌이도 제대
로 하지 못하고 어렵게 살았다.
재상이 이 친구를 보니, 앞도 못 보면서 사는 형편 또한 어려
워 끼니 걱정을 하고 있으니 가엾어서, 어떻게 좀 도와줄 수 있
는 방법이 없을까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한 가지 묘안이 떠올라, 하루는 친구 두꺼비를 불러
계책을 꾸며 보자고 제의했다. 즉,
"이 사람아, 잘 듣게, 내가 아무도 모르게 말(馬)을 끌고 가서
동대문 밖 도장곡(道莊谷) 몇 번째 소나무에 매어 놓고 오겠네.
그리고 집에와서는 도둑놈이 말을 몰고 갔다고 하면서, 자네에
게 가서 점을 쳐보라고 할 걸세, 그러면 자네가 점을 치는 체하
고는 `말이 동대문 밖 도장곡 몇 번째 소나무에 매여 있을 테니
가보라'고 말하면 되네, 알아듣겠지?"
하고 계획을 설명했다. 그러자 두꺼비는 손을 내저으면서,
"내 명색이 점쟁이인데 그런 거짓 점을 어찌 치겠는가?"
라고 말하며, 양심상 그럴 수 없다면서 거절하는 것이었다. 이에
재상은 이렇게 타일렀다.
"이 친구 두꺼비야, 사람 사는 일은 그렇지 않네, 눈 딱 감고
내 말대로 하게나, 그렇게 되면 도장곡에 가서 우리 집에서 잃은
말을 찾게 될 것이고, 곧 자네는 재상 집 도둑맞은 말을 점쳐 찾
았다는 소문이 나게 되네, 그러면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많이 점
치러 몰려오게 되어 자네는 넉넉하게 살 수 있네, 내 계책을 잊
지 말고 꼭 명심하게나."
재상은 두꺼비를 설득하여 이와 같은 계책을 설명하고 꼭 시
키는 대로 할 것을 당부했다.
이튿날 재상은 정말 이 계책대로 실행했고, 두꺼비도 입이 포
도청이라고 할 수 없이 그 말에 따랐다. 그래서 재상 친구 두꺼
비는 예측한 대로 용한 점쟁이라는 소문이 나서 문전에 사람들
의 발길이 끓이지 않으니, 따라서 수입도 많아져 살림이 넉넉해
졌다.
그런데, 마침 이 때 임금이 보배로 여기고 있는 옥대(玉帶)를
분실했다. 신하로부터 봉사 두꺼비가 점을 잘 친다는 소문을
듣고, 임금은 말을 보내 두꺼비에게 급히 대궐로 들어오라는 명
령을 내렸다.
맹인 두꺼비는 억지로 말을 타고 궁중으로 인도되어 오면서,
점을 쳐봤자 옥대를 찾지 못할 것은 뻔한 일이고 벌받을 일을 생
각하니 걱정이 태산 같았다.
한편, 옥대를 훔친 사람은 `서리(書吏)'의 직책에 있는 사람으
로서 그 어릴 때의 이름이 `불개[火狗]'였다. 그래서 흔히 주위
사람들은 그를 `불개 서리'라고 불렀다. 옥대를 훔친 `불개 서
리' 또한 두꺼비 맹인이 점을 잘 친다는 말을 듣고 있었으므로,
자기가 옥대 훔친 사실을 두꺼비 맹인은 이미 점을 쳐서 알고 있
을 것이라고 미리 짐작해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그래서 도둑놈 불개는 사람을 시켜, 점쟁이 두꺼비가 말을
타고 대궐로 들어오고 있는 길목에 가서 기다렸다가 살살 뒤따
르면서 동정을 살피라고 부탁해 놓았다.
두꺼비 맹인은 대궐이 점점 가까워지자 하도 걱정이 되어 말
위에서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며 탄식 소리가 터져나왔다.
"어떻게 말해야지? 가히 말할 수가 없구나."
하고 탄식했는데, 두꺼비 맹인은 이 말을 한문 한자로 중얼거리
고 있었던 것이다. 즉,
"불가설이(不可說耳)로다. 불가설이로다."
하고 탄식 소리를 낸 것이었다. 뒤를 따르면서 동정을 살피던 도
둑놈 불개의 하수인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가 이 소리를 들으니,
마치 불개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로 들렸다. 즉,
"불개 서리, 불개 서리."
라고 외치는 소리로 들렸던 것이다. 그래서 깜짝 놀라 도둑놈 불
개에게로 달려가서, 도저히 피할 수 없겠다며 이렇게 얘기했다.
"두꺼비 맹인은 다 알고 있습니다. `불개 서리'라고 이름과
직분까지 다 알고 크게 외치고 있었습니다. 두꺼비 맹인을 절대
로 속일 수 없으니 무슨 방도를 강구하십시오."
하수인의 애기를 들은 도둑놈 불개는 두려움에 떨면서 그 길
로 곧장 달려와, 두꺼비가 탄 말 앞에 와서 길을 막고 엎드려 용
서를 비는 것이었다.
"두꺼비 어르신,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임금님의 옥대는 소
인이 훔쳐 궁중 뜰 서쪽 계단 밑에 숨겨 놓았습니다. 제발 옥대
있는 곳만 임금님께 아뢰고, `불개 서리'라는 제 이름과 직분은
말하지 말아 주십시오, 간절한 부탁이옵니다."
이러면서 많은 뇌물을 바치는 것이었다. 맹인 두꺼비는 불개
에게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말라고 타이른 다음, 걱정 말고 돌아
가 일이나 잘 보고 있으라고 일렀다.
두꺼비는 임금 앞에 나아가서, 뜰 서쪽 계단을 밑을 파보라고
아뢰어 옥대를 찾았다. 그러나 약속대로 서리 불개의 이름은 말
하지 않았다. 임금은 옥대를 찾자 두꺼비를 매우 영특한 점쟁이
라고 칭찬하고는 큰 상을 내렸다.
그런 다음 임금은 한 가지 더 시험을 해보겠다고 했다. 마침
임금이 변소에 갔다 오면서 보니 뜰에 두꺼비 한 마리가 있기에,
내관을 시켜 그 두꺼비를 잡아 뜰에 놓여 있는 큰 돌 아래에 눌
러 놓게 했다.
그러고 나서 임금은 여러 대신들을 불러앉혀 놓고, 맹인 두꺼
비 점쟁이에게 묻는 것이었다.
"맹인은 듣거라, 과인이 조금 전 어떤 물건을 숨겨 놓고 왔느
니라, 그 숨겨 놓은 물건과 장소를 알아맞혀 보도록 하라."
이렇게 명령하고는 크게 웃었다. 이에 두꺼비가 서툰 점을 쳐
보아도 도무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 이제 죽게 되었구나 하고
생각하니, 본래 거짓 계책을 꾸민 재상 `돌'이 너무나 원망
스러웠다.
그래서 점쟁이 두꺼비는 재상으로서 임금 근처에 앉아 있는
친구 돌을 쳐다보면서 소리쳤다.
"이놈아 `돌',너 때문에 `두꺼비' 이제 죽게 되었구나. 어떻
게 이 두꺼비를 살려 줘야지, 이놈 `돌'아.....,"
하면서 땅을 치고 한탄하며 큰소리로 엉엉 울었다.
이 때 임금이 무릎을 탁 치면서 감탄하는 소리를 연발했다.
"맞다 맞아, 여봐라! 과인이 숨겨 둔 드꺼비가 큰 돌 밑에서
눌려 죽게 된 것 같다. 얼른 뜰에 있는 돌을 들어내고 두꺼비를
살려 주도록 하라."
임금은 빨리 두꺼비를 꺼내라고 이렇게 재촉했다. 임금은 점
쟁이 두꺼비에게 또 한 번 영특한 점쟁이라고 칭찬하며, 다시 많
은 상금을 내렸다. 이후 두꺼비는 점치는 일을 그만두고 편안하
게 잘살았다.<조선 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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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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