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때 유머

재판 놀이로 시집간 세 자매

eorks 2019. 5. 22. 00:20
[옛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김현룡지음]

제3부 기발한 처치, 웃음이 절로 나오고
[제3ㅡ17화]재판 놀이로 시집간 세 자매
양주에 최씨 성을 가진 선비가 살았는데, 딸 셋을 두고는 하 나도 출가시키지 못한 채 부부가 모두 왜란 때 사망했다. 그리하 여 세 자매는 살림이 어려운 오라비에게 의지해 있었는데, 각각 25세, 22세, 19세로 혼기를 모두 놓친 상태였다.

어느 따뜻한 봄날, 세 자매는 뒤뜰에 나와서,

"우리 셋이 모두 시집을 못 가고 있으니, 노처녀 연극을 꾸며 관장의 재판하는 모습인 `태수(太守) 놀이'나 한번 해보자꾸나."
하고 의논하면서 깔깔대고 웃었다. 곧 세 자매 중 큰언니가 재판 관인 태수가 되고, 둘째는 죄인을 잡아오는 형리(刑吏)가 되었으 며, 막내는 세 자매의 오라비, 곧 죄인으로 분장했다.

관장으로 분장한 큰언니가 지붕에 걸쳐 있는 사다리의 두 계 단 위로 높이 올라가 걸터앉았고, 둘째인 형리(刑吏)는 오라비로 분장한 막내를 묶어서 끌고 와 관장 앞에 꿇어앉혔다.

그리고는 둘째가 관장에게 고하듯 크게 외쳤다.

"나으리, 이 죄인은 양주 고을에 사는 최씨 선비입니다. 부모 가 모두 사망하고 세 여동생이 오라비인 이 선비에게 의지해 있 는데, 여동생 셋이 모두 시집갈 나이가 넘었는데도 이 선비는 누 이동생들을 혼인시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으니, 그 죄를 물어 벌 을 내려야 하겠기에 끌고 왔사옵니다."

이러면서 허리를 굽히고 큰소리로 아뢰었다.

이에 사다리 위에 걸터앉은 큰언니는 관장처럼 목청을 가다 듬어 내려다보면서 문책했다.

"듣거라, 죄인은 여동생 셋을 하나도 혼인시키지 않았는데, 막내동생이 나이 이미 19세이니 위의 두 여동생은 묻지 않아도 벌써 혼기를 놓친 것이 뻔하지 않느냐? 여동생 셋이 모두 재주 와 얼굴이 뛰어나서 동네에 소문이 나 있거늘, 어찌하여 그토록 늙어 가게 내버려 두고 혼인시킬 생각을 하지 않느냐? 네 죄를 네가 알렷다. 그러니 벌을 받아 마땅하니라."

이렇게 호통치니 꿇어앉아 있는, 오라비 역을 맡은 막내동생 이 머리를 조아리고 남자 목소리를 내면서 변명하는데,

"관장 어르신! 그게 아니오라, 전쟁 이후 집안 살림이 피폐해 져 세 여동생을 시집보넬 비용이 없는데다가, 또 막상 마땅한 혼 처도 없어 차일피일 늦어진 것이옵니다. 사정이 이러하온데 이 것이 어찌 죄가 죄겠나이까? 억울하옵니다."
하면서 하소연하는 것이었다. 이에 큰언니는 다시 목청을 가다 듬어 관장의 위엄을 보이면서 엄숙하게 꾸짖었다.

"네 듣거라! 그것은 모두 핑게에 지나지 않느니라. 혼인에 무 슨 큰 비용이 든다고 그런 소리를 하느냐? 그리고 건너편 김씨 선비 집에만 해도 노총각인 아들이 셋이나 있거늘 왜 혼처가 없 다고 핑계를 대느냐? 널리 구해 보지도 않고 무슨 소리를 하느 냐? 그러니 네 죄를 물어 매를 치겠다."

이렇게 호통치고, 매를 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때, 마침 관청에서 나온 매사냥꾼이 이 집 앞을 지나다가, 울타리 밖에 서서 세 처녀의 이러한 재판 놀이 광경을 처음부터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큰언니의 위엄 있는 목소리가 지 금 고을 관장으로 있는 분의 목소리와 너무나 흡사하여 매우 실 감 있게 들려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매사냥꾼은 그만 웃음을 참 지 못하고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갑자기 들려오는 남자의 웃음소리를 듣고 놀란 처녀들은 제 각기 도망쳐 숨기에 바빴다. 이 때 태수로 분장한 큰언니는 사다 리에서 급히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디어 그만 아래로 떨어지면서 발목을 접질러, 도망도 못 가고 사다리 아래에 주저앉아 아파서 울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본 관청 매사냥꾼은 다시 한 번 크게 소리내어 웃고 거기를 떠났다. 매사냥꾼이 관청으로 돌아오는데, 관장과 친한 손님 한 분이 지나가다가 매사냥꾼에게 물었다.

"내가 관장 어른에게 볼일이 있어서 만나 뵈려 가는 중인데, 지금 가면 관장 어른을 만날 수 있을까?"

손님의 이 말에 매사냥꾼은 싱글싱글 웃으면서, 조금 전에 보 았던 세 처녀의 재판 놀이를 결부시켜 장난삼아 말했다.

"예, 지금 관청에 가면 관장 어른이 계시기는 하겠지만, 조금 전에 발목을 접질려 앉아 울고 계실 것입니다."

이렇게 짓궂게 대답했다. 이는 조금 전 광장으로 분장했던 큰 언니가 발목을 다쳐 앉아 울고 있는 것과 연관시킨 엉뚱한 대답 이었다.

이 손님이 부저런히 달려와 관장을 만나 인사드리니, 관장은 발목이 아픈 것 같이 않았다.

"아니 관장 어른, 그새 접절린 발목이 다 나았습니까?"

이렇게 물으면서 다행스러워하니, 관장은 의외라는 듯 발을 보여 주면서 다친 적이 없다고 했다.

곧 손님이 관청의 매사냥꾼에게서 들은 말을 전하니, 관장은 즉시 매사낭꾼을 불러오라 해서 손님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꾸짖 었다. 이 때 매사냥꾼이 웃으면서, 최씨 집 세 자매의 재판 놀이 광경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관장으로 분장한 큰언니가 발목 접절린 것과 결부시켜 농담으로 그렇게 말했다고 아뢰면서 용서 를 빌었다..

얘기를 들은 관장과 손님은 한바탕 웃고, 관장은 세 자매의 오라비인 최씨 선비를 불러들여, 여동생들을 왜 빨리 혼인시키 지 않았냐고 물으며 꾸짖었다. 그러자 최씨는 앞서 세 자매가 재 판 놀이할 때에 막내 여동생이 변명한 말과 꼭 같은 내용으로 대 답하며 엎드려 용서를 빌었다.

즉, 비용이 없고 마땅한 혼처 또한 나서지 않는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관장은 최씨를 일으켜 앉히고 세 여동생이 했던 재판 놀이를 설명해 준 다음, 세 여동생의 혼인 준비를 어서 서 두르라고 했다.

그리고 관장은 다시 건너편에 사는 김씨 선비를 불러, 혼기가 넘은 세 아들을 최씨의 세 여동생과 차례로 혼인시키라고 권했 다. 또한 관장은 이들을 혼수 비용을 모두 마련해 주고는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최씨 집 세 처녀의 재판 놀이야말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 어. 자신들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방법이 정말 좋았거든."

고을 사람들도 이러한 처치를 해준 관장을 찬양하고 이 얘기 를 미담으로 전하니, 관장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이 없더 라. <조선 중기>


......^^백두대간^^........白頭大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