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김현룡지음]
|
[제3ㅡ15화]임금을 감화시킨 이항복의 풍자
선조 임금 때에는, 궁중에 궁녀로 있다가 왕궁 밖으로 내보내
진 이른바 `방출 궁녀(放出宮女)'와는 누구도 함께 잠자리를 해
서는 안 되는 율법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 율법을 `방출 궁녀 간
통 금지율(放出宮女奸通禁止律)'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임금과 관계를 맺은 궁녀가 민간으로 나와 살 때에,
그 궁녀와 성관계를 맺으면 이 법율에 저촉되어 엄벌에 처해지
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 도승지 자리에 있던 이항복의 집에는 옆에서 일
을 도와주는 1겸인(兼인: 개인 비서처럼 일을 돕는 사람)' 한 사
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선조 임금의 궁녀로 있다가 방출된 한
궁녀를 사랑하여 간통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방출 궁녀
간통 금지 법율에 걸려서 잡혀가 구금되었고, 장차 사형에 처해
질 상황에 있었다.
당시 이항복은 도승지라는 막강한 지위에 있었음에도, 아무
리 궁리해도 중죄를 저지른 이 겸인을 빼낼 도리가 없었다. 그래
서 무슨 꾀를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기회를 노리는데, 때마침 이
항복이 퇴근해 집에 있으니 임금에게서 급한 일로 빨리 입궐하
라는 연락이 왔다.
`옳지, 오늘 이 기회를 이용해야지,'
이렇게 생각한 이항복은 급히 들어오라는 임금의 명령에 일
부러 시간을 지연시켜 들어갔다. 그러자 임금은 도승지가
임금의 부름에 지체했다며 화를 내고는 그 까닭을 물었다.
이에 이항복이 늦게 들어온 이유에 대해 아뢰었다.
"전하, 황공하옵니다. 명령을 받고 급히 대궐로 달려오고 있
는데, 종루가(鐘樓街)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웃으면서 웅성거리
고 있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고 가서 물어보았습니다. 그
랬더니 사람들이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있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경은 무슨 말을 하려는가? 그 이야기란 또 무엇인가?"
임금이 아직 화가 덜 풀려 이항복을 노려보자, 이에 이항복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지어내어 아뢰었다.
모기 한 마리가 날아다니다가 소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진
드기'라는 벌레를 만났다.
이 진드기는 별종 진드기로서 크게 되면 큰 콩알만하게 되는
데 항문이 없어서 배설을 하지 못하는 곤충이었다. 그래서 소의
피를 빨아먹으면서 계속 몸의 가죽이 늘어나 커지다가 마침내 더
커지지 못하게 되면 죽는 벌레이다.
모기를 만난 진드기는 배설을 하지 못하고 고통을 당하다가,
모기에게 다음과 같이 부탁 하는 것이었다.
"이봐 모기야, 나는 본래 항문이 없어서 배설을 못하니 배가
팽창되어 견디기 어렵다. 네가 가지고 있는 그 날카로운 침으로
내 배를 찔러 구멍을 하나 뚫어 주면 내가 그 구멍으로 배설을
할 수 있겠으니, 제발 내 아랫배에 구멍을 하나 뚫어 다오, 간절
한 부탁이다."
이 부탁에 모기는 놀라면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너 그 무슨 큰일날 소리를 해? 근래에 도승지 이항복의 겸인
은, 어떤 여인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아랫배 아래의 구멍을 다
시 뚫었는데도 중죄에 걸려 구금되어 있지 않느냐? 너의 그 본
래 구멍이 없던 배에 내가 새 구멍을 뚫으면 죄가 훨씬 더 무거
울 텐데, 내 어찌 그런 짓을 하겠니? 어림도 없다. 날 죽일 소릴
랑 하지도 말아."
이러고는 단호하게 거절하고 날아가 버렸다.
"전하! 신이 이 이야기를 듣고서 의혹이 많이 생겨 좀 깊이
생각하느라고 그만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통촉해 주옵소서."
얘기를 듣고 있던 임금은 빙그레 웃으면서,
"내 또 경이 무슨 이야기를 할 줄 알았노라, 지금 그 얘기는
옛날 중국 동방삭(東方朔)의 해학과 비슷한 데가 있구먼, 경의
겸인이 구금된 것에 관련된 이야기로다."
라고 말하며, 이항복 겸인의 죄를 면해 주라고 하더라.
<조선 중기>
|
......^^백두대간^^........白頭大幹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