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때 유머

부인 바지도 없었나

eorks 2019. 9. 24. 00:06
[옛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김현룡지음]

제6부 그들의 행동, 정말 어리석었다.
[제6ㅡ23화]부인 바지도 없었나
옛날 한 사람이 어느 고을 관장이 되어 부임하게 되었는데, 집이 너무나 가난해 관복 안에 입을 바지가 없었다.

부인이 너덜너덜하게 기운 남편 옷들을 내놓고 뒤적이다가, 할 수 없이 자기가 시집올 때 입고 와서 농 속에 넣어 두었던 비 단 바지를 남편에게 입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자가 입는 바지는 남자의 옷과 달리 아래 뒷부분이 터져 있어서, 앉을 때 두 무릎을 벌리고 앉으면 음낭(陰囊)이 노 출되어 보이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부인은 자신의 비단 바지를 꺼내 남편 앞에 놓고 단단 히 주의를 시켰다.

"여보 영감! 이 바지는 내가 입던 여자 바지이니, 보시다시피 아래가 이렇게 터져 있습니다. 그러니 앉을 때 반드시 겉에 입은 도포로 단단히 무릎을 싸서 가리고 앉아야지, 그렇지 않고 보통 때처럼 무릎을 벌리고 앉으면 당신의 그 그늘진 음낭이 사람들 에게 노출되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 부디 조심하셔야 합 니다."

부인이 타이르듯 주의시키는 말에 남편은 귀찮아하면서,

"그 참, 쓸데없는 소릴! 내가 세 살 먹은 어린아이인가? 바지 입는 것까지 주의를 시키게, 괜한 걱정을 다 하네."
하고 짜증을 냈다.

며칠 뒤 관장은 부임하여 관청 청사에 의젓하게 앉아서 일을 처리했다. 그런데 그만 자신이 여자 바지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그리고 부인이 주의시키던 얘기도 모두 다 잊고, 오로지 업무를 잘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에만 열중했다.

그래서 한 무릎을 들고 비스듬히 책상에 기대앉아 있으니, 앞 쪽 낮은 곳에서 보면 양근과 음낭이 축 처진 채 모두 노출되어 보이는 것이었다.

이 때 관청 내아(內衙)에서 부인이 걱정스러워 내다보니, 정 말 우려했던 대로 남편의 아랫부분이 훤히 드러나 있는 것이었 다. 그래서 당황한 부인이 부랴부랴 급히 언문으로 편지를 써서 사동(使童)을 시켜 빨리 관장에게 전하라고 일렀다.

관장은 사동이 전하는 편지를 받고는, 그것이 백성들에게서 올라온 고소장인 줄 알고, 형리(刑吏)를 불러 큰소리로 읽으라고 했다.

형리가 받아서 살펴보니 관장 부인이 보낸 내간(內簡) 편지이 기에 읽지 않고 얼른 접고는 관장에게 아뢰었다.

"사또! 이것은 백성의 고소장이 아니오라, 내아에서 보낸 내 간이옵니다. 직접 읽어 보소서."

그러나 관장이 그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왜 속히 읽지 않 느냐고 호령하니, 형리는 할 수 없이 큰소리로 편지를 읽었다.

`여보 영감! 집이 가난해 바지를 짓지 못하고 부득이 여자 바 지를 입게 했는데, 지난번 부탁드린 말씀은 다 잊어버이고 비스 듬히 무릎을 벌리고 앉아 있으니, 아랫부분이 온통 노출되어 아 랫사람 보기에 민망스럽사옵니다. 속히 두 무릎을 붙여 여미시 고 바로 앉아 겉옷으로 싸서 가리소서.'

이런 내용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관장은 그것이 자기 얘기 인 줄은 모르고 얼굴을 찡그리며 안타까워했다.

"참 가엾은 일이로다. 나는 그래도 이 바지라도 입었는데, 그 사람은 누구인지 몰라도 짧은 바지마저 입지 못한 모양이로다. 가난함이 이렇게도 사람을 딱하게 만드는구나. 어떻게 바지를 하나 마련해 그 사람에게 보내 줄 수 없을까?"

이 말을 듣고 있던 아전들은 기어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일제 히 폭소를 터뜨렸다.<조선 후기>


......^^백두대간^^........白頭大幹

'조선왕조 때 유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모가 왜 상을 받아  (0) 2019.09.26
아내 자랑하는 김추(金錘)  (0) 2019.09.25
소가죽 쓰고 간다  (0) 2019.09.23
포악한 군수 아내  (0) 2019.09.22
손님 접대하는 관장  (0) 2019.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