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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乙數란?(4)전국책(戰國策)이나 오월절서(吳越絶書) 등에서 자서(子壻), 소백(少伯)이 육임(六壬)에 능통했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볼 때 2천5백여년전 전국시대때 이미 기문, 태을, 육임 등을 군국대사에 관여할 수 있는 귀족층에서는 크게 활용했음을 알 수가 있다. 그 사실이 놀라운 것이 아니라는 것은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갖고 있었다는 용천검(龍天劍)이 출토(出土)되어 현재 중국 북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2500년 동안이나 지하에 묻혀 있었으면서도 한군데도 녹슬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러한 칼을 현대 제련 기술로는 만들기가 불가능하다고 하는 점이다. 이러한 모든 사항을 미루어 볼 때 그 당시 문명의 발달이 얼마나 높았었는지 가히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기문(奇門) 태을(太乙) 육임(六壬)을 약칭해서 기을임(奇乙壬) 삼수(三數) 또는 삼식(三式)이라고도 부르는데 태을(太乙)은 군국대사(軍國大事)에 관한 방법론이고 기문둔갑(奇門遁甲)은 용병제적(用兵制賊)하는 방법론이며 육임(六壬)은 일용백사(日用百事)에 관한 점술(占術)의 방법론이다.
그래서 예부터 삼식(三式)을 연구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그래도 육임을 연구하는 사람은 몇몇 있었고, 기문은 그런대로 연구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으나 태을을 연구하는 사람은 아주 희소(稀少)했다. 둔갑식(遁甲式)은 구궁팔괘(九宮八卦)를 바탕으로 해서 포국(布局)되는 것이고 육임식(六壬式)은 12지(支)를 바탕으로 해서 포국하는 것인데 태을식(太乙式)은 구궁팔괘(九宮八卦)를 기저(基底)로 하되 실용은 12지(支)에다 건(乾) 곤(坤) 간(艮) 손(巽) 사유(四維)를 사방에 부가(付加)해서 16궁을 설정한 후 복잡다단한 포국을 하게 된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서 일자열전(日者列傳)의 칠가(七家) 중 태을가(太乙家)가 나오고 남제서(南齊書)에서도 태을구궁(太乙九宮)에 대해서 논급하고 있으며 현 중국의 고고학보(考古學報) 1985년 판 제4기에 중국의 저명학자 엄돈걸(嚴敦杰) 선생의 식반종술(式盤綜述)에서 기(奇), 을(乙), 임(壬) 삼수(三數)에 대한 논술을 자세히 했으며 북경대 장기성(張其成) 교수가 주편(主篇)한 역경응용대백과(易経應用大百科) 내에 중국의 저명 역학자 곽비연(郭斐然) 선생이 삼식론(三式論) 전반과 황제음부경(黃帝陰符経)에 대해서도 상술(詳述)하고 있으며 현금 중국 본토나 대만, 홍콩 등의 몇몇 학자들이 삼식(三式)에 대한 논문이나 저서를 간간이 발표하고 있는데 한국만이 가장 낙후되어 이러한 훌륭한 고전(古典)이 있는 줄도 모르는 술객들이 많으니 안타까운 실정이다.
황제내경, 영추, 구궁팔풍편 제77장에 태을식을 의학방면에 응용한 기재가 있고 역위, 건착도에서 태을수를 인용한 대목이 나오는데 한말(漢末) 정현(鄭玄)은 주석하기를 태을이란 천상북신(天上北辰)의 신명(神名)으로 자미궁의 내외를 넘나드는 존성이므로 태을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고 했다. 성경(星經)에서는 천을, 태을은 천지의 기운을 주관하는 천신으로 천자가 구주(九州)를 순방(巡訪)하는 것과 같이 사방을 순력한 후 중앙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한나라 말기면 2천년 전이고 전국시대면 2천4백년 전이므로 이미 그 때에 기, 을, 임 삼수가 완성되어 특수층이나 정치집단에서 크게 활용하고 있었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는데 이에 대해 확증된 것이 1978년 중국 안휘성 부양현 음후묘에서 출토된 부장품 중에 태을반식과 둔갑반식이 나와 문헌에 대한 입증자료가 됐다.
이 비밀의 수는 몇몇 고위층 부류에 의해 밀전되어 오다가 당나라때 왕희명(王希明)에 의해 태을금경식(太乙金鏡式)이란 서책명으로 태을에 관한 책으로는 세상에 처음으로 출판되어 나왔고, 그 후 청나라 초기에 이자명에 의해 내용이 제법 알차다고 할 수 있는 태을통종대전(太乙統宗大全)이 출판되었고 이후 모원의(毛元儀)가 지은 무비지(武備志) 120권 중에 기을임 삼수에 대해서 상론되어 있으며 그 후 명나라 말기때 명장 왕명악(王鳴岳)이 지은 등단필구(登壇必究)에도 삼식이 모두 들어있다.
그 후 청나라 말경 진몽뢰(陳夢雷)가 수집한 사고전서(四庫全書)에 버금가게 방대한 도서집성본(圖書集成本) 중에 태을신수(太乙神數)라는 책이 있는데 이는 태을금경식을 부연한 책이지만 가히 참고할 수 있는 책이라고 본다. 그러나 세상에 나타난 모든 태을수에 관한 서책으로는 태을에 대한 진체(眞諦)를 깨닫기는 힘들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태을수를 통효하면 세계 모든 나라의 정세는 물론 각지방의 길흉휴구(吉凶休咎)를 소상이 관찰할 수 있는 그야말로 천기누설의 비밀수(秘密數)이므로 공개할 수 없는 극비의 학술이기 때문이다. 필자만 해도 기문과 육임은 몇몇 고전에 의해 조금 자득해서 두찬이지만 저서도 있는데 태을수만은 자력으로 터득할 수가 없어 반환하던 중, 은사 허정 송현조 선생님의 소개로 전라도 장성에 은둔해 계시던 구암(龜巖) 김상한(金相漢) 선생님에게 태을은 물론 천문학 전 분야에 대한 깊은 공부를 수업받기로 됐었는데 유고로 한달 만에 급서 하시니(1974년) 선생의 춘추 95세 때였다.
그러므로 선생의 유일무이한 제자 약연 정연승씨가 전라도 화순에 살고 계셨는데 그분이 구암 선생이 저술한 태을수 본을 갖고 있다기에 십년 적공을 해서 얻어봄으로서 태을수에 대해 겨우 혜치(慧齒)가 조금 나왔을 뿐 권형(權衡)의 묘를 얻으려면 아직도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인류의 수 만년 역사상 모든 국가든 부족이든 또는 각 개인에 있어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앞날에 대한 기우(杞憂)를 떨쳐 버리기 어렵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의 문명체계가 성립된 후에는 여러 갈래의 종교 단체가 성립되었고 그 교주는 하나같이 예언자였다고 본다.
어느 나라던 대중이 가장 알고 싶어 열망하는 점은 앞날에 대한 예언이라고 보며 야망이 큰 사람일수록 앞날을 예견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알았고, 정세가 불안하면 할수록 앞날에 대한 대중의 우려는 비례가 높아진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성경의 요한계시록이나 잠언 등은 모두 앞날의 예언에 관한 기록이라하며 4백여년전 의학자였던 노스트라다무스의 시결로 된 예언은 오늘날의 세계정세까지도 정확히 적중된다고 해서 일본만 해도 노스트라다무스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이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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