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형유산

세계무형유산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 성 블라이세 축제 (151)

eorks 2019. 10. 31. 10:00

세계무형유산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 성 블라이세 축제
[Festivity of Saint Blaise, the patron of Dubrovnik]
요약 : 성 블라이세(Saint Blaise) 축제는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Dubrovnik)에서 열리는 축제이다. 성 블라이세 축제 전날 밤, 도시 안의 모든 교회의 종이 일제히 울리고, 평화를 상징하는 하얀색 비둘기들이 날아오르고, 질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많은 신도들이 후두 관련 질병을 치료하는 의식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다. 성 블라이세의 축일이자, 두브로브니크 시의 기념일이기도 한 2월 3일에는 성 블라이세 축제의 핵심인 ‘행렬’에 참여하기 위해 교구의 기수단까지 전통 의상을 입고 합세하여 도시 안으로 들어온다. 행렬에는 주교와 교황 대사, 도시의 유력인사들, 이 나라를 방문 중인 고위 인사들, 두브로브니크의 시민들이 모두 참가한다.

의식에서부터 민요, 공연에서부터 전통 공예(축하 행사에서 발포하는 역사적인 무기들의 제작까지 포함한다)에 이르기까지 성 블라이세 축제는 다양한 창의성을 상징하는 행사이다. 의식은 적어도 1190년부터 시작되었으며, 도시의 수호성인 성 블라이세를 믿는 두브로브니크 주민들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두브로브니크와 세계의 변화와 함께 축제의 모습도 발전했다. 한 세대를 지날 때마다, 각 세대가 그들 자신의 의식을 만들려는 생각과 필요성에 따라 성 블라이세 축제는 조금씩 변형되어 왔다. 성 블라이세의 날이 되면, 두브로브니크의 시민들뿐만 아니라 전통에 존중으로 표하고, 본인들이 누리는 자유와 평화에 경의를 표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 도시로 모여든다.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 성 블라이세 축제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 성 블라이세 축제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 성 블라이세 축제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 성 블라이세 축제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 성 블라이세 축제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 성 블라이세 축제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 성 블라이세 축제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 성 블라이세 축제

    국가 : 크로아티아(Croatia)
    등재연도 : 2009년
    지역 정보 : 두브로브니크 시와 그 인근 지역으로, 리예카-두브로바치카(Rijeka-dubrovačka), 엘라피티(Elafiti, 사슴섬), 펠레샤츠(Pelješac) 섬, 라스토보(Lastovo) 섬, 스톤(Ston)과 코르출라(Korčula) 시, 코나블레(Konavle), 주파 두브로바치카(Župa Dubrovačka), 스톤(Ston), 블라토(Blato), 두브로바츠코(Dubrovačko), 프리모레(Primorje), 야니나(Janjina), 룸바르다(Lumbarda), 믈레트(Mljet), 오레비치(Orebić), 스모크비차(Smokvica), 트르판(Trpanj) 및 벨라루카(Vela Luka) 자치주를 포함한다.

    본문 : 두브로브니크와 이 도시의 수호성인 성 블라이세는 서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으며, 거의 동의어에 가깝다. 성인과 그의 축일을 경배하는 행사인 성 블라이세 축제는 매우 뿌리 깊은 전통으로, 교회와 국가 그리고 시민이 하나 된 역사적인 상징과도 같다. 성 블라이세 축일은 두브로브니크 시의 날이기도 한 2월 3일이다.

    역사적인 기록과 역사 문헌, 각종 전설과 민담이 증명하는 바에 따르면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성 블라이세 축일의 전통은 지속성과 풍습의 변화가 결합하여 그 고유성이 높아져 왔으며, 유럽과 기독교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두브로브니크의 정체성을 증명하고 있다. 197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된 바 있으며, 이 지방에서는 ‘성 블라이세의 도시’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두브로브니크 시의 구시가지에서 이 축제가 거행된다. 성 블라이세 축제는 넓은 의미에서 지금까지 역사를 통해 젊은 세대에게 지속적으로 전승해 온 공간에서부터 움직일 수 있거나 움직일 수 없는 여러 가지 문화적 요소, 인간의 정신적·사회적 창조라는 무형의 형태 및 사례 등 모든 유산을 포괄한다.

    아르메니아어로는 성 블라스(Surp Vlas)이고, 비잔티움식 발음으로는 블라시오스(Vlasios), 블라시이(Vlasii), 라틴어로는 성 블라시우스(Sanctus Blasius), 크로아티아어로는 블라주(Blaž)라고도 알려진 ‘성 블라이세’는 두브로브니크에서만 사용하는 애칭으로, 이 지방 방언으로는 블라호(Vlaho)라고도 하며, 축제 행사를 찬양하는 이름은 ‘블라시치(Vlasići)’이다. 아울러, 서기 3세기경 카파도키아(Cappadocia) 세바스테(Sebaste)의 주교이자 의사로 활동했던 성 블라이세를 칭할 때 이 지역에서는 ‘파라츠(Parac)’라는 이름도 사용한다. 그는 287년 디오클레티아누스, 또는 316년 리치니우스 치하에서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순교했다. 성 블라이세가 순교한 날은 316년 2월 3일로 추정된다. 성 블라이세는 유럽 전역과 세계 곳곳, 특히 페루·쿠바·폴리네시아·미국·일본 등지에서 경배를 받고 있다.

    두브로브니크에서 성 블라이세에 대한 숭배가 시작된 것은 성 스테파노 대성당의 한 참사회원, 스토이코(Stojko)에 관한 전설과 관련이 있다. 이 전설에 따르면 스토이코는 한 은발의 노인, 즉 성 블라이세의 환영을 보는데, 성 블라이세는 베네치아 사람들이 계략을 써서 두브로브니크를 정복할 계획이라고 경고하면서, 자신은 이 도시를 보호하고자 천국에서 보낸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역사적인 문헌을 볼 때 이 전설에서 언급한 시기에 두브로브니크는 정복된 적이 없다. 연대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이 전설에는 두브로브니크가 수립된 과정에 대한 설명은 없고, 다만 성 블라이세를 이 도시의 수호성인으로 선정한 역사적인 배경이 있었음만을 밝히고 있다. 성 블라이세는 10세기~12세기 후반 사이에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이 된 이후의 성 블라이세, 그리고 그 축일에 거행되는 축제에 관한 믿을만한 최초의 역사적 자료는 11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브로브니크 자치 정부가 발행한 ‘프란츠히시아 산츠티 블라시(Franchisia Sancti Blasii)’라는 제목의 문서에는 성 블라이세 축일 전후 각 3일 동안 채무자나 도망자는 두브로브니크에서 자유롭게 머물 수 있다는 ‘성 블라이세 면책권’ 을 규정하고 있다.

    해마다 2월이면, 두브로브니크 시내와 그 인근 지역에 있는 모든 교구에서 성 블라이세에 대한 기도를 시작으로 전통적으로 이어온 준비 행사가 진행된다. 예수가 처음으로 예루살렘 성전에 간 것을 기념하는 축일인 2월 2일 두브로브니크의 성촉절(Kandelora, 聖燭節)까지 3일 묵도(Triduum)를 마친 후에 성 블라이세 축제가 시작된다. 오를란도(Orlando) 기둥 꼭대기에 성 블라이세의 깃발이 오르면서 축제가 시작되는데, 이때 두브로브니크 시내에 있는 모든 종이 일제히 울리고, 라우스(Laus) 기도문을 암송하며 고대의 행복을 비는 처녀들이 남긴 유산인 ‘트르즈니체(trznice)’라는 민속 의상을 입은 소녀들이 풍년을 상징하는 선물을 가지고 온 다음, 자유와 평화를 상징하는 하얀색 비둘기를 날려 보낸다. 성 블라이세에게 기도를 올린 후, 신도들은 질병으로부터 보호되기를 바라며 후두 관련 질병을 치료하는 의식을 치르기 위해 성 블라이세 두브로브니크 교회로 향하기 시작한다.

    2월 3일, 성 블라이세의 날은 두브로브니크 시내의 모든 교회 종들이 울려 퍼지면서 시작되며, 역사적으로는 도시의 성에서 대포를 이용해 축포를 쏘아 올렸지만, 오늘날에는 두브로브니크 시의 역사적인 특수부대인 ‘트롬부네리(trombunjeri)’가 역사상의 축포를 발포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이른 아침, 이 지역의 민속 의상을 차려 입은 교구의 기수들이 두브로브니크의 서문을 통해서 도착한다. 기수들은 성 블라이세 축제의 절정이자, 가장 오래 걸리는 행사인 행렬을 축하하기 위해 광장에 운집한다. 행렬이 시작되기에 앞서 주교가 집전하는 미사가 거행되는데, 본래 두브로브니크 대성당 안에서 진행했으나 오늘날에는 대성당 앞에서 미사를 올린다. 과거에는 (대)주교가 집전하는 미사에 공작, 정부 관리 등이 참석했고, 오늘날에도 방문 주교들, 사제들, 수녀들,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 유명 인사들, 정부 당국의 대표, 대사들, 귀빈, 두브로브니크 시의 후원자들, 마지막으로 성 블라이세를 누구보다 흠모하는 두브로브니크의 시민들이 참가한다.

    행렬을 이끄는 성직자들은 매우 특별한 문화적·역사적 보물인 성유물함을 통해서 강력한 성스러운 힘을 전달한다. 그 유물함에는 블라이세와 기독교 출현 후 초기 몇 세기 동안 순교한 성스러운 순교자들의 유물이 담겨 있다. 행렬의 선두에는 성 블라이세의 그림이 그려진 두브로브니크의 흰색 도시 깃발과 해마다 본 축제 행사를 위해서 특별히 선발되어 축제 의상을 입은 ‘페스타뉼리(festanjuli, 찬양자들)’가 그 깃발을 둘러싸고 앞장선다.

    크로아티아는 물론이고 세계 곳곳에는 천상에 존재하는 도시의 수호성인을 경배하는 사례가 수없이 많고, 성 블라이세는 그 수호성인 중의 한 명이지만, 오직 두브로브니크에서만 이와 같은 수호성인에 대한 경배가 문화·인류학적 차원으로 고양되었다.

    동시대의 다른 여러 행사 중에서 해마다 열리는 성 블라이세 축제만큼 두브로브니크의 역사를 잘 승화한 사례는 없다. 성 블라이세와 두브로브니크가 일체화된 것은 수호성인의 역할이 기능적 차원과 추상적 차원에서 결합한 사례를 보여 준다. 두브로브니크의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어떤 위험에 처해 있을 때나 항상 성 블라이세에게 기도했다. 1272년에 작성된 옛 법령서에서부터 1352년의 「라구사(Ragusa) 공화국의 서(書)」에 이르기까지 아래와 같은 성 블라이세에 대한 기도문을 소개하고 있다. ‘주님과 영광된 동정녀 마리아, 그리고 우리의 변론자이자 주인이며 위대한 순례자, 자비로운 보호자, 빛나는 유명한 도시 두브로브니크의 관리자 성 블라이세의 이름으로!’

    [네이버 지식백과]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 성 블라이세 축제 [Festivity of Saint Blaise, the patron of Dubrovnik]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인류무형문화유산(영/불어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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