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록유산 /프랑스 /베아투스 레나누스 도서관의 장서
[Beatus Rhenanus Library]
Displays of the Humanist Library
Facade of Humanist Library and parish church St Georges
First edition of works of theologian Tertullian
Rerum Germanicarum Libri III (Bibliothèque Humaniste K451)
Sélestat
The merovingian lectionary (VIIth century - Bibliothèque Humaniste MS1a)
The Rhenana, sanctuary of the Humanist Library
Wood engraving portrait of Beatus Rhenanus
국가 : 프랑스(France)
소장 및 관리기관 : 베아투스 레나누스 도서관(소유자 : 셀레스타 시(인문주의도서관동우회(Association of Friends of the Humanist Library)와 긴밀히 협력함))
등재연도 : 2011년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Erasmus of Rotterdam), 기욤 뷔데(Guillaume Budé), 토머스 모어(Thomas More), 르페브르 데타플(Lefèvre d’Etaples), 심지어 장 피크 드 라 미랑돌(Jean Pic de la Mirandole)과 같은 위대한 인문주의자들의 장서는 어떤 운명을 맞이했는가?
베아투스 레나누스(Beatus Rhenanus, 1485~1547)는 “당대의 가장 위대한 학자 중 한 명이자 인문주의자들의 왕인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의 분신”(프티망겡 피에르, 「베아투스 레나누스(1485~1547), 독서가·편집자·저술가로서의 그의 활동(Beatus Rhenanus, son activité de lecteur, d’éditeur et d’écrivain)」에서 인용)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인물이다. 황제에게 작위를 받은 언어학자였던 그의 저술과 번역 작업은 유럽 전역에서 참고 자료가 되었다. 그의 장서는 약 1,300권의 인쇄된 저작물을 포함하여 약 1,700점의 문서가 훼손되지 않은 일체성을 유지하며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
이 컬렉션은 저 유명한 셀레스타(Sélestat) 라틴어 학교의 컬렉션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으며, 인재를 교육하고 지성인들을 훈련하는 데 이용되어 왔다.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는 「셀레스타 찬가(Praise of Sélestat)」에서 이 도시와 라틴어 학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다른 도시들은 사람만을 낳는 동안 너는 천재를 낳는구나.”
그 천재들 중의 하나가 바로 셀레스타의 부유한 도축업자의 아들인 젊은 베아투스 레나누스였다. 매우 학구적이었던 레나누스는 라틴어 학교의 학생 신분으로 보조교사가 되었고 선배 학생들이 남기고 떠난 책들을 탐독하며 교사가 되려고 공부하였다. 1503년 레나누스는 르페브르 데타플의 지도 아래 파리 대학교에서 공부하기 위해 셀레스타를 떠났다. 파리 대학교에서 수학하던 당시 레나누스는 오늘날 매우 희귀하고 값을 따질 수 없는 동시대의 교육 기록물인 강의 노트, 연습장, 교과서를 수집하였다. 대학생이던 레나누스는 인쇄업자인 에스티엔(Estienne)의 작업실에서 교정원(校正員)으로 일하였고, 그렇게 해서 벌어들인 수입으로 본인의 장서들을 늘려 나갔다. 그 결과, 15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자신 소유의 책을 구입했던 이 젊은 학자는 파리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했던 22세의 나이에 이미 253권을 보유하였다.
1507년 라인 강변으로 되돌아온 레나누스는 계속해서 학업에 열중하였고, 스트라스부르 (Strasbourg) 그리고 특히 그가 그리스어를 공부했던 바젤(Basel)에서 출판업에 관여하였다. 바젤의 프로벤(Froben) 출판사에서 출판부장으로 일하면서 레나누스는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 Tertullianus), 세네카(Seneca), 타키투스(Tacitus), 티투스 리비우스(Titus Livius), 프루덴티우스(Prudentius), 대(大)플리니우스(Plinius)등의 저작물을 교정하고, 주석을 달고, 논평을 덧붙이고, 출간했다. 그와 동시대의 인물들, 인문주의자들 또는 개혁가들 또한 그의 출판물에서 한자리를 차지하였는데 그중에는 야코프 빔펠링(Jakob Wimpfeling), 에라스무스, 토머스 모어 등이 포함된다. 그는 1523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Karl V)로부터 작위를 받았다.
1528년, 바젤에 휘몰아친 종교적 분쟁 이후 레나누스는 고향인 셀레스타로 돌아왔다. 그는 생의 마지막 20년 동안 셀레스타에서 공부하고,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책을 출간하며 보냈다. 그는 친구인 에라스무스의 전작을 편집하기도 했는데, 에라스무스는 서한을 통해서 본인의 저작물 일부를 수정할 수 있는 권한을 레나누스에게 부여하기도 하였다. 에라스무스의 전기와 기념비적 독일사는 레나누스가 남긴 가장 주목할 만한 저서이다.
세상을 떠나며 레나누스는 모교의 선배들이 만든 전통을 따라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모든 장서를 셀레스타의 라틴어 학교에 기증하였다. 그의 기증 덕분에 이 교구 도서관의 컬렉션에 속하는 장서는 그 수가 2배로 증가하였다.
이처럼 베아투스 레나누스의 삶은 책으로 만들어졌다. 그는 책을 편집하고, 번역하고, 개작하고, 저술하고, 그에 대해 고민하고, 모아서 엮고, 주석이나 논평을 달며 책과 함께 씨름했다. 본래 그가 소장했던 책들은 셀레스타의 도서관에 컬렉션으로 보존되었다. 이 책들은 학생의 자리에서부터 임종의 자리까지, 우리의 의식을 고양하는 한 인문주의자의 초상을 그려내고 있다. 이 특별한 컬렉션은 오늘날까지 거의 훼손되지 않았으며, 독특한 장서는 유럽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위대한 운동, 인문주의의 도래를 알리는 소리 없는 서곡이었다.
세계적 중요성·고유성·대체 불가능성 :
이처럼 전 유럽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일관되고 중요하며 완벽한 역작의 산물 전체가 현전한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운 성과이다. 게다가 이 컬렉션은 그것이 형성되었던 본래의 고장에서 계속 보존되었다.
• 국가 장서와의 비교
이 컬렉션은 현재 다른 어느 곳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는 다수의 책을 포함하고 있다.
“1501년부터 1510년까지 16세기 파리에서 간행된 서적의 연대순 재고 목록을 제1권부터 살펴본다면, 국립도서관을 제외한 프랑스의 다른 어떤 도서관보다 셀레스타의 인문주의 도서관을 더 많이 언급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놀라게 된다. 바젤에서 요한 프로벤(Johann Froben)과 히에로니무스 프로벤(Hieronymus Froben)이 인쇄한 저작물의 근대적인 서지 정보를 확인해 본다면, 알자스의 이 작은 마을이 소장하고 있는 장서가 바젤의 장서와 비견되고, 파리가 소장하는 장서보다 많을 수도 있으며, 런던이 소장하는 장서의 수를 분명히 넘어선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될 것이다.”
• 개인 장서와의 비교
굳이 비교하면, 르네상스 시대에 헝가리의 마티아스(Matthias) 왕이 건립하였고 오늘날에는 세계기록유산에도 등재된 비블리오테카 코르비니아나(Bibliotheca Corviniana)의 2,000여 장서는 뿔뿔이 흩어져 곳곳에 산재한 상태이다. 한 가지 사례를 더 비교하면 에라스무스의 도서관은 본인의 살아생전에 매각된 뒤 흩어져 사라졌다.
피에르 프티망겡(Pierre Petitmengin)은 ‘레나누스의 장서와 그 보존(Rhenanus’s library and its preservation)’을 주제로 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에라스무스나 부데의 소장 저서들에게 닥친 실산(失散)이라는 운명을 생각해 볼 때 이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동시대의 컬렉션으로서 레나누스의 장서와 같이 완벽하게 보존된 유일한 사례로서 역사학자 요아힘 바디안(Joachim Vadian, 1484~1551)이 시장을 지낸 장크트갈렌(St Gallen)에 남긴 바디아나(Vadiana) 도서관의 컬렉션을 들 수는 있지만, 이것은 베아투스 레나누스와 같은 인문주의 학자가 일생 동안 수집한 장서의 광범함과 풍부함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 밖에 놀라운 르네상스 시대의 장서들이 일부 현전하기는 하지만 이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15세기 말라테스타 노벨로 도서관(Malatesta Novello Library)의 장서와 같이 군주나 교황, 종교단체 및 기관의 장서들이다.
셀레스타의 도서관은 한 사람의 평민이 건립하였다. 마티아스 코르비누스(Matthias Corvinus)와는 달리 레나누스는 단순한 애서가적 기쁨을 위해 책을 수집한 것이 아니라, 마치 장인에게 작업도구가 필요한 것처럼 스스로의 사고를 단련하는 수단으로 책을 이용하였다. 그리고 책이라는 이 도구에는 주석과 논평, 그리고 한 권, 한 권 소장할 장서를 결정한 그의 선택에서 그 주인의 표식이 드러나고 있다. 베아투스 레나누스의 장서는 박학다식한 군주의 그것이 아니라 열정적인 한 지성인의 장서이다.
• 보편적 관심
이 장서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사용 언어, 주제, 저자, 시대, 출간 장소는 인문주의자들의 특징인 보편 정신을 반영한다.
이 컬렉션은 레나누스가 자신의 치밀하고 방대한 인간관계를 이용하여 유럽 전역에서 수집한 저작물을 포함하고 있다. 베아투스 레나누스는 국경을 넘어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 르페브르 데타플, 기욤 뷔데 등의 유명 저자들, 필리프 멜란히톤(Philipp Melanchthon), 마르틴 부처(Martin Bucer), 훌드리히 츠빙글리(Huldrych Zwingli) 등의 종교 개혁가들, 파리의 앙리 에스티엔(Henri Estienne), 벨기에의 조스 바드(Josse Bade), 스트라스부르의 마티아스 쉬러(Matthias Schürer), 스위스의 요한 프로벤과 요한 아메르바흐(Johann Amerbach) 등의 인쇄업자들, 국왕(카를 5세), 푸거(Fugger) 가문의 유력한 인물들, 보름스 주교와 같은 고위성직자, 심지어 수도사 등과 폭넓게 어울렸다.
이처럼 셀레스타에서는 수많은 책이 보존되었고, 그렇게 보존된 책들은 고대 원전(原典)의 위대한 인쇄본에 있어 전범으로 이용되었으며, 그 인쇄본은 다시 유럽 전역에서 참고 문헌이 되었다.
“셀레스타의 인문주의 도서관은 다른 무엇보다도 베아투스 레나누스의 개인 장서를 보존한 덕분에, 16세기에서 17세기에 걸친 학문에 대한 열정을 가장 적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도서관은 필사본의 형식으로, 베네치아의 알두스 마누티누스(Aldus Manutius, 1449~1515)가 운영했던 저 유명한 출판소의 운영 방식을 증명한다. 파리 대학교에서 가르쳤던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수업을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관심을 많이 갖게 될 것이다. 또한 이 도서관의 컬렉션은 스트라스부르와 바젤, 또 두 도시의 출판소에 의존한 지적 생활을 충실하게 그리고 밝게 그려 내고 있으며, 에라스무스(1469경~1536)는 이 대목에서 언제 어디서나 등장한다. 끝으로, 이 컬렉션은 베아투스 레나누스와 같은 인문주의자들이 열정적으로 찾아 얻고자 했던 고대 필사본과 관련하여 고대의 저작물 보존에 있어 독일의 수도원들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지 가늠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네이버 지식백과] 베아투스 레나누스 도서관의 장서 [Beatus Rhenanus Library]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세계기록유산(영/불어 원문))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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