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록유산

세계기록유산 /폴란드 /바르샤바 재건 사무소 기록물(238)

eorks 2020. 1. 28. 04:40

세계기록유산 /폴란드 /바르샤바 재건 사무소 기록물
[Archive of Warsaw Reconstruction Office]

After reconstruction: Pauline Fathers' Church on Freta St.

After reconstruction: sculpture of Christ in front of Saint Cross Church

After reconstruction: Staszic Palace on Krakowskie Przedmiescie St.

After reconstruction: View of the Old Town in Warsaw from Vistula river

After reconstruction: Warsaw, Royal Castle Square

Description of destruction of "Krolikarnia"

Old Town Market Square No. 10 - Inventory of the entrance portal

Reconstruction of historical route: Three Crosses Square - Old Town Market

Reconstruction of historical route: Three Crosses Square - Old Town Market

Restoration work on a sculpture from the Old Town in Warsaw

Saint Cross Church - painting inventory of the state of destruction


국가 : 폴란드(Poland)
소장 및 관리기관 : 바르샤바의 국가기록보관소
등재연도 : 2011년
제2차 세계대전 끝나고 40년이 지난 뒤 미국인 건축가 A. M. 퉁(Tung)은 ‘전쟁의 유산(The Heritage of War)’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재탄생한 아담한 도시 바르샤바는 - 인간의 존엄성은 값으로 매길 수 없다는 것, 그것이 독재자들보다 생명력이 강한 가치라는 것 - 을 전 세계에 전하는 메시지이다. 우리가 바르샤바의 승리를 보게 될 때 그 도시의 건축은 우리의 가슴에 그렇게 말할 것이다.”

A. M. Tung, Preserving the World’s Great Cities: The Destruction and Renewal of Historic Metropolis, New York 2001

1945년부터 1953년까지 진행되었던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의 재건은 건축가, 보존 처리 전문가, 예술가, 노동자들이 이루어낸 놀라운 업적이며 또한 의미 깊은 사회현상이었다. 사라질 위기에 직면하였고, 나치 점령기에 이념적·정치적 이유 때문에 계획적으로 파괴되었던 도시가 재건의 결과 ‘불굴의 도시’라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이것은 또 사회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기념물 보존에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었다는 점에서 이 유산이 지니는 중요성을 보여 주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바르샤바의 재건은 오늘날까지 수많은 나라에서 그와 유사한 조치를 할 때 논의되는 사례가 되었으며 또한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수도 바르샤바의 국가기록보관소에 소장된 ‘바르샤바 재건국 기록물(BOS Archive)’은 그 도시의 거의 완벽한 파괴와 재건에 관한 증언이다

이 기록물은 1939년의 전투, 1943년 봄의 게토 봉기, 1944년 8월부터 9월까지의 바르샤바 봉기, 그리고 1944년 10월부터 12월 사이에 독일군에 의해 자행된 고의적인 방화와 파괴 등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동안 일어났던 바르샤바의 파괴와 그 후의 재건을 묘사하는 문서 컬렉션이다. 독일군의 방화 및 파괴 행위는 “바르샤바를 납작하게 만들어 버려라. 그렇게 해서 전 유럽에 무시무시한 본보기를 보여 주어야 한다.”는 하인리히 힘러(Heinrich Himmler)의 명령에 따라 수행되었다(1945년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나치친위대 소속 에리히 폰 바흐첼레프스키(Erich von Bach-Zelewski) 장군의 증언).

그 결과 전체 도시의 68%, 구시가의 80%가 실제로 파괴되었다. 아울러, 강화(講和)의 과정 동안 및 1944년 바르샤바 봉기 이후에 약 200,000명의 주민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며 나머지 주민은 추방되었다. 전쟁이 끝난 직후와 2004년에 반복된 조사를 바탕으로 추산하면 재정적 손실은 546억 달러에 이른다.

1945년부터 1953년까지 바르샤바의 중심구역이 재건되었고, 나치의 의도와 반대로 진행된 독특한 복원 및 건축 사업의 결과 1980년 구시가와 왕궁이 유네스코 세계 자연 및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BOS 기록물’은 바르샤바 재건국, 바르샤바 재건이사회, 바르샤바 재건국 고건축부, 수도보존국 등의 기록물 컬렉션으로 이루어진다. 거기에는 바르샤바, 특히 구시가의 재건을 위해 도시 개념을 구상하고 시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1945년 2월 14일에 수립된 바르샤바 재건국의 운영 결과 1945년부터 1953년까지 작성된 문서와, 점령기에 작성된 것을 양도받은 문서(폴란드 건축가들이 작성한 목록과 독일 당국에서 작성한 문서)가 들어 있다. BOS라고 약칭하는 바르샤바 재건국은 6년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조직이 개편되었다. 일부 부서가 떨어져 나갔는가 하면 새로운 부서가 만들어지거나 다른 기관(예를 들어 바르샤바 재건이사회)이 수립되기도 하였지만 공동의 목적을 위해 긴밀하게 협력하였다.

이 기록물에 수집된 문서들은 1939년부터 1945년까지의 전쟁 피해에 대해 1945년 5월에 진행된 기록 결과를 보여 준다. 그들은 피해를 면한 건물들의 상태, 역사 구역의 재건축에 관한 개념, 기념비적 건축물의 복원과 관련된 설계 및 투자사업 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 또한 1945년 폐허가 된 바르샤바의 정리 작업, 도시 재건의 역사, 특히 250년이라는 오랜 기간에 걸쳐 발달하였던 모습 그대로 역사 지구를 재창조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 이 기록물에는 또 철거가 이루어진 구시가에 독일인들만 거주하는 도시를 건설하려고 했던 나치의 계획을 증언하는 문서들이 포함되어 있다.

‘BOS 기록물’은 과거와 현재의 세계에 제2차 세계대전이 초래한 결과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에 대해 증언하고 있으므로, 특히 ‘시간, 장소, 사회적 중요성’이라는 기준과 관련하여 고유성이라는 기준을 만족한다.

세계적 중요성·고유성·대체 불가능성 :
‘BOS 기록물’은 1945년부터 1953년 사이에 폐허로부터 바르샤바, 특히 1980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 및 자연 유산에 등재된 그 역사지구를 재건하려는 목적으로 이루어진 활동을 설명하고 증언해 주는 유일무이한 사료이기 때문에 고유하다고 할 수 있는 문서들로 이루어지는 컬렉션이다. 이들은 또한 그들 사업의 범위와 규모, 재건축의 놀라운 신뢰성,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뒤 주권을 되찾지 못하고 소위 철의 장막 뒤에 가려진 채 체계적인 전체주의의 세뇌에 복종해야만 했던 폴란드인들의 문화 및 민족적 정체성의 의미에서도 고유성을 지닌다.

바르샤바의 재건은 국제사회에서 전쟁의 폐해를 극복한 긍정적인 사례이자 문화적 전통과 관련된 가치기준으로 생각되고 있음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바르샤바 구시가의 재건, 특히 연구를 기록으로 남기고 전통적 수법을 사용한 것은 오늘날까지 기념물 보존에 관해 국제적인 원칙을 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BOS 기록물’은 그 중요한 자료의 하나이다. 바르샤바의 사례는 다른 무엇보다도 의도적으로 파괴된 모스크바와 키예프의 정교회, 그리고 드레스덴 중심가의 역사적 건물 등이 1990년 이후 재건될 때 참고가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바르샤바 재건 사무소 기록물 [Archive of Warsaw Reconstruction Office]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세계기록유산(영/불어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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