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형유산

세계무형유산 /벨기에 /브뤼허의 ‘성혈(聖血)의 행렬’(275)

eorks 2020. 3. 5. 00:29

세계무형유산 /벨기에 /브뤼허의 ‘성혈(聖血)의 행렬’
[Procession of the Holy Blood in Bruges]
요약 : 매년 봄, 벨기에의 도시 브뤼허(Brugge)의 중심부에는 30,000~45,000명의 사람들이 부활절로부터 40일 후인 예수 승천일에 열리는 ‘성혈(聖血)의 행렬(Heilig-Bloedprocessie Brugge)’을 보기 위해 모인다. 이 화려한 행렬의 시작은 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브뤼허의 한 시민이 제2차 십자군 원정길에 예수의 성혈 유물을 가져온 것에서 유래한다.

행렬은 30명의 지역 인사로 이루어진 ‘성혈 형제단’이 이끌며, 관악대가 연주하는 가운데 1,700명이 넘는 시민이 걸어서 또는 우마차나 말을 타고 뒤따른다. 이 행렬은 구약 성서의 이야기, 예수의 생애, 브뤼허의 역사를 재현한다. 이후에는 다양한 시민 단체가 유물에 경배하고, 전 세계에서 온 관람객을 위해 몇 가지 언어로 행해지는 기도식과 함께 막을 내린다.

수 세기 동안 이 의식은 브뤼허 주민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외지인과의 교류를 활성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참여자는 연령, 가족, 공동체의 대표적인 단면을 보여준다. 몇몇 주민은 40~50년간 참여해왔고, 브뤼허를 떠났던 사람도 종종 ‘브뤼허의 가장 멋진 날’을 구경하러 찾아온다. 이 행렬은 도시의 역사와 믿음을 의식으로 구현하고, 이 의식에 군중이 참여함으로써 도시민이 단합하는 살아있는 사례이다.

브뤼허의 ‘성혈(聖血)의 행렬’

브뤼허의 ‘성혈(聖血)의 행렬’

브뤼허의 ‘성혈(聖血)의 행렬’

브뤼허의 ‘성혈(聖血)의 행렬’

브뤼허의 ‘성혈(聖血)의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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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허의 ‘성혈(聖血)의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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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허의 ‘성혈(聖血)의 행렬’

브뤼허의 ‘성혈(聖血)의 행렬’

브뤼허의 ‘성혈(聖血)의 행렬’

    국가 : 벨기에(Belgium)
    등재연도 : 2012년
    지역정보 :
    성혈의 행렬은 벨기에의 도시 브뤼허의 중심부에서 열린다. 지난 2000년도에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역사 도시 브뤼허에서는 예수 승천일이면 도시 중심부에서 펼쳐지는 성혈의 행렬과 이에 어우러지는 특별한 구경거리와 문화유산을 경험할 수 있다. 브뤼허는 주민 120,000명이 거주하고 수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21세기의 역동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1969년 이전에는 5월 2일 이후의 첫 번째 월요일 5월 3일에서 9일 사이 아침에 행렬을 시작했다. 행렬은 지역 위주의 행사였고, 대개 브뤼허의 시민이 공연하고 관람했다.

    1970년에 성혈의 행렬을 벨기에의 공휴일인 예수 승천일에 연계하고, 행렬의 출발 시간을 아침에서 오후로 바꾸면서 관객과 참여자의 수가 크게 증가했다. 최근 몇 년 간 성혈의 행렬은 날씨에 따라 30,000명에서 45,000명의 인원을 끌어모았다. 벨기에에 거주하는 사람 외에도 전 세계에서 온 관람객의 수가 증가하고 있는데, 프랑스·영국·네덜란드·스페인·남아메리카·북아메리카·일본·러시아 관광객이 주를 이룬다. 행렬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네덜란드어이지만, 인쇄 홍보물은 네덜란드어·프랑스어·영어·독일어로 만든다.

    오늘날 성혈의 행렬은 도시 내부의 대로와 광장을 포함하는 경로를 따라 이어진다. 뵈르스할(Beurshal)에서 스메덴스트라트(Smedenstraat) 광장, 트잔트('t Zand) 광장, 성 구주 성당(Sint-Salvatorskathedraal, 성직자와 성혈 형제단이 행렬에 참여하는 곳)을 따라 라위드잔트스트라트, 시몬 스테빈(Simon Stevin) 광장, 마리아스트라트(Mariastraat), 성모 마리아 성당(Church of Our Lady), 데이버르(Dijver) 거리, 볼레스트라트(Wollestraat), 시장 광장, 플라밍스트라트(Vlamingstraat), 카위페르스트라트(Kuipersstraat), 헬드문트스트라트(Geldmundstraat), 트잔트 광장, 스메덴스트라트를 거쳐 출발점이자 도착점인 뵈르스할로 돌아온다.
    본문 :
    유물과 함께한 행렬을 처음으로 언급한 것은 1291년 하역자 조합 길드(페인더르스, pijnders)의 헌장이다. 1303년 이후로, 브뤼허 시의 벽을 따라 행진하는 성혈의 행렬에 대한 몇몇 문서가 남아 있는데, 이에 따르면 이 행사는 행렬에 참여한 수공예 장인 길드, 궁수, 성직자, 시 관료가 관련된 집단 방호(防護) 의식이었다. 그 후 7세기 동안 진행된 이 행렬의 특징은 종교 행사이자 시민 행사이며, 성스러우면서도 축제적이고 세속적 요소가 공존하며, 도시 공간을 의식적이고 상징적으로 사용하며, 정체성을 강화하는 의식이라는 점이다.

    1310년에 브뤼허 시의회는 성혈 유물과 관련된 축제, 5월 3일의 성혈 행렬과 2주간의 행사, 그리고 4월 23일~5월 22일까지의 연례 축제를 결합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행렬을 보조하는 사람의 수와 성혈에 대한 헌금은 증가하였다. 15세기, 16세기에는 성서의 장면을 표현하는 신비극에 거인과 아이몬(Aymon)의 네 아들과 기사 바야르(Bayard)의 말, 도시의 극작가 협회가 등장하는 세속적인 장면이 추가되었다. 1578년의 종교 분쟁으로 인해 안전을 우려하여 도시 출입문 밖에서 유물을 가지고 행진하는 것이 중단되었다.

    이때 처음으로 행렬이 도시 중심부에서 진행되었고, 그 경로를 현재까지도 따르고 있다. 근대 초기에는 종교적 특성이 강해졌다. 1578년~1584년에는 캘빈주의자들에 의해 행렬이 금지되었고, 1798년~1819년 사이에는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중단되었다. 19세기에는 브뤼허 시의 7개의 교구와 여러 형제단, 신도, 학교가 행렬을 구성했다. 20세기에는 행렬의 주제와 표현에 다양한 변화가 생겼다.

    행렬은 15세기 브뤼허의 번성기를 되새기며, 성서의 구약과 신약, 역사, 성혈의 경배에 집중하는 부분 등 4부분으로 나누어진 장면을 보여준다.

    도입부는 6개의 장면으로 나뉜다. 브뤼허 시 경찰이 행렬을 시작하고, 펠리컨이 새끼에게 자신의 피를 먹이는 모습을 수놓은 검은 의식용 토가를 입은 성혈 형제단 회원이 뒤를 따른다. 이후 관악대의 축제 음악이 도시에 퍼지고, 브뤼허 시와 성혈의 깃발을 든 기수가 도입부의 끝을 맺는다.

    첫 장면인 구약 부분에서는 인간의 삶을 중심으로 하는 몇 편의 오래된 신화가 5개의 다른 장면으로 묘사된다. 낙원에서 추방되는 아담과 이브에서부터 모세와 엘리야, 예레미야, 이사야 등 선지자의 행렬에 이르기까지이다. 이 부분은 이 상징적 이야기들이 아직도 삶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담고 있음을 증거 하는 장면이다. 두 번째 부분은 예수의 생애를 표현한 것이다. 예수의 출생에서부터 부활까지의 18개의 장면은 신약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부각시켜놓았다. 세 번째 부분은 브뤼허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고, 관중을 20세기로 데려온다. 10개의 장면에서 데릭 백작이 십자군 원정에서 성혈 유물을 가지고 귀환한 것과 유물이 어떻게 브뤼허 시장에게 전달되었는지에 대해 들려준다.

    마지막 부분은 브뤼허 시의 여러 형제단과 구성원들이 성혈에 경배하는 것을 표현한다. 13개 장면으로 이루어진 이 부분은 성혈 유물의 운반으로 끝나고, 성직자와 시의회, 지사 등의 시 당국자가 그 뒤를 따른다. 행렬은 마차 위에서의 편종 연주로 끝을 맺으며, 브뤼허 깃발을 입은 무용수가 여기에 함께 한다. 브뤼허의 가장 멋진 날은 시청 앞 뷔르흐 광장(Burg square)에서의 폐막식으로 끝난다. 여러 언어로 이루어지는 짧은 기도식 후에, 주교는 성혈 유물과 함께 축복을 빈다.

    [네이버 지식백과] 브뤼허의 ‘성혈(聖血)의 행렬’ [Procession of the Holy Blood in Bruges]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인류무형문화유산(영/불어 원문))

......^^백두대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