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세계문화유산 /이란 /타브리즈 역사 지구(618)

eorks 2021. 2. 20. 08:14

세계문화유산 /이란 /타브리즈 역사 지구
[Tabriz Historic Bazaar Complex]
요약 : 타브리즈(Tabriz)는 고대 이후 상업교역의 교차로였다. 그 중심에 있는 바자 지구(Bazaar Complex, 상업지구)는 동서 교역로인 실크로드의 가장 중요한 상업 중심지였다. 타브리즈 바자 역사지구는 일련의 서로 연결되고 지붕을 씌운 벽돌 구조물, 건축물들, 다양한 기능을 위해 벽을 쌓은 구역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타브리즈의 바자는 이미 13세기에 번영하며 널리 알려졌다. 동부 아제르바이잔(Eastern Azerbaijan) 주에 있었던 타브리즈는 사파비(Safavid) 왕조의 수도가 되었다. 16세기에 수도의 지위를 잃었지만, 오스만 제국의 확장과 더불어 18세기 말까지 중요한 상업 중심지로 중요한 기능을 담당했다. 타브리즈 역사 지구는 이란의 전통 상업과 문화 체계의 가장 완전한 사례 중 하나이다.

타브리즈 역사 지구

타브리즈 역사 지구

타브리즈 역사 지구

타브리즈 역사 지구

사절을 알현하는 왕자

타브리즈의 바자르

타브리즈의 바자르

    국가 : 이란(Iran, Islamic Republic of)
    좌표 : N38 4 53,E46 17 35
    등재연도 : 2010년
    타브리즈 역사 지구 :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타브리즈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청동기 시대 이후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철기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정주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9세기에 타브리즈는 중요한 군사 요충지였다. 이 기간동안 타브리즈는 경제적·사업적 중심지로 발전하기 시작했으며, 비록 발전이 때로 중단된 적이 있었으나 12세기·13세기까지는 국가의 수도였다. 1258년 몽골족이 바그다드를 파괴하면서 타브리즈는 통상 중심지로서 중요성이 더 커졌다.

    1316년~1331년에 타브리즈는 사회적·경제적으로 절정기를 이루었다. 마르코 폴로(Marco Polo)·이븐 바투타(Ibn Battuta) 같은 여행객들은 타브리즈를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상업 중심지로 묘사했다. 14세기, 15세기 동안 타브리즈는 전략적 위치, 품질 좋은 생산품(면직·견직·무기·도자기)의 거래, 현명한 면세 정책으로 더욱 번영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동서로와 남서로가 교차하는 길을 이용했다. 최초의 넓은 공식 의례 공간인 사이브아바드(Sahib-abad)는 1258년에 만들어졌다. 그 주변에는 중요한 공공건물들이 들어섰다. 그곳은 군대가 행진할 수도 있었고, 회합 장소로도 이용할 수 있었다.

    16세기 초 사파비 왕조는 타브리즈를 왕국의 수도로 삼았다. 타브리즈는 강력한 통치 본부가 되었다. 이후 1548년 수도를 카즈빈(Qazvin)으로 처음으로 옮겼고, 그다음에는 오스만튀르크의 위협을 피해 더 안전한 이스파한(Isfahan)으로 옮겼다. 16세기, 17세기에 제조업이 성장하여 산업이 다양해지고(직조·구리 야금업·무기 제조·타일 제조·가죽 무두업·제혁업·비누 제조 등), 무역량도 증가했다.

    17세기 말 타브리즈는 경제적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그런데도 이 시기의 여행객들은 타브리즈를 중요한 무역 중심지로 묘사했다. 18세기는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영토 확장 정책으로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였다. 1780년 카자르 왕조 초기에 타브리즈 역사상 가장 큰 재앙을 몰고 온 지진이 일어나 도시가 완전히 파괴되었다. 하지만 신속하게 재건되었다.

    1817년 또다시 지진이 일어나 모스크와 도시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1826년 러시아에게 점령당했지만, 2년 뒤 카자르 통치자들이 되찾았다. 19세기 동안 도시는 여러 차례 변화를 겪었다. 통치 본부는 메란루드(Mehranroud) 강 북쪽에 있으며, 넓은 광장 중심에 공공 건물들이 있는 사이브아바드에서, 알라 게이트(Aala Gate)에 가까운 강 남쪽인 오늘날의 위치로 이전되었다. 사이브울아므르 광장(Sahib-ul-Amr square)은 역사적인 사이브아바드 역사 지구에 세워졌으며, 야미 모스크는 복원되어 바자의 중심 역할을 회복했다.

    1871년 홍수가 일어나 바자 지구가 극심한 피해를 입었을 때 실지 조사를 통해 측량과 평가가 이루어졌다. 이런 기록들은 당시 바자의 상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듬해에 다양한 구조물들에 대한 보수 작업이 이루어졌다. 예컨대 모자파리에 팀차(Mozaffarieh Timcha)는 1905년에 완성되었다. 1906년 타브리즈는 이란 입헌 혁명의 중심지가 되었다. 바자가 폐쇄되고, 왕이 헌법을 조인하여 최초의 의회가 구성된 이래 민중들은 정부에 대항해 시위를 벌였다.

    20세기 동안 몇몇 대로가 만들어지면서 바자를 이끌어 나가던 주변 지역들이 중심부에서 분리되었다. 지난 30년 동안 야미(Jami)와 고이 마치드(Goi Machid), 그리고 몇몇 상업 지구에서 많은 복원 작업이 이루어져, 바자는 최근에 완전히 복원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타브리즈 역사 지구 [Tabriz Historic Bazaar Complex] (유네스코 세계유산, 세계유산센터(영/불어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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