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

“운세로 일희일비말고, 자기분수대로 사시오”(2)

eorks 2023. 3. 27. 13:35

풍수지리(風水地理)

“운세로 일희일비말고, 자기분수대로 사시오”(2)
생애의 대부분을 흙담 움막집에서 지내 토정이라는 호가 붙은 이지함은 경사자전(經史子傳)에 통달했고, 역학·의학·수학·천문·지리에도 해박했다. 아산현감이 되어서는 걸인청(乞人廳)을 만들어 관내 걸인의 수용과 노약자의 구호에 힘쓰는 등 민생문제의 해결에 큰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요즘 말로 하면 ‘서민 프렌들리’였던 셈이다. 한중수는 “토정의 진면목은 그가 농업과 상업의 상호 보충관계를 강조하고 광산 개발론과 해외 통상론을 주장하는 등의 진보적 사상의 소유자였으며, 이를 생활 속에서 이행한 실천적 지식인이라는 사실에 있다”고 말했다. 토정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주자성리학만을 고집하지 않는 사상적 개방성을 보였으며, 이 때문에 기인(奇人), 이적(異蹟) 등으로 알려지게 됐다는 것이다. 토정의 이러한 면모는 14대 혈손(血孫)인 작가 이문구에 의해 새로이 부각되기도 했다.

수십년 역학을 공부했다는 그에게 올 한 해 대한민국의 운세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경제전문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현재의 경제위기가 과연 어느 정도 지속될 것인지, 경기가 회복된다면 그 시기는 언제쯤이 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한 사람의 운명도 제대로 모르는데 어떻게 나라의 운세를 운위할 수 있으냐”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나라의 운세와 세계의 정세가 어떻게 될 것이라느니,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된다느니 등으로 호들갑을 떠는 역술가들의 예언은 그다지 신뢰할 것이 못된다고 일침을 놓았다. ‘그래도 음력 정초인데 나라 운세를 조금만 말씀해 주시라’고 거듭 부탁하자 그는 “선부후통(先否後通) 하이우지(何以憂之)쯤이 되겠다”고 말했다. “지금은 꽉 막혀 있으나 나중에 뚫릴 것이니 무엇을 걱정하느냐”라는 뜻이었다. 한중수는 “우리나라의 역사에 언제 태평성대가 있었느냐”고 반문하면서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도 온갖 시련을 겪고도 그때마다 극복했듯이 지금의 위기도 슬기롭게 이겨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충남 서천에서 한학자이자 서당 훈장의 아들로 태어난 한중수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레 한적(漢籍) 더미 속에서 살았다. 여섯살 때 선친으로부터 <천자문>과 <소학>을 배웠으며, 이후에도 사서삼경을 비롯한 경전을 독학으로 익혔다. 한중수의 조부도 한학자이자 훈장이어서 학자 집안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던 그의 부친은 다른 학동(學童)들보다 3배를 더 가르치고 설명은 단 한번으로 끝내는 방법으로 아들을 엄격하게 가르쳤다. 한중수는 “글을 배울 때는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바로 그 혹독했던 공부가 오늘날까지 내가 먹고 살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교육기관으로서 그가 다녔던 곳은 아버지의 서당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는 “초등학교 졸업장도 없지만 읽고 쓰고 생각하는 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가 역학 연구에 뛰어들게 된 것은 1968년 역학서 전문출판사인 명문당에 근무하면서부터였다. 어렸을 때부터 쌓아온 한학의 기초는 자연스레 역학 연구로 연결됐고, 얼마 뒤 출판사를 그만두고 역학서 전업 작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가 지금까지 펴낸 역학서는 무려 50권이 넘는데 가장 성공한 저작은 <토정비결 최신판>이다. 이 책은 11년 동안의 운세를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구성한 것으로 상세한 운세 풀이를 통해 현대인들도 누구나 쉽게 자신과 가족의 한 해 운세를 가늠해 볼 수 있게 했다. 한중수는 “이 책을 보면 11년 동안의 재운, 소원, 건강운, 시험운, 직장운, 애정운, 결혼등 등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모든 역술이 그렇지만 토정비결에 나온 운세 때문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좋은 괘가 나오면 그저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오만하지 말고 나쁜 괘가 나와도 낙담하거나 실망할 것 없이 항상 근신하고 몸가짐을 바로 하면 된다는 것이다. 한중수는 “토정비결의 현대적 의미는 늘 조심하면서 살고 자기의 분수를 알며 안분자족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중수가 세상에 내놓은 책 가운데 그 자신이 가장 자부심을 갖는 것은 <역학 대사전>이다. 1400쪽이나 되는 이 책에는 관상, 사주, 작명, 풍수, 육갑법, 상법(相法), 자미두수, 합궁, 택일 등 역학의 모든 장르가 망라돼 있다. 그는 “참고문헌이나 고증서가 별로 없어 쓰는 데 무진 고생을 했다”면서 “3년 동안 먹고 자는 시간 외에는 오로지 책에만 매달렸다”고 말했다. 그 정도의 역학 지식으로 왜 일반인들을 상대하는 영업을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한중수는 “손님을 받았더라면 먹고 사는 것은 훨씬 윤택했을 것”이라며 “그러나 영업보다는 저술·연구하는 것이 더 좋았고, 그것도 다 사주팔자”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목숨이 붙어있는 한 계속 책을 쓰고 싶다는 그는 “지금 구상 중인 것만도 3~4권이 된다”고 말했다.

역학의 대가를 찾았는데 1년 신수를 비롯해 앞으로의 운세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사주를 건네자 그는 한동안 괘를 짚은 뒤 말문을 열었다. 자기 자신에게 겸손하지 못해 성공하지 못했으니 앞으로는 ‘얕은 물도 깊게 건너라’는 것이었다. 매사에 신중하고 겸허하라는 뜻일 터이다. 한중수는 “이것만 조심하면 앞으로의 운세는 좋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주 2개를 들이밀었다. 역학인을 찾아간다는 소식을 듣고 동료 갑(甲)과 을(乙)이 부탁한 것이었다. 갑의 운세는 “잠시 역풍을 맞고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좋은 사주를 타고 났고 일할 때 잔꾀를 부리지 않고 성실근면하니 50, 60대의 운이 모두 좋다”고 나왔다. 을은 “자신이 하는 일은 옳다고 믿는 자부심이 강한 성격이며 여기저기서 끌어가려고 할 정도로 능력이 출중하니 크게 쓰임이 있다”는 것이었다. 얕은 물도 깊게 건너고, 일할 때 잔꾀를 부리지 않으며, 자신이 하는 일은 옳다고 믿는 유능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경향신문의 기축년 한 해 앞길은 양양창창(洋洋蒼蒼)하다.

......^^백두대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