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리풍수 칼럼니스트 공문룡(6)
▼ 집 인테리어 풍수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입니까.
“건축가 김중업씨는 ‘집구석에서 울 곳이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굉장히 중요한 얘기입니다. 몸에 대소변 배설구가 있듯이 집에도 배출구가 있어야 해요. 옛날엔 다락방이 그런 공간이었어요. 아이들은 야단맞으면 방으로 가면 되지만, 요즘 남자들, 거실로 베란다로 쫓겨나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졌어. 안방은 아내의 전용 공간이 돼버렸어요.”
▼ 조선시대 가옥에선 사랑방이 남성의 전용공간이었지요.
“조선시대 가옥구조를 보면 여성이 명백히 상위였어요. 운현궁만 봐도 알 수 있어요. 대부인(민씨)이 머물던 안채가 대원군의 사랑채보다 더 높아요. 안채의 돌계단이 사랑채보다 한 계단 더 높거든요. 조선시대 안주인들은 곳간 열쇠를 쥐고 있어서 재산권에서도 우위였어요.”
▼ 집 인테리어를 할 때 오행(五行)을 참고하면 좋다고 하던데요.
“도움이 된다면 되는 거죠. 오행은 천지조화를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중요 도구입니다. 서양인은 오행을 다섯 가지 요소로 해석하는데, 잘못된 거예요. 계절은 변화하고 공간은 주체에 따라 좌우상하로 변질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것이 불변의 요소가 아니라 움직임인 행(行)이지요. 인테리어를 할 때 각자 오행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수(水)가 부족하면 어항을 둔다거나 목(木)이 부족하면 나무를 심는 식이죠. 그렇게 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믿음이 생기면 하라고 권해요.”
명당을 논할 때 묘터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음택 풍수 저변에는 발복(發福)을 기대하는 미신이 자리잡고 있다. 최창조 교수는 산소 자리잡기 풍수를 완강히 부정했다.
“‘묘터를 잘 써서 자식이 잘 된다’는 건 어림도 없는 말입니다. 지관들의 후손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조사해보면 알 수 있겠지요. 장관과 부자가 수두룩하게 나왔을까요? 그렇진 않아요. 조선 영조 때 성호 이익 선생이 전주 감찰사로 부임해 민묘를 이장해야 할 일이 있었어요. 난리가 났죠. 이익 선생이 지관을 모아놓고 ‘후손이 뭘 하고 있는지 파악하라’고 지시를 내렸어요. 실학자들은 실증적 자료에 의거했던지라 좋은 산소를 쓴 사람들의 후손을 파악하고자 했던 거죠. 그 결과 자손이 적어도 참판을 해야 할 묏자리인데 손자가 종적을 감췄고, 묘가 안 좋아서 대(代)가 끊겨야 하는데 멀쩡하게 벼슬을 하고 있더랍니다. 풍수가 얼마나 허망한지를 알려주는 얘기지요.”
최창조씨는 “명당은 마음속에 있다”고 말했다.
시신은 빨리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 묘를 잘못 쓰면 시신이 없어지거나 사라지는 일이 있다고 들었어요.
“귀신이 곡할 일이 벌어집니다. 심하면 시신이 뒤집혀버리거나 돌아버리는 경우도 있어요. 그건 묘를 잘못 써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땅이 그런 거죠. (우리나라 땅은) 표토가 깊지 않고 매스 웨이스팅(mass wasting·토지가 이동하는 현상)이 심해요. 시신을 매장한 이후 땅속이 움직여 묘 봉분 밑에 있지 않고 도망가거나 곽이 뒤집히는 걸 ‘도시혈(逃屍穴)’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침수지형이라 풀이나 나무뿌리가 잡아주지만 토양이 4면 이동을 할 수 있어요. 토양 입자 하나하나의 운동이 달라서 소용돌이가 되는 경우도 있고…. 어디에서든 약간의 움직임이 있어요.”
▼ 왕릉에 묻힌 시신들은 움직이지 않잖아요.
“깊게 파서 그렇습니다. 임금 왕(王)자에 열십자가 있잖아요. 풍수지리설에 따라 북현무, 남주작, 좌청룡, 우백호로 둘러싸인 곳 끝머리에 황룡이 있는 곳이 왕릉터였어요. 보통 자기 키 정도 깊이로 묘터 땅을 파는데 왕을 묻을 땐 5~6자 이상 파 들어가요. 자기 키 이상 들어가면 잘 안 썩거든요. 흉당으로 벌레가 나오는 ‘충렴’, 수맥이 흐르는 ‘수렴’, 시체가 없어지는 ‘도시혈’을 들 수 있어요. 흉당이기보다 땅을 얕게 팠기 때문입니다. 얕게 파면 물이 스며들고 벌레가 모입니다. 왕릉은 깊게 팠기 때문에 시신의 부패 속도가 느리고 움직이지 않는 것뿐입니다.”
▼ 일반적으로 묘터로 좋은 땅은 어떤 곳입니까.
“원칙적으로 좌우 앞을 아늑하게 감싸주는 곳이죠. 남향을 원하고 수맥을 피하죠. 전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장묘 문화에 반대해요. 한번이라도 이장(移葬)하는 걸 본 사람은 화장을 원해요. 정말 끔찍하거든요. (시신은) 인공을 가하더라도 빠른 시간 내에 자연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게 좋아요. 그런 의미에서 수목장을 권하고 싶어요. 화장을 해서 유골을 나무나 꽃 밑에 묻는 겁니다. 영국에서는 주로 꽃에, 독일과 스위스는 나무에 시신을 묻는다고 해요.”
▼ 일전에 고(故) 정주영 회장의 묘터인 경기 하남시 창우동 장지가 명당이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요.
“말한 적 없습니다. 가보지도 않았어요. 어디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기자들이 그냥 제 이름을 넣어 썼겠지요.”
“워커힐은 풍수지리적으로 안 좋아”
▼ 유명 기업인들이 묘터 봐달라고 연락하지 않습니까.
“기업인들은 묘터에 별로 안달하지 않아요.”
그는 풍수지리에 아랑곳하지 않는 재벌가로 SK그룹을 꼽았다.
“최종현 회장은 제가 서울대를 그만뒀을 때 처음으로 저를 도왔던 분입니다. 처음에 재벌이 만나자고 하기에 ‘뻔한 일’인 줄 알았어요. 산소 자리 봐달라고 하겠지 싶었어요. 손길승씨가 저를 찾아왔더군요. 자연스럽게 SK그룹에 강사로 초빙됐어요. 최 회장과 인연이 닿아 그 집에 가보았어요. 최 회장이 살던 워커힐호텔 구내에 있는 빌라는 풍수지리상 별로 좋지 않은 터였어요. 남한강과 북한강이 양수리에서 만나 광나루 쪽을 찌를 듯 달려드는 살벌한 곳이었어요. 본래 큰물이 집 쪽으로 쏟아질 듯이 몰려오면 기가 너무 세거든요. 젊은 사람도 이기질 못합니다. 심리적으로 공포감이나 두려움을 유발할 수 있어요. 그때 최 회장은 암 투병을 하실 때였어요.”
최 교수가 “집터가 좋지 않다”고 말하자 최 회장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나는 수많은 사람을 데리고 일합니다. 풍수 때문에, 그것도 물 때문에 굴복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겨낼 수 있다고 봅니다. 사람이 제일 귀한데 어찌 땅과 물의 기운에 눌릴 수 있겠습니까.”
“최 교수가 안 된다면 안 된다”
일반인도 ‘집터가 좋지 않다’고 귀띔하면 찜찜해서라도 집을 옮길 법한데, 최 회장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평소 기 수련을 좋아한 분이라 풍수에 귀기울이리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렇지 않더군요. 그분은 ‘집이란 잠시 머물다 떠나는 곳’이며 ‘유목민의 이동식 천막’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만일 제 말을 듣고 이사했다면 그분을 존경하지 않았을 거예요. 산소호흡기를 달고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데도 ‘능히 이겨낼 수 있다’고 말씀하니 참 존경스럽더군요.”
▼ 그렇다면 최 회장은 집터 때문에 사망했다고 봐야 하나요.
“그렇진 않아요. 최 회장은 그 집안에서는 꽤 장수한 편에 속했어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풍수이론을 직원들을 위해 참고하는 편”이라고 한다. ‘터가 안 좋다고 소문나면 직원들이 잡생각을 하고 결국 사고로 이어진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는 것.
“이건희 회장과 몇 번 공장 부지를 보러 간 적이 있었어요. 이미 결정된 부지인데 제가 ‘아닙니다’라고 말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와버립니다. 임직원들이 회장이 온다고 잔칫상을 준비했는데 저로선 정말 난감한 일이었죠. 이 회장은 ‘최 교수가 안 된다고 하면 안 된다’는 식이었어요.”
▼ 이건희 회장은 공장 부지를 고를 때도 명당을 찾았다는 얘기군요.
“명당이다, 아니다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터가) ‘안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 직원들의 심리에 나쁜 영향이 미칠까 걱정해요. 평온함을 찾는 것이 명당론이라면 이 회장은 정확하게 생각하는 거죠. (터가 안 좋다는) 소문이 나면 공사하다가 인부가 다칠 수 있거든요.”
▼ 삼성가(家)의 가족모임에 자주 초대받으신다고 들었어요.
“서너 번 갔다 왔어요. 주로 평창에 있는 피닉스파크 이 회장 방에서 식사를 했어요. 이 회장은 임직원들이 술 마시는 건 싫어하는 편인데 저에겐 포도주를 권하더군요. 저는 막걸리를 좋아하는 편이라서 와인을 막걸리 마시듯이 비워냈어요. 그랬더니 종업원이 아예 제 뒤에 서서 따라주더군요. 제가 불편해하니까 부인 홍라희 여사가 ‘그러지 마세요. 저분에겐 직업입니다. 거절하면 자리를 잃는 거예요’라고 했어요. 늘 헬기를 타고 서울까지 왔어요. 잠실에 전용 헬기장이 있어서인지 주로 헬기를 타고 다니더군요.”
그는 성격이 좋은 기업인으로 LG 구본무 회장과 동양그룹의 현재현 회장을 꼽았다.
“이건희 회장의 성격은 ‘도무지 모르겠다’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블랙홀’이라고 말하죠. 구 회장과 현 회장은 화통해요. 구 회장은 파주 LCD 생산공장 현장에서 사고가 났다면서 저를 불렀어요. 터에는 큰 문제가 없었어요. 대체적으로 기업인은 분명하고 명확한 성격입니다. 명분에 집착하지 않고 말을 둘러대지 않아요. 만일 정치인이 제게 강의를 맡긴다면 ‘민족문화 창달을 위한다거나 우리문화 독창성을 계발하기 위해 박사님을 지원하겠다’고 거창하게 말할 겁니다. 하지만 기업인은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 ‘임직원들에게 우리나라 문화를 알려줘서 자부심을 갖게 해야 합니다’라고 말해요. 기업인들은 ‘이익이 있는 곳에 투자를 한다’고 분명히 말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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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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