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했던 대로 서울거리는 화려하기 이를 데 없었다. 거리거리 마다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오고 가는 사람들이 분주한 시장 판에 는 오만가지 물건들을 늘어놓고 제각기 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다.
이것저것을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날은 저물어 하룻밤의 잠자리를 구해야 했 지만 절간이나 서당이 어디 있는지는 알 길이 없고,
부득이 여염집 신세를 저야 할까본데 집이라는 집은 모두 대낮부터 대문을 겹겹이 닫아걸고 있지 않는가.
문이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관문이 아니던가. 그런데 낮 에도 대문을 걸어놓고 산다는 것은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밥 한 그릇도 주지 않겠다는 심보일 것이니 서울의 인심이 이렇게도 고약하더란 말인가.
김삿갓은 서울이라는 고장에 당장 정나미가 뚝 덜어졌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밥도 먹고 잠도 자야 하겠기에 이집 저집 대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모두 허사였다.
밤이 깊어지면서 거리의 그 많던 사람들도 모두 어디론가 가버리고, 人定(인 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스물여덟 번이나 들려 왔지만 김삿갓이 서울장안에 통행 금지시간이 있는 것을 알 턱이 없었다.
통행금지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대감이니 영감이니 하는 큰 도둑들이 좀 도둑을 막는답시고 人定(인정;통금시작)이니 罷漏(파루;통금해제)니 하는 것 을 만들어 가지고 백성들만 하늘이 준 땅조차 맘대로 밟지 못하도록 괴롭히 는 것이 아니던가.
인정이 지나도록 거리를 배회하다가 순라군에 잡혀 광교 다리 밑의 거지 움 막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지만 그래도 움막 속의 인정은 훈훈했다.
나름대로 손님대접을 하는 그들의 인간성만은 대문을 겹겹이 닫아걸고 사는 양반님 네들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따뜻했다.
서울의 雲從街(운종가;종로)는 아침부터 사람들이 들끓고 있었다. 구경을 하 자면 구경거리가 너무도 많았지만 인정머리 없는 거리라고 생각하니 서울을 속히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이왕 왔으니 서울장안의 풍경을 한번은 굽어 보아야 할 것이어서 남산에 올랐다.
과연 남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장안의 풍경은 글자 그대로 장관이었다. 인심과는 달리 萬戶長安(만호장안)이라는 표현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서 울이요, 그를 둘러싸고 있는 山水는 아무리 보아도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북쪽에는 三角山(삼각산), 北嶽山(북악산), 仁王山(인왕산)이 병풍처럼 둘러 서서 천혜의 방벽을 이루었고, 장안을 성큼 뛰어넘은 남쪽에는 木覓山(목멱 산;남산)이 얌전하게 솟아 있으며, 그 밑으로는 한강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어 서 그야말로 山紫水明(산자수명)한 金城天府(금성천부)인 것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시인 묵객들이 서울의 산수를 예찬하고 국운만세를 빌었 나 보다. 김삿갓은 문득 옛 시인 吳洵(오순)의 시를 떠올렸다.
공중에 높이 솟은 세 송이 푸른 부용 아득한 구름 속에 겹겹이 서렸구나. 누대에 올라갔던 옛일을 생각하며 해거름에 절간의 종소리를 듣노라 聳空三朶碧芙蓉(용공삼타벽부용) 縹渺烟霞幾萬重(표묘연하기만중) 却憶當年倚樓處(각억당년의루처) 日沒簫寺數聲鐘(일몰소사수성종)
또한 西山大師(서산대사)는 일찍이 남산에 올라 장안을 굽어보며 국운만세 를 다음과 같이 빌었다.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러 이 큰 서울은 천 읍을 거느렸네. 하늘은 낳고 땅은 키우니 크나큰 성인은 모든 것을 기르시네. 하늘은 높고 땅은 두터우니 이 땅 조선은 만수를 누리오리 天其玄兮地其黃兮(천기현혜지기황혜) 維此大都統千邑兮(유차대도통천읍혜) 天其生兮地其遂兮(천기생혜지기수혜) 維此大聖囿萬類兮(유차대성유만류혜) 天其高兮地其厚兮(천기고혜지기후혜) 維此朝鮮齊萬壽兮(유차조선제만수혜)
이토록 아름다운 장안에 사는 양반님 네들의 인심은 왜 그 모양일까. 아무래도 서운한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김삿갓은 문득 뒤가 마려워 바 위 사이에 쪼그리고 앉았다.
고래 등 같은 기와집 군상들을 내려다보면서 뒤를 봄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쾌함이었다.
그래서 그는 짤막한 즉흥시 한 수로서 그의 심사를 뒤틀리게 했던 서울을 이 별했다.
남산에 똥을 누니 방귀가 먼저 나와 향기로운 그 냄새 온 장안에 진동한다. 放糞南山第一聲(방분남산제일성) 香震長安億萬家(향진장안억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