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이야기

74. 서울 木覓山(목멱산;지금의 남산)

eorks 2024. 11. 24. 08:11

74. 서울 木覓山(목멱산;지금의 남산)


    남한산성을 떠난 김삿갓은 왕십리을 거처 머릿속으로만 상상해 보던 서울
    장안으로 들어섰다.

    예상했던 대로 서울거리는 화려하기 이를 데 없었다. 거리거리 마다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오고 가는 사람들이 분주한 시장 판에
    는 오만가지 물건들을 늘어놓고 제각기 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다.

    이것저것을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날은 저물어 하룻밤의 잠자리를 구해야 했
    지만 절간이나 서당이 어디 있는지는 알 길이 없고,

    부득이 여염집 신세를 저야 할까본데 집이라는 집은 모두 대낮부터 대문을
    겹겹이 닫아걸고 있지 않는가.

    문이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관문이 아니던가. 그런데 낮
    에도 대문을 걸어놓고 산다는 것은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밥 한 그릇도 주지
    않겠다는 심보일 것이니 서울의 인심이 이렇게도 고약하더란 말인가.

    김삿갓은 서울이라는 고장에 당장 정나미가 뚝 덜어졌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밥도 먹고 잠도 자야 하겠기에 이집 저집 대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모두 허사였다.

    밤이 깊어지면서 거리의 그 많던 사람들도 모두 어디론가 가버리고, 人定(인
    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스물여덟 번이나 들려 왔지만 김삿갓이 서울장안에
    통행 금지시간이 있는 것을 알 턱이 없었다.

    통행금지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대감이니 영감이니 하는 큰 도둑들이 좀
    도둑을 막는답시고 人定(인정;통금시작)이니 罷漏(파루;통금해제)니 하는 것
    을 만들어 가지고 백성들만 하늘이 준 땅조차 맘대로 밟지 못하도록 괴롭히
    는 것이 아니던가.

    인정이 지나도록 거리를 배회하다가 순라군에 잡혀 광교 다리 밑의 거지 움
    막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지만 그래도 움막 속의 인정은 훈훈했다.

    나름대로 손님대접을 하는 그들의 인간성만은 대문을 겹겹이 닫아걸고 사는
    양반님 네들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따뜻했다.

    서울의 雲從街(운종가;종로)는 아침부터 사람들이 들끓고 있었다. 구경을 하
    자면 구경거리가 너무도 많았지만 인정머리 없는 거리라고 생각하니 서울을
    속히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이왕 왔으니 서울장안의 풍경을 한번은 굽어
    보아야 할 것이어서 남산에 올랐다.

    과연 남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장안의 풍경은 글자 그대로 장관이었다.
    인심과는 달리 萬戶長安(만호장안)이라는 표현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서
    울이요, 그를 둘러싸고 있는 山水는 아무리 보아도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북쪽에는 三角山(삼각산), 北嶽山(북악산), 仁王山(인왕산)이 병풍처럼 둘러
    서서 천혜의 방벽을 이루었고, 장안을 성큼 뛰어넘은 남쪽에는 木覓山(목멱
    산;남산)이 얌전하게 솟아 있으며, 그 밑으로는 한강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어
    서 그야말로 山紫水明(산자수명)한 金城天府(금성천부)인 것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시인 묵객들이 서울의 산수를 예찬하고 국운만세를 빌었 나
    보다. 김삿갓은 문득 옛 시인 吳洵(오순)의 시를 떠올렸다.


              공중에 높이 솟은 세 송이 푸른 부용
              아득한 구름 속에 겹겹이 서렸구나.
              누대에 올라갔던 옛일을 생각하며
              해거름에 절간의 종소리를 듣노라

              聳空三朶碧芙蓉(용공삼타벽부용)
              縹渺烟霞幾萬重(표묘연하기만중)
              却憶當年倚樓處(각억당년의루처)
              日沒簫寺數聲鐘(일몰소사수성종)


    또한 西山大師(서산대사)는 일찍이 남산에 올라 장안을 굽어보며 국운만세
    를 다음과 같이 빌었다.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러
              이 큰 서울은 천 읍을 거느렸네.
              하늘은 낳고 땅은 키우니
              크나큰 성인은 모든 것을 기르시네.
              하늘은 높고 땅은 두터우니
              이 땅 조선은 만수를 누리오리

              天其玄兮地其黃兮(천기현혜지기황혜)
              維此大都統千邑兮(유차대도통천읍혜)
              天其生兮地其遂兮(천기생혜지기수혜)
              維此大聖囿萬類兮(유차대성유만류혜)
              天其高兮地其厚兮(천기고혜지기후혜)
              維此朝鮮齊萬壽兮(유차조선제만수혜)


    이토록 아름다운 장안에 사는 양반님 네들의 인심은 왜 그 모양일까.
    아무래도 서운한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김삿갓은 문득 뒤가 마려워 바
    위 사이에 쪼그리고 앉았다.

    고래 등 같은 기와집 군상들을 내려다보면서 뒤를 봄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쾌함이었다.

    그래서 그는 짤막한 즉흥시 한 수로서 그의 심사를 뒤틀리게 했던 서울을 이
    별했다.


              남산에 똥을 누니 방귀가 먼저 나와
              향기로운 그 냄새 온 장안에 진동한다.

              放糞南山第一聲(방분남산제일성)
              香震長安億萬家(향진장안억만가)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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