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이야기

76. 馬上逢寒食(마상봉한식)

eorks 2024. 11. 26. 04:49

76. 馬上逢寒食(마상봉한식)


    이산 저산에 모두가 꽃이었다. 삿갓을 제겨 쓰고 꽃구경을 하며 마냥 한가
    롭게 거닐고 있노라니까 저만큼 풀밭에서 여남은 살 먹어 보이는 머슴아이
    가 조랑말을 끌고 다니며 풀을 뜯기고 있었다.

    김삿갓은 말을 보자 옛날 絶句(절구) 한 수가 머리에 떠올랐다.

              말 위에서 한식을 만났는데
              오다 보니 어느새 봄이 저무네.

              馬上逢寒食(마상봉한식)
              途中送暮春(도중도모춘)


    말을 타고 봄을 즐기며 九十春光(구십춘광)을 馬上(마상)에서 보낸다는
    소리다. 옛날 사람 들은 나들이 할 때에는 흔히 말을 타고 다녔다.

    그러기에 김삿갓 자신도 말을 타고 봄을 즐겨 보고 싶었다.

    주머니를 뒤져 보니 돈 두 냥이 들어 있다.

    머슴아이를 불러 돈 두 냥을 쥐어 주고 말을 좀 타 보자고 했다.

    돈은 선비의 마음도 검게 한다고 했던가(黃金黑士心(황금흑사심)).

    돈을 본 아이는 김삿갓을 얼른 말 위에 올라타게 하고는 고삐를 단단히
    잡고 곁에 달라붙는다.

    돈은 받았지만 말을 타고 달아날까 봐 겁이 났던 모양이다.

    그러나 김삿갓으로서는 자동적으로 牽馬까지 잡힌 격이 되었다.

    말을 처음 타 보는 그는 마냥 즐겁기만 했고, 마상에서 바라보는 봄 풍경
    은 또 다른 운치가 있었다.


              느린 말이 산수 보기에는 더욱 좋아
              채찍은 숫제 쓰지도 안했네.
              바위 사이 오솔길을 가까스로 지나오니
              연기 나는 곳에 초가집이 두세 채

              倦馬看山好(권마간산호)
              停鞭故不加(정편고불가)
              岩邊纔一路(암변재일로)
              烟處或三家(연처혹삼가)


              꽃이 피었으니 봄은 분명한데
              냇가의 물소리는 비가 온 탓이런가.
              돌아갈 길 까맣게 잊고 있는데
              해가 저문다고 아이가 일러 주네.

              花色春來矣(화색춘래의)
              溪聲雨過耶(계성우과야)
              渾忘吾歸去(혼망오귀거)
              奴曰夕陽斜(노왈석양사)


    말을 빌려 탄 덕에 시 한 수를 절로 얻었다.

    이윽고 김삿갓은 말을 아이에게 돌려주고 날이 저물었으니 어디선가 하룻
    밤 자고 갈만 곳을 아이에게 물었다.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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