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빌려 탔던 아이에게서 조금만 더 가면 碧蹄館(벽제관)이라는 말을 들은 김삿갓은 불현듯 임진왜란의 고사가 머리에 떠올랐다.
宣祖(선조)는 의주까지 피난하면서 명나라에 구원병을 청하였고, 구원병을 몰고 온 李如松(이여송)은 평양과 송도를 차례로 탈환했으나 벽제에서 패하 였다.
승승장구하던 이여송이 벽제에서 혼이 나자 송도로 물러나서 좀처럼 싸우 려 하지 않았다.
지혜롭기로 유명했던 漢陰 李德馨(한음이덕형)이 여러 차례 나가 싸우기를 권유하다가 화가 나서 이여송의 방에 둘려 있는 赤壁圖(적벽도) 병풍에 다음 과 같은 시 한 수를 써 갈겼다.
승부란 한 판의 바둑과 같은 것 병가에서 가장 꺼림은 꾸물거림이오. 알건대 적벽싸움의 전에 없던 공적은 손 장군이 책상을 찍던 그 때부터요. 勝負分明一局碁(승부분명일국기) 兵家最忌是遲疑(병가최기시지의) 須知赤壁無前績(수지적벽무전적) 只在將軍斫案時(지재장군작안시)
삼국지에 나오는 고사를 빗대어 지은 시였다. 孫權(손권)이 曹操(조조)에게 패하여 장병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자 모두들 항복하자고 하였으나 周瑜(주유)와 魯肅(노숙)은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하였 고
이에 용기를 얻은 손권이 분연히 일어나 책상을 칼로 찍으면서 결전을 선언 함으로서 赤壁(적벽)싸움에서 대승을 거두었던 것이다.
이여송은 이 시를 읽고 크게 깨달은 바 있어 陸戰(육전)을 재개하여 서울을 탈환 하였고,
멀리 남해에서는 이순신장군이 적의 함대를 섬멸함으로서 임진왜란을 승리 로 이끌었으니 이덕형의 이 한 편의 시가 그토록 위대한 공헌을 한 셈이었다.
그러저러한 回憶(회억)에 잠기면서 벽제관에서 일박한 김삿갓은 임진나루를 향하여 휘적휘적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저만큼 산기슭에서 여인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지 않는가.
눈을 들어 살펴보니 소복을 한 젊은 아낙이 한 무덤 앞에서 곡을 하고 있는데 때가 봄인 탓인지 그 울음소리가 마치 노래처럼 구성지게 들려 왔다.
십리 모래밭 가 언덕은 잔디인데 소복 입은 과부의 곡소리 노래 같이 들리네. 가엽다 지금 무덤 앞에 부어 놓은 저 술은 낭군이 지어 놓은 곡식으로 빚은 술이리. 十里平沙岸山莎(십리평사안산사) 素衣靑女哭如歌(소의청녀곡여가) 可憐今日墳前酒(가련금일분전주) 釀道阿郞手種禾(양도아랑수종화)
여인의 곡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즉석에서 읊은 즉흥시이다. 남편이 지어 놓은 곡식으로 다정한 밥상을 같이 하지 못하고 술을 빚어 무덤 에 뿌려야 할 줄을 누가 알았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