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의 ‘천지는 만물의 역여’라는 長詩(장시)는 그의 춤추는 붓끝에서 그 칠 줄모르고 거침없이 이어진다.
봄 동산에 잠시 피는 복사꽃 오얏꽃은 하늘땅이 내뿜는 숨결과 같은 것 광음이 화살처럼 오가는 이 마당에 죽고 사는 일이 어지럽기만 하구나. 東園桃李片是春(동원도리편시춘) 一泡乾坤長感敍(일포건곤장감서) 光陰瞬去瞬來局(광음순거순래국) 渾沌方生方死序(혼돈방생방사서)
인간은 한 번 살고 가도 만상은 복잡하여 변화의 면에서 보면 크고 작음이 없나니 산천과 초목은 끊임없이 바뀌어 가고 제왕과 호걸도 흥망이 항상 반복되도다. 人惟處一物號萬(인유처일물호만) 以變觀之無巨細(이변관지무거세) 山川草木成變場(산천초목성변장) 帝伯侯王飜覆緖(제백후왕번복서)
김삿갓은 단숨에 여기까지 써 내리고, 잠시 붓을 멈추며 秋月(추월)을 바라 보고 “어떤가, 자네도 이 시에 공감하는 바가 있는가?”하고 물었다.
추월은 깊은 꿈에서 깨어나는 사람처럼 조그맣게 속삭인다.
“공감정도가 아니옵고, 저는 이 시에서 인생의 참된 모습을 새삼 깨달은 듯 하옵니다.
白樂天(백락천)의 시에 長生無得者 擧世如蜉蝣(장생무득자 거세여부유=죽 지 않는 것은 아무도 없으니 온 세상은 하루살이와 같다.)라는 말이 있기는 하오나
선생님의 시를 읽어 보면 인생이 너무 왜소한 것 같사옵니다.”
김삿갓은 인생이란 본시 그런 것이 아니냐 면서 붓을 다시 들어 아직도 못 다편 소회를 펼쳐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