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때 유머

[고전유머]2-23화 부끄러움당한 경주 제독(提督)

eorks 2007. 3. 20. 11:02
[옛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
제2부 화류춘몽, 그 웃음과 눈물

(제2-23화)부끄러움당한 경주 제독(提督)
    조선 선조 임금 때 각 도 향교에 `제독'이라는 이름의 학문 독 려 관리를 파견했는데, 이 `제독' 제도는 얼마 후에 없어지고 그 뒤로는 향교에서 글을 가르치고 학문을 독려하던 `훈도(訓導)'를 `제독'이라고 불렀다. 한 문관이 경주 제독이 되어 부임했는데, 엄격한 가풍에 따라 여색을 멀리하여 기생들을 보기만 하면 담뱃대로 그들의 머리를 때리면서, "이 사기(邪氣), 이 요기(妖氣) 같은 것들." 이라고 말하며 멀리 쫓았다. 그래서 기생들이 매우 괴로워하니, 얘기를 들은 경주 부윤이 기생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너희들 중 누가 저 제독을 속여 꾀어서 여색에 빠지게 하면 내가 큰 상을 내리겠다. 누구 해볼 사람 없느냐?" 이렇게 선언하니, 이에 한 어린 기생이 나서서 자원했다. "어르신, 소녀가 제독을 유인해 여색에 빠져 꼼짝없이 낭패 를 당하도록 하겠나이다. 두고 보소서." "응,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너에게 정말 큰 상을 내리지." 곧 어린 기생은 통인 하나만 데리고 제독이 혼자 거처하고 있 는 향교 안 재실로 갔다. 그리고 수수한 시골 여자 차림을 하고 는 매일 향교 정문에 나타나 문설주에 기대서서 통인을 부르며 제독의 눈에 뜨이도록 숨었다 나타났다 하는 것이었다. 어떤 때 는 통인을 불러내 데리고 가기도 했는데, 하루에 두세 번씩 와서 이렇게 할 때도 있었다. 기생이 며칠 동안 이러한 행동을 계속하니, 제독이 처음에는 못 본 체하다가 며칠 지난 뒤에 어느 날 통인을 불렀다. "얘, 저 여인이 누군데 매일 와서 너를 부르느냐?" "예, 나으리 황송하옵니다. 저 아이는 제 누이동생입니다.. 혼 인한 지 반년 만에 남편으로부터 매를 맞아 쫒겨나고, 그리고 곧 재혼하여 이제 1년여 되었는데, 재혼하자마자 또 남편이 멀리 장사하러 가서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쓸쓸해 오라비인 소인을 불러 함께 놀자며 데리고 가는 것이옵니다." 통인은 제독이 관신을 갖도록 이렇게 대답했다. 하루는 통인이 일부러 핑계를 대고 외출했는데, 통인이 없는 사이에 여인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향교에 와서 통인을 부르 는 것이었다. 이 때 혼자 무료하게 앉아 있던 제독이 여인을 보 고는, "얘야, 마침 잘 왔다. 이리 올라와 화롯불을 좀 가져다오. 네 오라비가 화롯불을 준비해 놓지 않고 나가서 돌아오지 않으 니 내 담배를 피울 수가 없구나." 하고 말하면서 손짓을 해 부르는 것이었다. 이에 여인이 수즙어하면서 머리를 숙이고 올라와 화로를 가 져다 담뱃불을 붙여 드리니, 제독은 여인에게 다시 말했다. "얘야, 네가 내 심부름하는 통인의 동생이라지? 곱기도 해라, 여기 마루에 올라와 좀 앉으려무나." 이 말에 여인은 못 이기는 체하면서 마루로 올라와 제독 앞에 다소곳이 옹크리고 앉았다. 이 때 제독은 그 수수하고 아리따운 여인의 모습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얘야, 내 말 잘 들어. 내가 지금까지 많은 여자를 보아 왔지 만 너만큼 예쁜 여자는 처음 본다. 내 너를 보고는 눈앞이 어른 거리며 정신이 혼미할 정도니, 오늘 밤에 조용히 내 방으로 와다 오. 꼭 와야 하느니라. 알아들었지?" "나으리, 그런 부당한 말씀을 거두소서. 소녀는 미천한 신분 이라 감히 나리의 방에 들어갈 수가 없는 여자이옵니다." "얘야, 그러지 말고 오늘 밤에 내 방으로 꼭 좀 와다오. 내 너 를 본 후로 병이 날 지경이니라. 꼭 와야 한다." 제독은 이렇게 재삼 당부하면서 간절한 애정을 표하느 것이 었다. 그래서 여인은 수줍은 듯이 머리를 숙이고 이야기했다. "나으리, 진정 그러시오면 여기는 향교 재실이라 여자가 있 기에 민망스럽사옵니다. 나중에 제 오라비를 통해 전립(氈笠;머리 에 덮어쓰는 천으로 만든 모자)을 보내 드리겠사오니 그것을 쓰 시고 밤에 소녀의 집으로 오소서, 기다리고 있겠사옵니다. 소녀 의 집은 오라비에게 물으소서." 여인은 이렇게 말하고 얼른 일어나 물러나왔다. 이날 밤, 제독이 통인이 전해 준 전립을 쓰고 여인의 집으로 가니, 여인은 술상을 차려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여인은 제독에 게 몇 잔의 술을 권한 후 술상을 치우고, 제독에게 옷을 모두 벗 게 한 다음에 자신도 옷을 벗고 알몸이 되어 함께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제독은 오랜만에 여인의 몸을 안고 활활 달아 떨면서 어쩔 줄을 모르고 빨리 서둘렀다. 그 순간이었다. 밖에서 벼락같이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 고, 어떤 남자가 술에 취해 대문을 박차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 르고 소란을 피우는 것이었다. 이에 제독과 함께 이불 속에 누워 있던 여인이 놀라고 두려워 당황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으리, 저 남자는 소녀의 전 남편이옵니다. 결혼한 후로 소 녀를 때리고 구박하며 내쫒아서, 소녀는 저 남자와 이혼하고 지 금의 남편과 재혼했습니다. 그 뒤로 저 남자는 찾아오지 않았는 데 지금 저렇게 찾아온 것입니다. 성질이 고약하고 만나기만 하 면 때리는 난폭한 남자입니다. 만약에 소녀가 어르신과 같이 옷 을 벗고 있는 것을 알면 아마도 살인 사건이 날 것이옵니다. 소 녀가 나가서 왜 왔느냐고 따지며 승강이를 벌이는 동안 어르신 은 빨리 저 궤 속에 들어가 숨으소서." 여인은 윗목에 있는 커다란 궤를 가르키면서 이렇게 이르고 는 주섬주섬 옷을 주워입었다. 이에 제독은 옷입을 겨를도 없이 여인이 시키는 대로 급히 궤 속으로 들어가니, 여인은 얼른 궤 뚜껑을 덮고는 자물쇠를 채우고 문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여인은 그 남자에게 왜 찿아왔느냐고 따지면서 싸우 는 것이었다. 이에 남자도 맞서 고래고래 소리치면서, "이년아, 내 따져 해결할 문제가 있어 왔으니 어서 방으로 들 어가기나 해." 하고는 여인의 손을 끌며 문을 박차고 방으로 들어왔다. 방에 들어온 남자는 이엇저것 막 집어던지며 한참 동안 행패 를 부리더니 소리쳤다. "이년아, 예전에 내가 해준 옷들 다 어디 있느냐? 다 내놓아! 이년이 어디에다 숨겼어? 빨리 내놓지 못해!" 이에 여인이 몇 가지 옷을 내주니, 남자는 씩씩거리면서 다시 이렇게 말했다. "저 윗목에 있는 궤는 무명베 두 필을 주고 샀지 않느냐? 그 중 한 필은 내가 준 것이니 오늘 내가 궤를 지고 가겠다." 이러며 궤를 만지니, 여인은 앙칼진 목소리로 대꾸했다. "아니, 둘이서 샀는데 왜 혼자서 지고 가겠다는 거요? 말도 안 돼요. 이 궤는 절대로 가져갈 수 없어요." 이렇게 둘이서 싸우다가 남자는 기어이 궤를 관청에 가지고 가서 송사를 해 결판을 내야 한다고 하면서, 궤에 끈을 매어 짋 어지고는 관가로 달려가 관청 뜰레 내려놓았다. 부윤이 뜰에 불을 밝히고 여인과 남자의 애기를 듣고는 엄숙 한 목소리로 판결을 내리는데, 아주 명판결이었다. "두 사람은 듣거라! 둘이 힘을 합쳐 산 궤이니 톱으로 가운데 를 잘라 두 동강으로 내어 줄테니 하나씩 가지도록 하라." 이 판결에 따라, 곧 관노들이 달려들어 큰 톱으로 궤를 자르 기 시작했다. 이 때 안에 있던 제독이 다급하게 소리치는데, "이 사람들아, 사람 살려! 궤 안에 사람이 들어 있느니라." 하고 연속으로 외쳐 댔다. 부윤이 멈추게 하고 궤를 열어 보라 해 뚜껑을 여니, 알몸의 남자가 나왔는데 보니까 그렇게도 여색 을 엄하게 금하던 제독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크게 놀라는데, 부윤은 제독을 부축해 당상으 로 올라오게 하고 옷을 갖다 주어 입히라고 했다. 그래서 급한 김에 아전들이 긴 여자 장의(長衣)를 갖다 입혀 주니, 제독은 여 자 장의를 입고 맨발로 향교로 돌아갔다. 제독은 그 길로 사직하고 도망 쳐 집으로 돌아가 버렸는데, 이 후로 경주에는 `궤 제독'이란 말이 유행했다.<조선 후기> [옛 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 / 김현룡 지음]



......^^백두대간^^........白頭大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