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때 유머

[고전유머]2-24화 암행어사 허민(許珉)과 평양 기생

eorks 2007. 3. 20. 11:15
[옛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
제2부 화류춘몽, 그 웃음과 눈물

(제2-24화)암행어사 허민(許珉)과 평양 기생

     평양에 용모가 뛰어난 이화(梨花)라는 기생이 있어서 남자들
   의 시선을 끌었다. 그래서 평안 감사로 부임하는 조정 대신들이
   이화에게 매혹되어 제대로 본분을 다하지 못하고 추문에 휘말려
   쫒겨 오는 일이 계속되었다.
     이를 걱정한 임금은 곰곰히 생각했다.
     `내 유능한 신하들이 기생 이화에게 유혹을 당하여 폐인이
   되니 안타까운 일이다. 내 그 기생을 누구에게 의탁해 살도록 해
   야 신하들을 보호할 수가 있겠는데....,'
     이렇게 생각하고 특별히 강직하기로 소문난 허민 참판을 암
   행어사로 임명해 평양으로 내려보내면서 단단히 당부했다.
     "아무리 평양이 색향이라 하지만, 내려가는 감사마다 이화라
   는 기생에게 유혹당해 일을 그르치니, 특별히 의지가 굳은 경이
   내려가서 엄격하게 다스려 이화를 처치하도록 하라."
     이에 허 어사가 즉일로 출발했다. 평양 근처에 이르러 역졸들
   을 분산하며 내일 감영에서 만나 `암행어사 출두'를 하기로 약속
   하고, 허 어사는 허름한 옷차림으로 바꾸어 입고 신분을 숨긴 채
   평양성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허 어사가 10여 리를 걸어 장림 숲으로 들어가니, 날이 이미
   어두워지는데 목이 마르고 피곤했다. 사방을 둘러보니 주막이
   모두 문을 닫고 한 작은 오두막집 주막만이 눈에 뜨이기에, 찿아
   들어가니 어린 소년이 뜰 평상에 앉아 있었다. 곧 허 어사가 평
   상에 걸터앉아 목을 축일 양으로 술을 시켜 한두 잔 마셔 보니
   의외로 술맛이 매우 좋았다.
     그래서 계속 몇 잔을 더 마셔 술병이 비기에, 소년에게 술병
   을 주면서 술을 더 가져오라고 했다.
     곧 소년은 술병을 받아들고 방 쪽을 향해 소리쳤다.
     "손님이 술을 더 청하십니다. 술 한 병을 더 내주십시요."
     조금 있으니 한 아름다운 여인이 바가지에 술을 떠가지고 나
   와서, 소년이 들고 있는 술병에 술을 채우는 것이었다.
     허 어사는 이미 술이 약간 취한데다. 그 여인을 보는 순간 마
   음에 커다란 요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허 어사가 계속 술을 마
   셔 다시 술병이 비기에 술 한 병을 더 요청했다.
     이 때 방안에 있던 여인이 나와서 소년에게 말했다.
     "얘야, 이제 술이 떨어졌으니 얼른 성안으로 달려가서 술을
   좀 사오너라. 밤이 늦기 전에 빨리 갔다 와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서 돈을 주어 소년을 내보내고, 방안으로 들어
   가면서 허 어사에게 양해를 구했다.
     "손님, 죄송합니다만 집에 술이 다 떨어졌으니 손님께서도
   이제 딴 주막으로 가보셔야 하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아이가 술을 사서 돌아올 때까지 여기 앉아서
   기다리겠습니다."
     허 어사는 여인에게 야릇한 눈길을 던지면서 이렇게 대답했
   다. 그리고 앉아 있는데 밤이 깊었는데도 소년은 돌아오지 않았
   다. 기다리고 있던 허 어사가 여인을 불러  요청했다.
     "밤이 깊었으니 하룻밤 자고 가야 할 것 샅습니다."
     "손님, 그러니 진작 다른 주막으로 가보시라고 하지 않았습
   니까. 집안에 남자가 없고 심부름하는 아이도 돌아오지 않으니
   손님을 주무시라고 하기가 매우 곤란합니다. 밤이 더 깊기 전에
   얼른 다른 데로 가보시지요."
     여인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하고 정중하게 거
   절하는 것이었다. 이 말에 허 어사가,
     "정 그렇다면 여기 마당에 있는 평상에라도 좀 자고 가게
   허락해 주십시요. 간절한 부탁입니다."
   하고는 다시 간청하니, 여인은 마음대로 하라고 대답하고는 방으
   로 들어가 버렸다.
     밤이 깊은 다음에 허 어사는 여인이 들어간 방문을 열고 방안
   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반듯하게 누워 자고 있는 여인을 끌어안
   으면서 귀에 대고 가만히 말했다.
     "부인, 용서하십시요. 내 지금까지 부인같이 예쁜 여자는 본 적
   이 없습니다. 부인을 보는 순간 내 마음을 모두 부인에게 빼앗겨
   견딜 수가 없으니, 제발 거절하지 말아 주십시요."
     이러면서 여인을 더욱 힘껏 끌어안으니 여인이 울면서,
     "수절하고 있는 과부의 절개를 꺾어 훼손하면 이 과부는 어
   찌 살겠습니까? 죽는 길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사오니 재발 이러
   지 마시고 나가 주십시요."
   하고는 사정하듯 말하며 몸을 빼려고 하는 것이었다.
     이에 허 어사는 간절하게 여인을 달랬다.
     "부인, 죽기는 왜 죽어요? 그런 걱정은 마시고 나에게 몸을
   맡기십시오, 내 첩으로 삼아 한평생 함께 살 것을 굳게 맹세합니
   다. 내 말을 믿고 마음을 놓으십시요."
     이 말을 들은 여인은 온몸에 힘을 빼고 축 늘어졌다. 그래서
   허 어사는 여인을 안아 옷을 벗기고 마음대로 속살을 맞대어 그
   몸을 다 가졌다. 이 때 여인은 완전히 무저항 상태로 몸을 내맡
   기는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아침에 허 어사가 다시 들르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떠나려 하
   니, 여인은 울면서 팔을 내밀었다.
     "선비 어른, 말로만 한 약속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소녀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신다는 증표로 이 팔에 이름을 써주시고 떠나
   십시오. 소녀 간절한 부탁이옵니다."
     이렇게 팔에 이름을 써달라고 요구하니, 허 어사는 그야 어렵
   지 않다고 하면서 여인의 팔에 자기 이름인 `허민' 두 글자를 뚜
   렷하게 써주고 떠나갔다.
     사실, 주막의 이 여인이 바로 그 유명한 기생 이화였다. 이화
   는 조정에서 자기를 처치할 암행어사가 내려온다는 소식을 염탐
   하여 미리 알고 있었기에, 이곳에 주막을 차리고 근처 가까운 곳
   에 있는 주막에는 이날 문을 닫아 술울 팔지 않도록 돈을 주고
   부탁해 놓은 것이었다.
     주막을 떠난 허 어사는 곧바로 감영으로 들어가서 `암행어사
   출두'를 알리고 자리에 좌정한 다음 엄한 명령을 내렸다.
     "내 왕명을 받들어 많은 조정 관리들을 현혹시켜 폐인으로
   만든 기생 이화를 처단하려고 왔노라. 평안 감사는 빨리 이화를
   잡아 이 앞에 대령시키도록 하시오."
     이러한 추상같은 명령을 내리니, 감사의 지시를 받은 군졸들
   이 이화를 끌어내어 땅에 엎드리도록 했다. 이에 허 어사가 엄숙
   한 목소리로 이화에게 죄목을 제시하려고,
     "평양 기생 이화는 듣거라."
   하고 소리쳤다.
     이 때 땅에 엎드린 이화가 울면서 아뢰는 것이었다.
     "소녀 지은 죄가 막중해 형벌을 달게 받겠사옵니다. 그러나
   형벌을 받기에 앞서 지엄하신 왕명을 집행하시는 어사 나리게
   소녀가 지은 시 한 수를 올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
   소녀 죽어도 여한이 없겠사옵니다."
     "뭐라고? 네가 지은 시라고 했겠다? 어디 보자꾸나."
     이에 관원이 이화가 내미는 종이를 받아 어사에게 올리니, 허
   어사가 받아서 펼쳐 보는데 그 시는 이러했다.
     이화에 팔 위에 누구 이름 새겼는고(梨花臂上刻雖名)?
     검은 먹물 깊이 스며 글자마다 선명한네(墨入深膚字字明).
     차라리 대동강물은 말라서 없어질지라도(寧便大洞江水盡).
     이 마음 처음 맹서 저버리려 하지 않겠지(此心不欲負初盟).
     시를 읽은 어사가 놀라면서 엎드려 있는 이화를 내려다보
   니, 이화는 한쪽 팔 소매를 걷어 치켜들고 있는데 오늘 아침에
   자신이 써준 `허민'이라는 두 글자가 어느새 선명한 문신으로 새
   겨져 있었다.
     이에 허 어사는 차마 이화를 처단하지 못하고 내린 명령을 거
   두었는데, 그렇다고 왕명을 어길 수도 없어서 큰 고민에 빠졌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임금의 처분에 따르기로 하고 이 내력을 자세
   히 적어 임금에게 보고하고는 명령을 기다렸다.
     허 어사가 올린 글을 읽어 본 임금은 대신들을 돌아보고 크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과연 평양 기생 이화는 명물이로다. 앞서 내 유능한 신하들
   이 유혹을 당했던 이유를 알만하구나. 이제 한 사람에게 매이게
   하여 후환을 없애야겠다."
     그러고는 허 어사에게 글을 써서 내려보넸는데,
     `이화의 밭에 허민이 경작하여 농사지음을 허가하노라(梨花
   之田許珉耕之).'
   라고 써서 보낸 것이다. 허 어사가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는데, 자세히 풀이해 보니 임금이 자신에게 이화를
   첩으로 삼아 거두라는 명령을 내린 것임을 알아냈다. 곧 허 어사
   는 이화를 첩으로 삼아 데리고 상경하여 성은에 감사하며 한평
   생 잘살았다.
     이후로 평양으로 가는 관리들이 일을 그르치는 일이 없게 되
   니, 조정 대신들은 임금의 깊은 배려에 감탄을 금치 못하더라.
                                           <조선 후기>
[옛 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 / 김현룡 지음]



......^^백두대간^^........白頭大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