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西周)의 마지막 왕은 유왕(幽王)으로 이름은 희궁날 이다. 그는 후대 사가(史家)들의 평처럼 무척 방탕한 인물 이었다. 어진 신하들의 충언에는 귀를 귀울이지 않고 미녀 수집에 국고를 탕진했다.
하루는 조속대라는 이가 아룄다. 경하·낙하·황하의 세 강물이 마르고 기산 이 무너지는 등의 변괴가 일어났으니 이것은 주왕조에 대한 대단한 위협이 라 고 한 것이다. 불길한 징조에 대해 희궁날은 코방귀도 뀌지 않았다.
당시 유왕은 포사(褒사)의 치마폭에 빠져 국정을 돌볼 겨를 이 없었다. 포나라 왕이 주 왕실에 중죄를 지어 나라에서 제 일가는 미녀를 바치고 죄 를 용서받게 되었는데 그 미녀가 바로 포사였다.
시무룩한 그녀에게 웃음을 찾기 위해 별의별 수단을 동원했다. 그 첫째는 정비인 신황후를 내쫓고 태자 희의구의 왕위 승계권을 박탈했 다. 그런데도 웃지를 않자 이 번에는 황실 서고에 있는 비단을 가져와 맘껏 찢게 했다.
포사를 황후로 삼고 그녀 소생의 아들을 황태자로 정했다. 그런데도 웃지 를 않자 괵국에서 온 괵석보가 방책을 내놓았 다.
"폐하께서 황후를 대동하시어 여산에 행차를 하신 후 봉화 불을 올리십시 오. 그렇게 하면 천하의 제후들이 앞다투어 달려올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보시면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 다. 어디 그뿐입니까. 그들이 헛걸음질을 하고 돌아가는 모 습을 본다면 그 또 한 제왕의 구경거리가 아니겠습니까!"
괵석보의 괴이한 생각은 즉시 시행되었다. 봉화불을 올렸다. 비지땀을 흘 리며 각국에서 도착한 것은 수천의 군사들이었 다.
그들은 오로지 유왕 한사람을 위해 먼길을 달려왔다. 그러나 그들 앞에 펼 쳐진 것은 질탕하게 내리꽂히는 음악과 기름기가 번들거리는 미희들의 웃 음소리였다. 그제야 그들 은 속은 것을 알았다. 유왕이 호기롭게 외쳤다.
"하하하, 그대들의 충성심을 이제야 알았소. 마음이 답답하 여 봉화를 올린 것이니 그리 알고 물러가시오."
천하 각지에서 모여든 제후들은 자신들이 농락 당한 것을 알고 제나라로 철수했다.
그것을 보고 결코 웃지 않았던 포 사가 이 광경에 단순호치(丹脣皓齒:빨간 입술과 하얀 이)를 드러내며 배시시 웃었다.
웃는 포사의 얼굴은 너무도 아름 다웠다. 유왕은 하늘도 땅도 그녀가 웃는 이 순간을 위해 생 겨났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것은 모두가 괵석보의 공이었으 므로 그에게 황금 천냥을 하사했 다. 얼마 후 주나라는 이민족인 견융(犬戎)의 침공을 받았다.
갑자기 밀어닥친 공격으로 주왕실은 갈팡질팡이었다. 급히 봉화를 올렸다. 당연히 달려올 것으로 믿었던 제후들에게서 는 전연 소식이 없었다.
희궁날은 포사와 함께 도망치다 잡 혀 죽고 포사는 전리품으로 견융족 추 장의 아내가 되었다가 얼마 후 도망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