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事 成 語
형 처(荊妻) 荊:가시나무 형. 妻:아내 처,
남에게 자기 아내를 낮추어 일컫는 말.
후한시대 양홍이라는 사람의 처 맹광의 이야기다.
맹광은 뚱보인데다 얼굴이 추하고, 게다가 얼굴빛이 새까맸다. 하지 만 미녀 에게는 없는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손쉽게 돌절구를 들 어올릴 정도로 힘이 세었다. 더욱이 마음이 상냥 하고 그 언행에 조금 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마을에서는 평판이 좋아 사방에서 혼담이 들 어왔으나 맹광은 계속 거절했 다. 그리하여 마침내 서른 살이 되어 버 렸다.
맹관은 혼담이 들어오는 족족 퇴박하더니 양홍이라는 돼지치기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맹광의 부친이 양홍을 찾아가서 청혼 을 했다.
"댁의 따님이 그렇게 원하신다면 기꺼이 맞이하겠습니다."
양홍이 청혼을 받아들이자 맹광은 양홍의 희망대로 신변의 일용품 만 가지고 시집을 왔다.
이튿날부터 즉시 허술한 옷으로 갈아입고 머리도 트레머리로 하고 친정에 있 을 때와 같은 복장을 했다.
양홍 은 그러한 아내를 보고 흡족해 했다.
"당신은 정말로 나의 아내다."
당시는 왕망(王莽)이 정권을 빼앗아 국호를 신(新)이라 칭한 때로, 그의 악정 을 견디지 못해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등 천하가 어 지러웠다.
양호은 학식이나 인품이 높아 사방의 반란자나 그 부하 들로부터 끊임없이 유혹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유혹의 손길을 피 해 돼지치기를 그만두고 맹광과 함께 산속으 로 들어가 버렸다.
산속에다 양홍은 땅을 갈고, 맹광은 베를 짜며 2년간을 살았다.
이윽고 산속에까지 유혹의 손이 뻗치자 두 사람은 오(吳)나라에 가서 이름을 숨긴 채 어느 집의 작은 방 하나를 빌려 살았다.
양홍은 매일 삯방아를 찧으러 나가고, 그 근소한 수입으로 겨우 목 구멍에 풀 칠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맹광은 매일 가시나무 비녀를 꽂고 무명 치마를 입고서 남편을 따 뜻이 맞았으며, 밥상을 눈썹 높이 들어 공손히 남편에게 식사를 권했다.
常荊釵布裙 每進食 擧案齊眉(상형재포군 매진식 거안제미) 이 맹광의 고사에 서 허술한 옷차림을 가리켜 형채포군(荊釵布裙)이 라 하고, 부인이 예절을 다 해 남편을 섬기는 것을 거안제미(擧案齊 眉)라 하게 되었다.
그리고 형처(荊妻)라는 말도 생겼다.
[출 전]황보밀(皇甫謐)의《烈女傳》
......^^백두대간^^........白頭大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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