牧民心書

곤장보다는 사랑으로 다스려

eorks 2011. 3. 13. 00:33

牧民心書
제9장 형전 6조[공평한 형법 집행을 위해 필요한 사항들]
곤장보다는 사랑으로 다스려
古之仁牧必緩刑罰하여 載之史策하여 芳徽馥然이니라.
고지인목필완형벌하여 재지사책하여 방휘복연이니라.
옛날의 어진 목민관은 반드시 형벌을 완화하였다. 그것에 관한 내
용이 역사에 실려 있어 아름다운 이름이 길이 빛나고 있다.
- 신형(愼刑) -
    
      옛날부터 어진 목민관은 사람에게 형벌을 가할 때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자들이 많이 있었다.
      후한 때 유관이라는 목민관은 세 고을을 계속하여 다스렸다. 그는 성
    품이 온화하고 인자하여 가벼운 죄를 지은 자들을 용서하는 일이 많았
    다. 그는 평소에 죄인들을 다스릴 때 이렇게 말했다.
      "형벌로써 죄를 다스리면 백성들은 죄만 면할 뿐 수치심은 느끼지
    못한다."
      그러면서, 아전과 백성들이 과실이 있으면 그저 버들가지 채찍으로
    벌하여 욕을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송나라의 이봉은 연릉의 목민관으로 있을 때 형벌을 이렇게
    시행했다. 백성이 죄가 있으면 형장을 가하지 않고 다만 중요한 부위만
    가리고 옷을 홀딱 벗게 하여 몹시 부끄러움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그랬
    더니 죄를 범하는 자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또한 당나라 때 소유공이 목민관으로 있을 때는 곤장을 치는 벌을
    차마 시행하지 못했다. 그러자 고을의 백성들은 서로 약속을 하면서 이
    렇게 말했다.
      "우리 고을에서 곤장형의 죄를 범하는 자는 우리들이 나서서 반드시
    물리치도록 합시다."
      오히려 곤장을 치지 않아도 백성들이 스스로 나서서 죄를 짓지 않으
    니 소유공이 고을을 다스리는 동안은 늘 평화로웠다고 한다.
      또한 조선 효종 때 조극선이라는 목민관은 죄인을 다스리게 될 때마
    다 몹시 슬퍼했고, 곤장을 치는 것을 보며 즐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죄인을 다스릴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때리는 사람도 이처럼 괴로운데 맞는 사람이야 얼마나 고통이 크겠
    는가! 다만 나라의 법을 어겼으니 오직 그것이 불쌍할 뿐이다.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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