牧民心書

물을 다스리는 일이 가장 중요

eorks 2011. 3. 17. 00:13

牧民心書
제10장 형전 6조[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한 방법들]
물을 다스리는 일이 가장 중요
川澤者農利之所本이니 川澤之政聖王重焉이니라.
천택자농리지소본이니 천택지정성왕중언이니라.
시내와 연못은 농사 이익의 근본이므로 옛날의 훌륭한 임금은
천택에 대한 정사를 소중하게 여겼다.
- 천택(川澤) -
    
      중국 춘추시대 때 신농씨(神農氏)의 학설을 표방하고 다니는
    허행(許行)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초(楚)나라에서 등(藤)나라로 찾아
    와 궁궐 문 앞에서 문왕에게 청원을 올렸다.
      "저는 먼 곳에서 찾아온 사람인데, 임금께서 어진 정사를 펴신다는
    소문을 듣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바라옵건대 작은 집 한 채를 하사
    받아 이 나라의 백성이 되고자 하오니 허락해 주십시오."
      문왕은 그의 청을 받아들여 거처할 집을 마련해 주었다. 그랬더니 그
    는 자기가 데리고 온 수십 명의 사람들과 함께 검소한 옷을 입고 짚신
    과 돗자리 등을 짜서 내다 팔아 생계를 이어갔다.
      한편 유가(儒家)의 한 사람인 초나라의 진량(陳良)의 제자인 진상(陳
    相)이라는 사람이 그의 아우 진신(陳辛)과 함께 농기구를 메고 송(宋)나
    라에서 등나라로 찾아와서 또 문왕에게 청원을 올렸다.
      "저희는 임금께서 성인의 어진 정치를 행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성인
    의 뜻을 받들어 어진 정치를 펴시는 임금께서는 또한 성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라옵건대 저희도 성인의 백성이 되고자 하오니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진상도 허락을 받아 등나라에서 살게 되었다. 그런데 그 뒤
    진상이 허행을 알게 되었고, 그의 학설을 듣고 크게 감명받아 그때까지
    지녀온 자기 학설을 모두 버리고 허행의 제자가 되어 버렸다.
      하루는 진상이 맹자를 찾아와서 일전에 허행이 자신에게 했다는 말
    을 이렇게 전했다.
      "제 스승께서는 제가 `둥문공께서는 현명한 임금이시긴 하지만, 아
    직 도(道)에는 밝지 못하신 것 같아. 진정 현명한 임금이라면 백성과 함
    께 밭을 갈아 거기서 수확한 것을 먹고, 끼니도 손수 지어 정치를 하는
    법이다. 지금 등나라에는 백성들에게 세금으로 거둬들인 곡식과 재물
    을 쌓아 두는 창고가 있다. 이것은 임금이 백성들로부터 착취를 하고
    있다는 증거이니, 어찌 현명한 임금이라 하겠느냐? 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맹자가 진상에게 물었다.
      "허행 선생은 꼭 손수 곡식을 가꾸어서 드시오?"
      진상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그럼 허 선생은 꼭 손수 베를 짜서 옷을 해 입소?"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 선생께서는 털옷을 입고 지내십니다."
      "그럼 허 선생은 평소에 관을 쓰시오?"
      "예, 관을 쓰고 지내십니다."
      "어떤 관을 쓰시오?"
      "아무런 장식도 없고 색도 없는 소박한 관을 쓰십니다."
      "그럼 그 관은 손수 만든 것이오?"
      "그렇지 않습니다. 손수 농사 지은 곡식과 바꾼 것입니다."
      "왜 손수 관을 짜서 쓰지 않는 것이오?"
      "손수 관을 짜면 농사짓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 허 선생은 솥이나 시루에 밥을 짓고, 쇠붙이로 만든 농기구로
    밭을 가시오?"
      "그렇습니다."
      "그것들도 선생이 손수 만든 것이오?"
      "그렇지 않습니다. 역시 손수 농사 지은 곡식과 바꾼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묻겠소. 자신이 경작한 곡식을 가지고 그릇이나 농기
    구와 교환한다고 해서 도공이나 대장장이에게 해를 입히는 것은 아닐
    것이며, 도공이나 대장장이 역시 자신들이 만든 그릇이나 농기구를 가
    지고 곡식과 교환한다고 해서 농부에게 손해를 입힌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오. 그런데 허 선생은 자신이 필요한 것은 자신이 만들어 써야 한
    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그렇다면 그릇이나 농기구도 손수 만들어서 창
    고에 저장해 두었다가 쓸 일이지 왜 번거롭게 여기저기 다니면서 교환
    해 쓰는 것이오? 허 선생은 그런 번거로움을 싫어하지 않는 성격이오?"
      "여러 가지 기술을 갖는 것은 복잡한 일이므로 농사를 지으면서 그
    런 일까지 할 수야 없는 일이지요."
      "그렇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일만이 유독 농사를 지으면서 할 수 있
    는 일이라는 말이오? 무릇 직업이란 각각 구분이 되어 있는 법이니, 윗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할 일이 따로 있고 아랫사람이 할 일이 따로 있
    는 것이오. 즉 정치하는 사람과 농사 짓는 사람이 할 일이 따로 있다는
    말이오. 사람이 살다가는 데는 각 분야의 기술자들이 만든 온갖 물건들
    이 필요하기 마련인데, 만약 이런 물건들을 각자가 손수 만들어서 쓴다
    면, 이것은 천하의 사람들을 모두 지쳐서 쓰러지게 만드는 일 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오.
      옛날에 요임금 때의 천하는 아직 안정되지가 않아서, 홍수가 천하에
    범람하였고, 초목은 제멋대로 우거져 금수(禽獸)가 마구 불어났으며, 오
    곡은 여물지 못하고 금수가 민가에까지 침범하여 그 발자국이 서울 안
    에까지 나 있는 상태였소. 요임금께서는 이런 상태를 크게 근심하여 신
    하들 중에서 순(舜)을 등용하여 사태를 수습하게 하자, 순은 먼저 익
    (益)에게 시켜 불에 관한 일을 맡아보게 하였소. 익이 산야(山野)에 불
    을 질러 초목을 불살라 버리자 그 많던 금수들이 도망쳐 자취를 감추게
    되었소.
      그리고 요임금은 우(禹)를 등용하여 물에 관한 일을 맡아보게 하셨는
    데, 우는 황하의 아홉 개나 되는 지류(支流)를 원활하게 소통시켜 홍수
    를 다스렸소. 우는 먼저 황하의 지류인 제수(齊水)와 탑수를 뚫어 물이
    바다로 빠지게 하였고, 여수(汝水)와 한수(漢水) 등 강물을 트고, 회수
    (淮水)와 사수(泗水)에 배수로를 만들어 양자강으로 흘러들게 하였소.
    이렇게 한 뒤에 겨우 천하의 백성들이 안심하고 농사를 지어 식량을 얻
    을 수가 있었던 것이오. 이때 우는 물을 다스리는 일에 너무 열중하여
    8년 동안이나 집에 들어가지 않았고, 자기 집 문 앞을 3번씩이나 지나
    가면서도 겨를이 없어 안 들어갔다고 하오. 그러니 한번 생각해 보시
    오. 자기 집에 들를 겨를도 없이 백성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던 그
    가 마음 한편으로는 농사를 짓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더라도 농사를 지
    을 틈이 있었겠소?
      또한 요임금은 농사일을 맡아보는 관리도 따로 두셨는데, 그것이 후
    직(后稷)이라는 벼슬이오. 후직은 백성들에게 농사짓는 방법을 가르쳐
    오곡을 재배하게 하였소. 그래서 그 뒤부터 오곡이 잘 여물고 백성들이
    배불게 살 수 있었던 것이오."
      사람은 각자 맡은 바가 있는 법이라는 맹자의 말을 듣고 진상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신농(神農)은 중국 고대의 전설상 임금으로, 농기구를 만들어 처음으
    로 농시짓는 법을 만들어 냈다고 전해진다. 중국 상고시대는 전설상의
    요(堯)임금, 순(舜)임금, 우(禹)임금이 다스리던 시대로 이어지고, 다시
    중국 최초의 왕조인 하(夏)나라에서 은(殷)나라, 주(周)나라로 이어진다.
      요 임금은,《사기(史記)》에 의하면 성은 도당(陶唐), 이름은 방훈(防勳)
    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총명하고, 일월성신(日月星辰)을 관측하여 달
    력을 만들었으며, 홍수를 다스리기 위해 순임금을 기용하고 왕위를 물
    려주었다고 한다.
      순임금은 성은 우(虞)이고, 순(舜)은 그의 시호이다. 5제[항제(黃帝).
    전욱(顫頊) . 제곡(帝곡) . 요(堯) . 순(舜)]의 한 사람이다. 부모에게 효
    성이 지극하여 뭇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으며, 제위에 올라서도 선
    정(善政)을 베풀어 미른바 `요순(堯舜)의 치(治)`로 불리는 태평성대를
    구가했다. 우(禹)에게 제왕의 자리를 물려주었다.
      우임금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 된 왕조로 일컫는 하(夏) 왕조의 시조
    이며, 대홍수가 발생하자 순(舜) 임금의 명을 받들어 치수(治水)공사에
    성공하여 농경사회 기반을 다진 인물로 알려져 있다.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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